명성 되찾은 진안 인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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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진안군 부귀면 일대 인삼밭에서 인삼꽃이 열매로 변해 빨갛게 익어 가고 있다. 이 열매는 다음달 수확해 내년 씨앗으로 사용한다.

23일 오후 7시 전북 진안군 진안읍 연장리 농공단지에 있는 한 홍삼 가공업체. 퇴근 시간이 지났으나 직원 20여 명은 홍삼으로 만든 캔디.절편 등 가공제품을 포장하느라 분주한 손길을 놀렸다. 서울.인천.광주 등 전국 유명 백화점에서 주문한 물량의 납품기한을 맞추기 위해서다. 이 업체 송계로(33) 대리는 "진안 인삼의 명성이 되살아나면서 밀려드는 주문 때문에 직원들이 밤 늦게까지 작업을 해야 할 형편"이라고 말했다.

중국산에 밀려 쇠퇴했던 전북 진안 인삼의 옛 명성이 되살아나고 있다.

◆ 홍삼으로 승부 걸어=진안 인삼의 명성이 부활한 것은 인삼 판매를 정부가 독점하게 했던 인삼산업법이 1996년 개정돼 민간에도 판매권을 개방하면서부터다. 그 당시 값싼 중국산이 물밀듯 들어와 진안 인삼은 가격 경쟁력에서 밀려나 있었다. 210여 농가가 500여㏊에 인삼을 심어 연간 200억원의 소득을 올렸다. 전성기였던 70~80년대 재배면적 1100여㏊에 비하면 절반도 안 될 정도로 쇠락한 것이었다.

인삼산업법이 바뀌자 진안군은 인삼을 쪄서 만든 홍삼에 승부를 걸었다. 수삼은 충남 금산의 거대한 시장에 눌려 경쟁력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군은 곧바로 공무원 8명으로 홍삼산업 지원을 전담하는 '홍삼계'를 만들었다. 농협중앙회 등 금융회사에서 97년부터 한 해 70억원까지 유치해 농가에 저리로 빌려주었다. 외환위기로 금리가 17.5%로 뛰었을 때도 농민들에게는 5%만 부담시키고 12.5%는 군이 보전해 줬다. 지원을 받은 농민들은 야산을 개간해 인삼밭을 늘려 갔다.

그 결과 지난해 말 현재 1269농가가 1232㏊에 인삼 농사를 짓게 됐다. 인삼 살리기를 시작한 지 10년 만에 두 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또 수확한 인삼을 말려서만 팔았던 농민들이 가공업체와 힘을 합쳐 다양한 제품 개발을 시작했다. 꿀에 절인 절편에서부터 캔디.영양갱 등 어린이들이 먹기 좋게 만든 제품, 진액.분말 캡슐 등 20가지가 넘는 제품을 만들었다.

홍삼을 가공하는 업체도 46곳이 새로 생겼다. 한방약초센터와 인삼종합시장 등 대형 유통시설도 들어서 생산.가공.유통 등 인삼 산업의 3박자를 갖췄다.

◆ 1000억 넘는 소득 올려=지난해 농민과 업체들은 홍삼 300t을 가공, 백화점.공항 면세점 등에 공급하고 미국.대만 등에 수출해 800억원의 매출액을 올렸다. 가공하지 않은 인삼.건삼 판매액 215억원을 합하면 지난해 인삼으로 1015억원의 소득을 달성한 것이다.

인삼과 한평생을 살아온 송화수(74.삼신인삼 대표)씨는 "농민, 업체 대표, 공무원들이 서울의 백화점과 대구 약령축제장에서부터 일본.대만의 시장까지 진안 홍삼을 들고 가 판로를 개척했다"고 말했다.

이런 성과에 힘입어 지난해 11월 재경부는 진안읍 부귀면 일대 4만7450평을 '홍삼특구'로 지정했다. 진안군은 이 덕분에 앞으로 5년 동안 정부로부터 1774억원을 지원받아 홍삼산업 기반을 더 확충할 계획이다.

진안=서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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