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수심 1000m에 운집한 앨퉁이, 설날 식탁에 오를 날 올 것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621호 10면

[박정호의 사람풍경] 김웅서 해양과학기술원장

김웅서 원장과 그를 푸른 바다로 이끈 야광충을 겹쳐 찍었다. 김 원장은 ’식량·자원 등 바다에서도 남북이 손잡을 대목이 많다. 보다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김웅서 원장과 그를 푸른 바다로 이끈 야광충을 겹쳐 찍었다. 김 원장은 ’식량·자원 등 바다에서도 남북이 손잡을 대목이 많다. 보다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설 연휴가 시작됐다. 고기며, 생선이며 상차림 준비가 만만찮다. 상상을 한번 해본다. 수십 년 뒤 설날 제사상은 어떻게 변할까. 지난달 중순 남극 세종기지를 둘러보고 돌아온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이하 해기원) 김웅서(61) 원장에게 물었다. “바다오염, 식량부족이 심각합니다. 지금 식탁에 오르는 생선도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겠죠.”

‘마린 보이’ 40년 #코발트 빛 플랑크톤‘야광충’에 반해 #대학 때 전공 바꿔 바닷속 생태 연구 #생명의 요람 바다 #바다 생물, 학계에선 1억여 종 추산 #탐사한 건 5%도 안 되는 500만 종 #해양 연구 부족 #잠수정 예산 없어 외국 것 빌려 타 #중국은 심해탐사 등 해양굴기 박차

김 원장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렇지 않아도 남극에서 극지생물의 산업화 가능성을 연구 중입니다. 우리는 먹지 않지만 남미에선 크릴새우 요리를 즐깁니다. 일식집에 있는 메로도 남극해에서 많이 잡히고요. 혹시 앨퉁이라고 아세요. 수심 1000m 안팎에서 떼로 몰려다니는 작은 물고기죠. 그 양이 엄청나요. 맛은 없지만 단백질 공급원으로 훌륭합니다. 50년 뒤쯤 수산자원이 고갈되면 앨퉁이 요리를 맛볼 수도 있겠네요. 요즘 국제학계에서 주목하고 있습니다.”

김 원장은 ‘마린 보이(marine boy)’다. 지난 40년간 한국 해양생물학의 최선전을 지켜왔다. 해기원 연구원에서 시작해 지난해 5월 원장까지 올랐다. ‘바다가 희망이다’라는 믿음 하나로 5대양 6대주를 누볐다. 청춘의 푸른 꿈을 푸른 바다에 바쳐온 그와 마주 앉았다.

‘노틸호’ 타고 태평양 5044m까지 내려가

2004년 김 원장이 해저 5044m까지 내려갈 때 탄 잠수정 노틸호와 그 안에서 식사하는 모습. [사진 지성사]

2004년 김 원장이 해저 5044m까지 내려갈 때 탄 잠수정 노틸호와 그 안에서 식사하는 모습. [사진 지성사]

