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산 공개 꺼리는 의원들|조현욱 <정치부 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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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고위 공직자의 재산을 등록, 공개해야 한다고 떠들던 국회가 공직자 윤리법 개정안을 무한정 계류시켜 놓고 있으며 상당수의 국회의원은 아예 현행법에 따른 재산 등록조차 하지 않고 있다.
취임 l개월 이내에 자신과 배우자 및 직계 가족의 재산을 등록해야 한다는게 현행 윤리법인데도 13대 국회가 구성된 후 규정대로 등록한 의원 수는 많지 않고 지난해 말까지 만도 절반 가까운 1백여명이 미등록 상태였다. 지금도 28명이 구차한 이유를 내세우면서 등록을 기피하고 있다.
12대부터 등록을 않고 있다는 한 야권의 중진 의원은 『5공때는 부도덕한 정권에 등록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며 지금은 무관심해 아직 안했다』고 했고, 같은 케이스의 또다른 중진 의원은 『등록 재산의 공개를 금지하고 있는 현행법은 무의미하기 때문』이라고 미등록 이유를 변명하고 있다.
국회의장은 미 등록자에 대한 징계 의결 요구를 한번도 한일이 없으며 국회사무처는 미등록 의원 명단은 물론 숫자까지도 쉬쉬하고 있어 의원들이 싫어하는 일엔 아무도 나서려하지 않는 안일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이런 분위기로 보아 등록 재산의 공개와 미등록자의 처벌을 규정한 개정안에 의원들이 열의와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지난해 11월 정부가 제출한 이 개정안은 국회 행정 위원회 법안 심사 소위에서 그동안 단 한차례 심사했을 뿐이다. 소관 상임위 위원장은 『그런 법안이 제출된 일이 없다』고 할 정도로 무관심하고 소위의 야당 의원들은 『다른 법안 심의에 바빠서』라고 하고 있으며 김기배 소위 위원장은 『야당이 벌칙 규정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고 지연 이유를 야당에 돌리고 있다.
이런 얘기는 다 구차한 변명이고 의원들은 어떤 형태로든 자신의 재산을 공개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5공 비리의 단호한 척결과 고위 공무원의 재산 공개를 요구하며 호통치던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해가 걸린 법안을 깔아뭉개는 행위는 어떤 이유로도 설명될 수 없는 일이다.
여야 정치인들은 지난번 정치 자금 수백억원을 걷기로 합의하면서 깨끗하고 공개적인 정치 풍토를 만들기로 몇차례 다짐했다. 의원들은 현행 공직자 윤리법이라도 준수하는 모습을 보이고 재산 공개를 규정한 개정안 심의 과정에서도 언행이나마 일치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자신들부터 석연치 못한 자세를 보이면서 어떻게 깨끗한 정부를 촉구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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