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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유일 야당 구청장 토로 "박원순 '서초구 패싱' 괴롭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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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희 서초구청장은 지난달 31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서울시가 유일한 야당인 서초구를 일방적으로 소외시키고 있다"면서 괴로움을 호소했다. [서초구청]

조은희 서초구청장은 지난달 31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서울시가 유일한 야당인 서초구를 일방적으로 소외시키고 있다"면서 괴로움을 호소했다. [서초구청]

"너무 위축되고 외롭다. 탱크로 밀어붙이는 것 같다."

조은희 서초구청장(58)은 지난달 31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 내내 "서울시가 일방적으로 서초구를 배제하고 있다"면서 "(유일한 야당인) 나를 쉽게 보고, 무시하는 것 아니겠냐"고 토로했다.

조은희 구청장 단독인터뷰서 울분 토로 #"당적 다르다고 소외시키고 무시한다" #"시청 신년 하례식 때 내 건배사 순서 때 #은평구청장에 마이크 넘겨 공개적 망신"

조 구청장은 서울 25개 구청장 중 유일한 자유한국당 출신 당선자다. 당시 이정근 더불어민주당 후보보다 11.3%포인트 높은 52.4%를 득표해 재선에 성공했다.

서울시와 24개 자치구는 물론 시의회·구의회까지 모두 더불어민주당이 장악한 상황에서 그의 입지는 고립무원(孤立無援)이었다. 하지만 취임 초, 조 구청장은 여러 인터뷰를 통해 "박원순 시장이 당적이 다르다 해서 서초구만 외딴섬으로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라며 서울시에 대한 신뢰와 자신감을 자주 피력했다.

그런 조 구청장이 취임 7개월만에 "너무도 괴롭다"고 호소하며 "나뿐 아니라 우리 구청 소속 공무원들, 서초구 주민들까지 소외되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얼마전 서초구 청사 이전과 관련해 소동이 있었다.
“소동이랄 것도 없고, 내용은 간단하다. 서초구청이 새집 짓고 이사 가는데, 집을 지어주기로 한 서울주택공사(SH)가 나서서 이런저런 발표를 한 거다. 집 주인은 아직 집에 대한 구상이 끝나지 않았는데, 집 지어주는 데서 주인과 협의도 없이 세부 내용 다 확정하고 조감도까지 확정된 양 알리는 경우가 어디 있나. 난 처음 봤다. 그런데 이번 일도 서울시의 요즘 분위기가 반영된 결과가 아닌가 싶다.”
'서울시의 요즘 분위기'라는 게 무슨 뜻인가.
“서울 25명 구청장 중에 자유한국당이 나 하나뿐 아닌가. 서울시가 서초구에 대해 '네 편 들어줄 사람 누가 있겠냐'고 쉽게 생각하고 일방통행식 일처리를 하고 있다는 거다.”
'서초구 패싱'이 실제로 있었나.
“좀 우습지만 상징적인 사례라 얘기하겠다. 올 1월2일에 서울시에서 구청장, 산하기관장 등이 모두 참석하는 신년 하례식을 열었다. 식순에 내가 용산구청장(구청장협의회장) 다음에 건배사를 하게 돼 있더라. 내가 유일한 야당인데다, 구청장협의회 부회장이니 시키는 거려니 싶어서 준비해갔다. 모임에서도 다들 ‘구청장님 건배사 한말씀 하시는군요’라면서 인삿말도 건네더라. 근데 막상 용산구청장 건배사 끝나고 내 순서가 되자, 갑자기 진행자가 은평구청장(김미경)에게 마이크를 넘기더니 내 순서는 그냥 빼버렸다.”
미리 귀띔을 받은 바도 없었나.
“건배사 시킨 것도, 빠진 것도 사전에 일언반구도 없었다. 건배사 하고 말고가 별일 아닌 거 같지만, 그 순간 굉장히 무안하고 민망해서 귀랑 목까지 새빨개졌다. 테이블에도 건배사 하기로 된 사람들 자리에만 마이크가 설치돼 있고 식순에까지 나와 있어서 다들 내 차례인 걸 알고 있는데, 싹 빼버리니…. 식순과 다르게 진행하면 박 시장이 평소 같으면 '조 구청장도 섭섭하니 한 말씀 하시라'고 할텐데 그냥 끝내더라. '너 한번 공개적으로 망신 당해봐라'는 뜻 아니겠나.” 

이에 대해 서울시는 "식순과 달리 은평구청장에게 건배사를 하게 한 건 맞다"면서도 "그간 구청장협의회나 송년회 자리에서 조 구청장이 여러 차례 건배사를 했기에 같은 여성이자 초선인 은평구청장에게 기회를 준 것뿐"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박원순 시장은 건배사 순서에 대해 미리 알지 못했고, 조 구청장을 제외하려는 의도는 없었다"고 강조했다. 또 "식순이 바뀐 부분에 대해 미리 양해를 구하지 못해 오해를 산 것 같다"고 말했다.

실무에서도 서울시가 서초구만 배제한 경우가 있나.
“올 1월1일부터 서초구는 서울시의 '기술직 공무원 통합인사'에서 제외됐다. 구청내 기술직 공무원이 265명인데, 서울시 혹은 다른 구청으로 인사 교류를 갈 수 없게 됐다. 심지어 서울시가 협의도 없이 일방통행식으로 배제했다.”