서울 태생인데 바다사나이가 됐다.
“동대문 밖 숭인동·신설동 부근에서 자랐다. 초등학교 때 쥘 베른의 『해저 2만리』를 읽고 바닷속을 탐험하는 꿈을 키웠다. 어려서부터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인문계에 진학했다면 지리학자·고고학자가 되지 않았을까. 해양학 전공을 결심한 건 대학 2학년 때다.”
각별한 계기라도 있었나.
“여름방학 때 전남 여수 돌산도로 실습을 갔다. 밤에 막걸리를 마시고 바다에 오줌을 싸는데, 그 순간 바닷물이 은하수처럼 반짝였다. 물을 떠서 현미경으로 봤더니 1㎜로 안 되는 것들이 우글거렸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야광충이었다. 물리적 충격을 받으면 코발트 빛을 내는 플랑크톤이다.”
우연한 발견이 삶을 바꾼 것인가.
“그렇다. 당시 서울대 생물교육과를 다녔는데 방학이 끝나고 바로 해양학과를 찾아갔다. 마침 캐나다에서 플랑크톤을 전공하고 막 돌아온 심재형 교수님이 계셨다. 바다가 평생의 버팀목이 됐다.”
주전공도 플랑크톤이다.
“물살에 힘없이 떠다니는 게 플랑크톤이다. 바이러스·박테리아부터 해파리까지 포함한다. 모양이 제각각이다. 식물도 있고, 동물도 있다. 그 수효가 막대하다. 바닷속 민초쯤 될까. 작을수록 쉽게 뜨기 때문에 점점 작은 쪽으로 진화해왔다.”
우주에 비해 해양에 대한 관심이 적은데.
“세상에는 두 가지의 은하수가 있다. 하늘에 별이 있다면 바다에는 플랑크톤이 있다. 우리도 고려시대까지는 바다에 대한 관심이 컸다. 해상무역이 활발했다. 조선시대 이후 바다를 위험한 곳으로 여겼다. 정초 『토정비결』을 봐도 ‘물가에 가지 마라’는 대목이 단골로 등장하지 않나. 너무 안타깝다. 한국은 삼면이 바다다. 신라 장보고의 기상을 되찾아야 한다.”
왜 지금 바다인가.
“바다는 생명의 요람이다. 호모 아쿠아티쿠스(Homo Aquaticus)라는 말처럼 인류도 물에서 진화해왔다. 또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해왔다. 식량·경제·과학·레저 등 그 가치가 무한하다. 지금까지 인류가 탐사한 바다는 전 세계 바다의 5%도 안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바다생물은 현재 500만 종인데, 학계에서는 1억 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

김 원장은 심해탐사 한국기록을 갖고 있다. 2004년 6월 프랑스 유인잠수정 노틸호를 타고 북동태평양 5044m까지 내려갔다. 500만 년 된 고래뼈, 눈 없는 물고기 등을 찾아냈다. 해저 망간단괴(감자 모양의 금속덩어리)도 채집했다. 그때 경험을 정리한 『바다에 오르다』를 냈다.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 실무를 진행했고, 2014년 한국에서 이란까지 해양실크로드 탐험대장도 맡았다.

지난 15년간 기록이 깨지지 않았는데.
“저로서도 아쉬운 대목이다. 국내에 유인심해잠수정이 없기 때문이다. 외국 잠수정을 타야만 한다. 1987년 해저 250m까지 갈 수 있는 ‘해양250’을 개발했으나 현재 퇴역한 상태다. 해저 6000m까지 탐사할 잠수정을 만들 기술적 역량은 충분하나 1200억원 예산 문제로 현실화하지 못했다. 반드시 볼 날이 올 것으로 믿는다.”

