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과감히 비핵화 조치하면 안보리 제재 완화도 가능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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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3호 03면

[박신홍의 人사이드] 강경화 외교부 장관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지난 11일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협상 진행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신인섭 기자]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지난 11일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협상 진행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신인섭 기자]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오는 27~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8개월여 만에 다시 마주 앉는다. 성패의 최대 관건은 얼마나 구체적 성과를 낼 수 있느냐다. 지난 6~8일 스티브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의 평양 방문 결과가 주목받는 이유다.

비건 평양 협상 #모든 걸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대화 #비핵화·상응조치 충분히 의견 개진 #대북 제재 완화 #한·미 현실적 방안 깊이있게 논의 중 #북, 제재 풀려면 실질적 행동 나서야 #한국 정부 역할 #국제사회서 중재자 노력 높게 평가 #미 관리들 “이런 공조 일찍이 없어” #향후 프로세스 #남·북·미 정상회담 올해 개최 가능성 #북·미 후속 대화도 더 자주 열릴 것

평양 협상은 과연 어디까지 진척됐을까. 정상회담에 임하는 북·미의 기본 입장은 무엇일까. 우리 정부는 어떤 역할을 해왔을까. 이 같은 궁금증을 안고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만났다. 북·미 막판 협상을 앞둔 시점에 우리 외교부 수장의 정세 판단을 들어보고 싶었다. 인터뷰는 비건 대표가 출국한 다음날인 지난 11일 서울 세종로 외교부 청사에서 1시간20분간 진행됐다. 이후 강 장관은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회담한 뒤 15일 추가로 입장을 전해 왔다.

미 상응조치 긍정적으로 기대할 만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지난해 9월 유엔 본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얘기하고 있다. [사진 청와대]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지난해 9월 유엔 본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얘기하고 있다. [사진 청와대]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소회는.
“매우 환영할 만한 소식이다. 지난 1년은 긴장이 최고조에 달한 상황에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 정착으로 가는 역사적 전환의 길을 연 시기였다. 이젠 그 길에서 앞을 향해 큰 걸음을 내디뎌야 할 때다. 이번 회담이 좋은 결실을 거두고 이어 김 위원장이 답방하면 올해도 지난해 못지않게 매우 의미 있는 해가 되리라 기대한다.”
지난주 평양 협상은 어디까지 진행됐나.
“대화는 굉장히 많이 진척됐다. 모든 걸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서로의 입장에 대해 충분히 얘기했다는 게 한·미의 공통된 평가다. 비건 대표도 ‘비핵화가 뭘 뜻하는지, 상응조치가 뭔지 양쪽 다 충분히 의견을 개진했다’고 하더라(강 장관은 ‘충분히’라는 단어를 거듭 강조했다). 추가 실무협상에선 구체적으로 어떤 비핵화에 어떤 상응조치를 할지, 무엇을 얼마나 정상회담의 결실로 만들지 집중 논의하게 될 것이다.”
우리 정부는 어떻게 평가하나.
“현실적으로 볼 때 상당히 평가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완전한 비핵화는 지난한 과정이다. 기술적으로도 매우 복잡하다. 평화체제나 북·미 관계 개선도 간단찮은 이슈들이다. 따라서 이번 회담으로 다 끝날 거다? 그건 너무 큰 기대치일 거다. 그럼에도 이번엔 돌이킬 수 없는 완전한 비핵화로 나아가는 구체적인 행동과 조치가 나와야 하지 않겠나. 어떤 게 담겨야 완전한 비핵화가 되는 것인지, 그에 대해서는 어떤 상응조치가 마땅한 것인지, 어디까지가 서로 등가일지 등에 대해 우리 팀과 비건 팀이 그동안 긴밀히 조율해 왔다. 지금까지는 잘 진행돼 왔다고 볼 수 있다.”
지난 14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회담하는 모습. [뉴스1]

지난 14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회담하는 모습. [뉴스1]

분위기가 아무리 좋아도, 말의 성찬이라도 중요한 건 구체적 성과다. 빅딜·스몰딜 전망이 혼재된 상황에서 정부의 예상과 기대는 어느 정도인지 궁금했다.

“예상치를 말하는 건 늘 조심스럽지만 일단 김 위원장이 공개적으로 한 공약들이 있다. 풍계리와 동창리 참관은 반드시 이뤄져야 할 거다. 영변 핵시설 폐기도 상응조치가 전제됐지만 공개적으로 얘기한 만큼 분명히 구체적으로 담아내야 할 부분이다. 그럼 미국은 어떤 상응조치를 해야 하느냐. 이게 관건 아니겠나. 예컨대 종전선언은 일종의 정치적 선언으로, 비핵화를 추동하고 평화체제를 만들어가는 첫 단계로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연락사무소 등 북·미 사이의 상시적 대화 채널과 인도적 지원도 있을 수 있다.”

