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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65년간 경계 첨병 고성 GP…금강산 절경 보이는 문화재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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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강원 고성의 22사단 감시초소(GP). 한국 1호 GP로서 65년간 북쪽을 향한 경계의 창이었던 이곳은 이제 앙상한 콘크리트 껍데기가 됐다.  30~40명의 소대원이 머물던 4층짜리 요새 내부는 창문이 다 뜯긴 채 텅 비었고, 바깥 공간엔 뜸한 인적을 드러내는 듯 눈이 켜켜이 쌓여있었다. 철조망에는 녹이 가득 슬었고, 제 역할이 끝난 전선이 간혹 눈에 띄었다. 한때 휘날리던 태극기와 유엔기도 자취를 감췄다.

 지난 13일에 촬영한 강원도 고성 GP 전경. [사진공동취재단]

지난 13일에 촬영한 강원도 고성 GP 전경. [사진공동취재단]

지난해 10월 22일 병력과 화기 철수 작업이 진행된 이후 4개월의 시간이 바꿔 놓은 풍경이다. 당시 9·19 군사분야합의에 따라 각각 11개 GP를 철거하기로 한 남북은 이중 1곳씩은 무장해제 상태로 남겨두기로 했다. 22사단 GP는 1953년 7월 정전협정이 맺어지자마자 임무를 개시했다는 역사성에, 해발 340m에 자리한 천혜의 자연환경 등을 이유로 보존이 결정됐다.

GP 내에선 남북 대치 흔적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지금은 콘크리트 벽과 모래주머니만 남아있는 6개 화기 진지는 지난해 10월까지만 해도 장병들이 기관총을 놓고 사격 채비를 갖췄던 곳이다. 과녁은 580m 거리의 북한 GP였다. 남한 최동북단 GP인 이곳에서 군사분계선까지 300m에 불과한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가까운 거리다. 맞은편의 북한 GP도 현재 철거된 상태다. 지하화된 북한 GP 특성상 폭파가 이뤄진 뒤 이곳은 민둥산으로 변했다.

지난 13일 강원도 고성 GP에서 군 관계자가 지난 '9·19 군사합의' 이행에 따라 시범 철수된 GP 내부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지난 13일 강원도 고성 GP에서 군 관계자가 지난 '9·19 군사합의' 이행에 따라 시범 철수된 GP 내부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가까운 거리 탓에 지난해 12월 1일 북한군 병사가 이곳 GP를 통해 월남하기도 했다. 이후 군은 22사단 GP 인근 비무장지대 통문에 ‘12·1 귀순자 유도 완전작전 기념비’를 세웠다. GP 철수 후에도 과학화 경계를 통해 귀순자를 안전하게 유도한 완벽한 작전이었음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서다.

 지난 13일에 촬영한 강원도 고성 GP 전경. [사진공동취재단]

지난 13일에 촬영한 강원도 고성 GP 전경. [사진공동취재단]

군 관계자는 “GP 가장 높은 곳에 오르면 이곳이 왜 천혜의 요새라고 불리는지 알 수 있다”고 했다. 북한 GP가 내려다보이고 그 뒤에는 월비산 고지가 있었다. 6·25 전쟁 당시 치열한 전투 끝에 뺏겨 북한 땅이 된 곳이다. 월비산 고지 오른쪽에는 덕무현 전망대가 있다. 김일성, 김정일이 방문한 적이 있고, 2014년에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방사포 사격을 참관했던 곳이다. 양측 GP를 잇는 평화의 오솔길도 보였다. 지난해 12월 12일 남북이 GP 철수 이후 상호 검증을 위해 놓은 길이다.

남한 GP 중 가장 전망이 좋은 곳이라는 입소문에 걸맞게 북측 10시 방향에 금강산 채하봉과 백마봉이 절경을 뽐냈다. 오른쪽에는 아홉 명의 신선이 바둑을 두었다는 구선봉과 바다의 금강이라는 뜻을 지닌 해금강이 펼쳐져있다.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가 전해지는 북한 지역 감호 호수도 한눈에 들어왔다.

지난 13일 강원도 고성 GP에서 바라본 북한 금강산 비로봉과 외금강산 자락. [사진공동취재단]

지난 13일 강원도 고성 GP에서 바라본 북한 금강산 비로봉과 외금강산 자락. [사진공동취재단]

이 같은 관광 유적의 가치 때문에 문화재 지정 움직임도 본격화됐다. 문화재청은 14일 이곳 GP를 문화재로 진행하기 위한 현지조사를 벌였다. 문화재청은 현지조사 결과를 토대로 문화재 등록을 추진할 계획이다. 군 관계자는 “GP는 철수했지만 과학화 경계시스템으로 철통 같은 방어태세를 유지하겠다”고 말했다.

이근평 기자, 고성=국방부 공동취재단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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