서울시와 구청은 1999년부터 기술직 공무원 통합인사를 시행해왔다. 행정직 공무원의 경우 소속된 시청 또는 구청별로 인사고과에 따라 승진을 하는 반면, 기술직 공무원은 서울시와 25개 구청 전체 승진과 전보 인사를 서울시에서 통합 관리한다. 이영미 서울시 기술인사팀장은 "기술직은 직렬에 따라 인원 쏠림이 심해 승진 적체로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있다"면서 "구청이 개별적으로 기술직 인사관리를 하는 것보다 시에서 한꺼번에 승진과 발령을 하는 편이 효율적이라는 공감대에 따라 통합관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초구만 빼놓은 이유는 있을 거 아닌가.
“4급 기술직인 안전건설교통국장 자리가 발단이었다. 이 자리는 도로 파손, 주차 관리 등 생활밀착형 업무를 맡는다. 그래서 민선 6기 때부터 서울시에서 내려보낸 기술직보다 구청에서 오래 일해온 행정직이 적합하다고 건의해왔다. 그리고 지난해 연말 인사에 해당 보직에 구청 행정직을 승진시켰다. 그랬더니 시가 서초구를 통합인사에서 빼버린 거다.”
'서울시와 자치구간 통합인사 합의서'. 서울시는 10조의 '합의 사항 이행하지 않는 자치구는 향후 독자적인 인사운용을 하는 것으로 본다'는 항목을 들어 서초구를 통합인사에서 배제했다. 하지만 서초구는 9조 '시·구 인사운용 협의회'의 내용을 근거로 "서울시가 서초구의 제안에도 협의회를 한차례도 소집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통합인사에서 배제한 것은 온당치 않다"고 주장한다. [서초구청]

'서울시와 자치구간 통합인사 합의서'. 서울시는 10조의 '합의 사항 이행하지 않는 자치구는 향후 독자적인 인사운용을 하는 것으로 본다'는 항목을 들어 서초구를 통합인사에서 배제했다. 하지만 서초구는 9조 '시·구 인사운용 협의회'의 내용을 근거로 "서울시가 서초구의 제안에도 협의회를 한차례도 소집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통합인사에서 배제한 것은 온당치 않다"고 주장한다. [서초구청]

이같은 서초구의 인사가 이례적이었던 건가.
“절대 아니다. 처음에는 서울시 행정국장이 '안전건설교통국장 자리에 6개월 뒤 퇴직 예정인 기술직을 보낼테니, 퇴직 이후에 행정직으로 채우면 어떻겠냐'는 중재안을 내놨다. 나는 그 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는데, 서울시에서 이후에 틀어버렸다. 게다가 구로구청은 2016년에 4급 기술직 하나를 행정직으로 바꿨는데 통합인사 배제 조치가 없었다. 서울시가 유독 서초구만 찍어누른 거다. 게다가 서초구 사업도 올스톱 시켜 버렸다.”
올스톱된 사업이라면.
“지난해 7월 취임 직후에 박 시장께 '서초구민회관이 들어선 부지가 서울 체비지이니, 이땅을 부지교환과 10년 할부 매입 방식으로 서초구로 소유권 이전하고 싶다'고 얘기했다. 박 시장이 그 자리에서 '일리 있는 얘기다. 꼭 들어드리겠다'고 답했다. 그러다 지난해 12월에 서울시에서 '검토 완료했으니 공문 올리라'고 연락이 왔다. 막상 1월에 공문 올리겠다고 하자 '서초구 건은 올스톱!'이라면서 안된다고 했다. 폭탄 맞은 기분이었다.”
서울시의 '서초구 길들이기'라고 보나.
“어떻게 다르게 해석할 수 있겠나. 더 억울한 건, 나는 한번도 서울시와 맞서 본 적이 없고 그럴 생각도 없다. 구청장협의회가 있으면 꼭꼭 나갔고, 박 시장이 하는 목민관클럽이나 부부동반 모임도 반드시 참석했다. 시청 일에 협조하고 우호관계를 유지하는 게 주민을 위한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이렇게 어깃장이 나고 있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지난해 서초구의회는 서초구가 올린 2019년 예산 중 126억원을 삭감했다. 조은희 구청장의 구정활동 상징물이었던 '빨간색 삼륜차'(왼쪽) 예산이 전액 삭감됐고, 교통사고 다발 지역 횡단보도에 LED로 표시등을 다는 사업비도 줄어들었다. [중앙포토, 서초구청]

지난해 서초구의회는 서초구가 올린 2019년 예산 중 126억원을 삭감했다. 조은희 구청장의 구정활동 상징물이었던 '빨간색 삼륜차'(왼쪽) 예산이 전액 삭감됐고, 교통사고 다발 지역 횡단보도에 LED로 표시등을 다는 사업비도 줄어들었다. [중앙포토, 서초구청]

지난해 구의회가 예산을 대폭 삭감했던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나.
“그렇다. 2019년 예산 중 84개 사업에서 126억원이 삭감됐다. 구청 평균 삭감 예산의 10배고, 지난해 삭감액의 8배다. 그간 '조은희 구정(區政)'의 상징이었던 빨간색 삼륜차 예산은 아예 없애버렸다. 그래서 지금 자전거 배우는 중이다.”
서울시와의 갈등은 어떻게 풀어갈 생각인가.
“정말 괴롭고 외롭다. 그리고 너무 위축된다. 어차피 구청은 약자 아닌가. 서울시의 협조가 없으면 서초구 주민, 구청 공무원에게 고스란히 피해가 돌아간다. 그래서 나는 절실하다. 제발 서울시가 구청의 목소리를 들어주길 바랄 뿐이다.”

조은희 서초구청장은 누구

1961년생. 경북 청송 출신. 경북여고, 이화여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국문학 석사, 단국대 행정학 박사를 마쳤다.

영남일보·경향신문 기자를 거쳐 청와대 행사기획·문화관광 비서관, 서울시 정무부시장 등을 역임했다.
2014년 민선 6기 서초구청장에 당선됐고, 지난해 재선에 성공했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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