북한은 이번에 많이 주고 많이 받는, 통 큰 딜로 가자는 쪽인가, 여전히 살라미 식으로 막판까지 신중하게 가겠다는 분위기인가.
“(잠시 생각을 정리한 뒤) 북한도 그렇고 미국도 그렇고 양국 정상도 이번에 좋은 결과를 얻고자 하는, 국내적으로도 이번 회담이 성공으로 비춰지길 원하는 상황이다. 그런 만큼 상당한 성과를 서로 주고받을 준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상응조치도 좀 더 전향적인, 가시적인 결과물을 기대할 만한가.
“성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물론 마지막까지 서로 맞춰봐야 하는 과정이 남아 있지만 충분히 긍정적으로 바라봐도 될 듯싶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는.
“그것도 모두 판에 올라 있고 고려할 수 있는 다양한 요소에 다 포함돼 있다. 비건 레벨에서도 다 보고 있을 거다. 물론 가시적인 비핵화 조치가 취해진다는 전제하에서다. 개성공단은 특히 대규모 경협 차원의 문제라 여러 제재가 걸린다. 임금이 넘어가는 문제나 합작 자체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로 금지돼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조건이 마련되는 대로’라고 얘기한 것도 제재 상황이 바뀌는 것을 뜻하는 거다. 이를 위해서는 결국 북한이 좀 더 과감히 행동에 나설 필요가 있다.”

합의는 포괄적으로, 이행은 단계적으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중앙SUNDAY와 인터뷰하고 있다. [신인섭 기자]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중앙SUNDAY와 인터뷰하고 있다. [신인섭 기자]

강 장관은 여기서 ‘제재 완화’라는 민감한 주제를 꺼냈다. “북한이 원하는 제재 문제도 앞으로 어떻게 할지 상당히 다양한 방안이 가능하다. 미국과도 아이디어를 주고받는 중이다. 이건 어떠냐 저건 어떠냐, 현실적이냐 아니냐, 상당히 깊이 있는 논의를 진행 중이다. 사실 국제사회 논리는 아주 간단하다. 북한이 핵·미사일 도발을 했기 때문에 제재가 있는 거고, 제재를 풀기 위해서는 북한이 실질적 조치를 해야 한다는 거다. 따라서 북한이 과감하게 비핵화 조치를 취할 경우 ‘당장 제재를 풀진 않더라도 이 시점에는 안보리 제재 자체를 좀 완화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대화도 가능할 거다. 경협 관련 제재도 마찬가지다.”

그는 “이는 기술적 판단인 동시에 정무적 판단의 문제로, 결국 안보리 상임이사국들 사이에서 논의될 사안”이라며 “정상이 만난다는 것은 그만큼 큰 성과를 내야 할 상황이기 때문에 지난해와 달리 지금은 미국도 이런 모든 옵션을 보고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정상회담을 앞두고 (제재 문제에 대해) 이렇게 공개적으로 말하는 것은 처음”이라고도 했다.

