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 1초가 불안한데…경찰은 성폭행범 죽은 것도 안 알려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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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포토ㆍ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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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발생한 한 성폭력 사건과 관련해 경찰의 늑장 수사가 도마 위에 올랐다.

피해자 A씨는 지난달 7일 참담한 일을 겪었다.

A씨는 당시 술자리를 가진 뒤 택시에서 내려 친구와 택시기사, 행인 B씨(45)의 도움으로 귀가했다. 그런데 친구가 나간 뒤 주변에 몸을 숨기고 있던 B씨가 집안으로 침입해 잠든 A씨를 상대로 몹쓸 짓을 한 것이다.

잠에서 깬 A씨는 뒤늦게 피해 사실을 깨닫고 오후 5시 경찰에 신고했다.

A씨는 이후 집 앞에서 남자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자신을 지켜보는 수상한 남성을 발견했다. 이 남성은 A씨와 눈이 마주치자 달아났고, A씨의 집 앞을 다시 서성이다 남자친구에게 붙잡혔다.

이 남성은 B씨였다. B씨는 부산 모 경찰서에 넘겨졌다.

경찰은 조사에서 B씨가 강간 등 성폭력 전과가 2차례 있는 것을 확인했다. 또 B씨가 A씨 집주변에 살고 있으며, 범행 당일 A씨의 집에 침입한 사실도 확인했다.

그러나 경찰은 B씨의 DNA만 채취한 뒤 석방했다.

B씨가 “놔두고 온 열쇠를 다시 찾으러 간 것”이라며 범행을 부인했고, 피해자가 범행 당시 정신을 잃은 상태라 가해자 얼굴을 기억하지 못해 직접증거인 DNA 일치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는 영장 신청이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경찰은 지난달 30일 국과수로부터 성폭행범 DNA가 일치한다는 결과를 확보했다. 그러나 DNA 결과를 받기 하루 전날 담당자가 바뀌는 등의 이유로 영장 신청까지는 8일이 더 걸렸다.

경찰은 지난 7일 영장을 받고 나흘 뒤인 11일 집행하기 위해 B씨를 찾아 나섰지만, B씨는 이미 스스로 목숨을 끊은 상태였다.

A씨는 “1분 1초가 불안했는데 (경찰이) 범인이 죽었다는 사실조차 통보해 주지 않았다”면서 “수사 기간 내내 애걸복걸하듯 전화를 먼저 걸어야 했고, 피의자가 죽은 것도 먼저 전화를 걸고 나서야 확인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찰이 신속히 영장을 집행하고 수사했다면 범인도 죽지 않고 법정에 세웠을 것”이라고 했다.

이에 경찰은 “설 연휴 기간 범인이 다른 지역으로 벗어날 것이 예상돼 영장 신청과 집행 시기 타이밍을 조율한 것이지 늑장을 부린 건 아니었다”며 “피해자 마음을 세심하게 헤아리지 못한 부분을 인정하고 개선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부산경찰청은 담당 경찰서 조사관을 상대로 감찰 조사를 실시해 잘못된 부분이 확인되면 상응하는 조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또 소속 경찰서 모든 여성청소년사건 수사담당자를 대상으로 피해자 보살핌과 관련한 집중 교육을 진행해 유사한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김은빈 기자 kim.eunb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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