바이오 수소 기술 개발, 상용화 앞당겨야

온갖 첨단기술이 요구되겠다.
“유인잠수정은 그 나라 과학기술의 총체다. 미국·일본·중국·러시아·프랑스 5개국이 갖고 있다. 우리 주변국들이다. 언제까지 그들의 잠수정을 눈치 보며 타야 할까. 그마저 탄 국내 학자는 열 손가락이 안 된다. 2007년 6000m급 무인잠수정 해미래를 개발했지만 유인잠수정에 비해 탐사능력이 떨어진다.”
 1만m도 도전하고 싶을 것 같다.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런 유인잠수정을 만든다면 제가 가장 먼저 타서 안전문제를 검증하겠다(웃음). 현재 심해탐사 세계 기록 보유국은 중국이다. 2012년 자오룽(蛟龍)호로 7000m까지 성공했다. 그 전에는 일본 신카이(深海) 6500호가 갖고 있었다. 최근 중국의 해양굴기가 매섭다. 칭다오(靑島) 인근에 해양기지 블루실리콘밸리를 짓고 있다. 해양연구의 모든 것을 모은다고 한다.”
해저 1만m는 정복되지 않았나.
“‘아바타’의 제임스 캐머런 감독이 2012년 지구에서 가장 깊은 마리아나 해구에 내려갔다. 다큐멘터리 ‘딥씨 챌린지(Deepsea Challenge)’도 2년 전 개봉했다. 60년 미 해양학자 자크 피카르와 해군 중위 돈 월시에 이른 세 번째 기록이다. 하지만 셋 모두 잠수기록이다. 과학탐사가 아니다. 그래도 대단하다. 지구에서 38만3000㎞ 떨어진 달을 밟은 사람이 지금까지 12명인 것에 비교해보라. 바다에 내려가는 게 하늘로 올라가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바다 영토전쟁도 뜨겁다.
“독도를 예로 들어보자. 우리나라는 99년 체계적인 생태연구를 시작했다. 독도의 생태·지형 등 그간 많은 자료를 쌓았지만 일본에 비해 부족한 상태다. 멸종된 독도강치의 학명에도 ‘자포니쿠스(Japonicus)’가 들어가 있다. 국민정서에 기댈 문제가 아니다. 과학으로 영토를 지켜야 한다. 3·1절 100년을 맞는 올해 더욱 고민할 문제다.”
재생에너지 개발도 시급한데.
“고(古)세균이라는 게 있다. 박테리아보다 더 오래된 것으로, 심해 열수구에 서식한다. 해기원에서 고세균을 배양해 바이오 수소를 만들어내는 기술을 3년 전 개발했다. 상용화까지는 갈 길이 멀지만 앞으로 활용 가능성이 크다. 수소시대를 앞당길 수 있다. 기름 없이 움직이는 자동차나 배를 만들 수 있다.”
바다인생 40년을 요약하자면.
“바다는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인다. 언제나 낮은 곳부터 자신을 채운다. 또 서두르지 않는다. 일례로 펄은 1000년에 2㎜씩 쌓인다. 망간단괴는 100만년에 2~6㎜씩 커진다. 그 낮은 자세와 넓은 마음을 닮으려 했다. 제가 못다한 일은 후배들이 이어갈 것이다. 바다는 알면 알수록 신비하다. 지금도 바다에 가면 연인을 만나는 것처럼 설렌다.”

“배워서 남 주자” 해양 관련 서적 수십 권 펴내

이사부호

이사부호

“‘배워서 남 주나’라는 말이 있지만 제 생각은 달라요. ‘배워서 남 주자’가 소신입니다.”

김 원장은 해양 관련 서적을 내는 데도 열심이다. 저술가·기획자로 왕성하게 뛰고 있다. 도서출판 지성사에서 내는 ‘미래를 꿈꾸는 해양문고’ 시리즈와 ‘과학으로 보는 바다’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현재까지 각각 32권, 8권이 쌓였다. 최근에는 『바다의 눈, 소리의 비밀』 『대양탐사 대항해에 도전하는 이사부호(사진)』 『플랑크톤도 궁금해하는 바다상식』 3종이 나왔다. 국가 기관인 해기원의 연구 성과를 일반 독자 눈높이에 맞춰 전하고 있다. 김 원장은 물론 해기원 과학자들이 두루 참여한다.

“2007년 시작한 해양문고 시리즈는 원래 100권으로 기획했습니다. 언제 완성될 지 모르지만 제가 은퇴할 65세까지 최소 50권은 채울 수 있을 것 같아요. 프랑스 끄세즈(Que sais-je) 문고나 일본 이와나미(岩波) 신서처럼 키워간다면 세계적으로도 가치 있는 일이 아닐까요.”

김 원장은 ‘과학의 대중화’가 아닌 ‘대중의 과학화’를 내세웠다. 지금까지 과학자들이 대중과 소통하는 데 소홀했다고 돌아봤다. “과학이 전문가들의 전유물에 그쳐서는 곤란하죠. 과학자들이 처음에는 글쓰기를 두려워하지만 한두 번 경험을 쌓게 되면 그 매력에 푹 빠지게 됩니다. 마약과 같다고나 할까요(웃음). 과학자들도 틀을 깨야 해요. 그들만의 언어로 은근히 우월감에 빠진 건 아닌지 살펴봐야 합니다.”

박정호 문화·스포츠 에디터 jhlogos@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