우리 입장은 뭔가.
“여러 가지를 다 고려하고 있는데, 개성공단 재개를 본격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건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한·미 공조다. (제재와 관련해) 한·미가 같은 목소리를 내는 거다. 따라서 공조 과정에서는 여러 협의를 할 수 있지만 공조 결과를 섣불리 얘기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이번에 합의 사항 외에 향후 계획을 포함한 포괄적 로드맵을 발표할 가능성도 있나.
“가능성은 다 있다고 본다. 한 번의 딜로 끝날 건 분명히 아니다. 역시 중요한 것은 북·미 대화를 지속하는 거다. 대화할수록 대화의 습관이 견고해지기 마련이다. 신뢰도 쌓이고, 오해도 줄어들 수 있고. 그러면서 추동력도 더 생기는 법이다.”
미국의 제재 입장이 갑자기 바뀌었다.
“갑자기는 아니고, 외교적으로 한 번의 메시지를 낼 때는 그만큼 준비가 많이 됐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와도 상당 부분 조율했다. 우리는 처음부터 ‘합의는 포괄적으로, 이행은 단계적으로’가 기본 접근법이었다. 이행은 물리적으로 한꺼번에 할 수 없다는 점에서다. 마침 비건 대표도 이런 설명에 많이 귀를 기울였다. 북핵 문제만 전담하는 특별대표가 그래서 중요한 거다. 비건 대표는 과거 북한과의 협상을 꼼꼼히 다 챙겨 보고 협상에 관여한 모든 사람을 만나며 공부를 엄청 많이 했다더라. 여기에 우리 얘기까지 종합해서 낸 메시지가 지난달 31일 스탠퍼드대 연설이었다. 평양에서도 이 연설의 연장선에서 북측 대표와 대화했다고 들었다.”
교착 상태가 풀린 터닝 포인트는 뭐였나.
“지난해 11월 고위급 회담이 취소되면서 대화의 모멘텀이 떨어질 거란 우려가 많았지만 우리는 판이 깨진 건 아니라고 봤다. 특히 두 정상 차원에서 대화를 계속하겠다는 의지가 계속 발신되면서 물밑 조율이 이어질 수 있었다. 그 의지가 아주 굳건하다 보니 이제 와서 포기하기도 어려운 상황인 것 같다.”
북·미를 동시에 상대해야 했는데.
“북한을 가장 잘 아는 건 역시 우리다. 긴 적대관계 속에서 북한을 열심히 연구한 만큼 우리가 가장 깊이 있는 얘길 해줄 수 있는 입장이다. 마침 미국도 북한이 어떤 나라인지 말해줄 누군가가 필요했고, 그러면서 우리 정부의 중재자·촉진자 역할이 부각되게 됐다. 지금까지 모든 공은 북·미에게 있다. 다만 국제사회는 우리 정부의 노력을 매우 높게 평가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지난달 다보스 포럼에 갔을 때도 분위기가 확실히 달랐다. 비건 대표도 평양에서 돌아와 ‘특히 이런 많은 일이 가능하도록 한 문 대통령에게 찬사를 보낸다’고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았나.”
한·미 관계에 대한 우려도 적잖다.
“친구든, 부부든 아무리 친해도 이견이 있고 때론 싸우지 않나. 하지만 신뢰가 돈독하면 싸움을 통해서도 의견이 조율되는 법이다. 한·미는 60년 넘은 동맹이고, 동맹의 정신으로 모든 어려운 문제를 풀어 왔다. 소통과 공조의 오랜 축적이 지닌 힘이랄까. 미국 관리들도 ‘지금처럼 깊이 있는 공조가 이뤄진 적이 일찍이 없었던 것 같다’고 한목소리로 말할 정도다.”

영사 서비스, 외교부 핵심 업무로 삼을 것

김정은 위원장 답방과 남북관계는.
“베트남 정상회담이 잘 끝나면 답방도 곧 이뤄질 거다. 북한 최고 지도자가 처음 온다는 것 자체가 굉장한 의미다. 특히 비핵화 진전이 이뤄지면 남북 협력에도 훨씬 큰 걸음을 내딛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북한을 어떻게 믿느냐, 우리가 한두 번 속았느냐는 의구심이 여전히 두텁다.
“(자세를 고쳐 앉으며) 국제사회에서 협상은 진정성 유무를 기준으로 삼지 않는다. 중요한 건 상대방이 어떻게 행동하느냐다. 김 위원장이 이미 여러 공약을 내놓지 않았나. 관여를 통해 이를 행동이란 결과로 이끌어내는 것, 그게 협상이고 외교다.”
향후 프로세스 전망은.
“2차 정상회담 후에도 후속 조치를 논의할 북·미 대화가 좀 더 자주 이뤄질 것이다. 남·북·미 3국 정상회담도 올해 안에 열릴 가능성이 있다. 문 대통령도 이 프로세스를 시작했다는 책임감을 갖고 있다. 완전한 비핵화와 평화체제 달성을 위해서라면 양자든, 3자든, 중국을 포함한 4자든 만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국민 소통 외교를 강조하고 있는데.
“10여 년 만에 외교부에 와보니 어려운 여건에도 유엔보다 다섯 배는 더 열심히 일하고 있더라. 하지만 국민이 외교부를 가장 피부로 느끼는 것은 역시 영사 업무다. 대민 서비스에 최선을 다해야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고 북핵 등 업무도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다. 다행히 최근 해외공관 직원들 태도가 많이 바뀌었다는 얘길 듣고 있다. 젊은 외교관들도 적극 아이디어를 내고 있다. 영사 업무를 외교부의 부수 업무가 아니라 핵심으로 삼겠다는 각오다.”

박신홍 정치에디터 jbje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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