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항공산업>자립단계 벗어나 중위권 "성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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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우리의 전반적인 경제수준이 이제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올라서는 단계에 있다지만 항공산업에 관한 한 우리는 아직 중진국대열에도 끼어 들질 못했다.
87년 자유진영의 항공산업시장 총외형 1천7백억달러중 약71%를 가져간 미국을 비롯, 영국·프랑스·서독 등의「항공선진국」들 말고도 이스라엘·스웨덴·브라질·모만·벨기에 등 독자모델의 항공기제작단계에 가있는 「항공중진국」들이 꽤 있고, 거기에 비하면 우리는 이제 조립생산단계에서 벗어나 선진국과의 공동개발 이전단가인 공동생산단계에 들어가 있는 상태다.

<헬기사업이 효시>
그런 만큼 국내 항공산업의 역사는 일천하다.
69년에야 대한항공이 민간기업으로 첫 출범을 했고 초년에야 처음으로 보잉707기를 한대 통째로 사왔으니(이때 도입했던 보잉기가 바로 87년 말 KAL기 폭파사건 때 떨어진 비행기다) 그 이전에는 항공산업이란 것이 있을래야 있을 턱이 없었다.
그때부터 항공운송사업이 점차 기반을 다져감과 함께 항공기 정비산업이 극히 초보적인 기술을 하나 둘 익혀가기 시작했고, 그러다가 김신조 사건이 어느날 갑자기 「수요」를 창출해낸 육군의 소형헬기사업이 72년부터 구상되기 시작하면서 역시 극히 초보적인 단계나마 비로소 항공기제조산업이 일어나게 됐다.
87년까지 계속되다 종료된 육군의 소형헬기사업은 항공업을 선점했던 대한항공에 의해 주도되었다.
미 휴스(HUGHES) 사의 369모델을 들여와 500MD로 명명, 76년부터 생산에 들어간 당시의 육군헬기사업은 11년간 약7백대의 헬기를 생산하면서(이중 약5백대는 미국으로 수출되었는데 이중 일부가 서독으로 다시 수출되었다가 북한으로 들어가 소동을 빚었었다) 국내 기술축적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
또 사업 후반기부터는 78년에 창립되었던 삼성정밀(현 삼성항공) 이 미 GE사와의 기술제휴로 항공기엔진 제작에 참여하기 시작, 기술축적에 가세했다.
이와 함께 3공화국 시절인72년부터 하나 둘 일기 시작한 방위산업의 가장 마지막으로 78년 항공산업이 지정됐고 이에 따라 79년부터 공군의 첫 전투기사업인 이른바 「제공호사업」이 구상되어80∼85년간 대한항공(기체부문) 과 삼성정밀(엔진부문)이 이완 협동체제로 약 초70의 F5전투기를 만들었다.
당시 제공호 사업의 총 외형은 약 8억 달러 규모였고 비록 이외 70∼80%는 기술도입선인 미 노스톱과 GE사로 떨어졌지만 그래도 국내업계로서는 엄청난 사업이었다.
이어 다시 84년 10월에는 향후 10년간 총외형 약 30억∼40억달러 규모에 이르는 차기전투기사업, 이른바 FX사업이 국내업체들을 흥분시켰다.
이때는 대한항공과 삼성정밀은 물론, 83년10월 항공사업본부를 설립하고 84년4월 미GD사와 F16의 중앙동체·보조날개 공급계약을 맺으면서 항공기사업에 뛰어들었던 대우중공업까지 가세해 3사가그룹의 사운을 걸고 무려 2년여에 걸친 피나는 경쟁 끝에 86년11월 삼성정밀이 FX사업의 주 계약자로 선정됐고, 이에 삼성정밀은 87년 초 아예 삼성항공으로 회사를 바꾸면서 항공산업의 선두주자로 나설 채비를 차렸다.
국내 항공산업의 내력은 이처럼 간단하다.
업계의 현 상황을 놓고 봐도 별표에서 보듯 88년 기준으로 기체부품 분야는 대우중공업, 기체분야는 대한항공, 엔진분야는 삼성항공이 각각 선도하면서 이들 3사가 국내 항공산업시장을 3분하고 있다.
이밖에 항공기용 소재, 전자 통신장비 등을 생산하는 한국화이버·대영전자 등 관련 전문업체를 전부 합쳐도 항공산업에 「다리」를 걸쳐 놓고있는 국내기업들은 모두 2O개사 미만에 불과하다.

<삼미등 참여채비>
그러나 앞서 살펴 본대로 항공산업이 워낙 덩치가 큰 고부가 가치산업이며, 국방과 함께 가는 산업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기존 항공3사는 올해에만 총9백10억원 규모의 투자를 계획하고있고 요즘도 삼미·현대정공 등 항공산업으로의 진입을 시도하는 대기업이 계속 나오고 있으며, 정부는 정부대로 88년 12월4일부터 항공우주개발촉진법을 발효시키고 현재 상공부주도로 항공산업육성방안을 마련하고 있는 등 항공산업의 「기반」을 닦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있다.
다른 제조업에 빗대자면 아직 주문자상표생산(OEM)단계에도 충분히 이르지 못했다고 할 수 있는 국내 항공산업이 갈 길은 아직 까마득하고 그런 만큼 당장 해결해야할 문제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업계가 공통적으로 힘을 모아 지적하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사업의 연속성」을 정부가 확보해 주는 것이고 이점은 정부도 얼마든지 수긍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덩치 큰·사업을 끌고 가야하고, 그러려면 국내에선 거의 유일한 「고객」인 군이 장기적 사업계획에 따라 도중에 몇년씩 노는 장비와 인원이 생기지 않도록 일감을 확보해주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40%정도만 유출>
곧 기종이 결정될 것이긴 하지만 FX사업만 해도 85년에 제공호 사업이 끝난 후 벌써 4년이 지났고, 계획이 확정되어 생산에 들어가려면 빨라야 92년부터 가능하다는 얘기니 88년 기준 총 생산의 4O% 정도만을 수출에 기대고 있는 업계로서는 불안정한 국내 정비·수리 물량만으로 7년의 공백을 버티기란 여간 힘겨운 노릇이 아니다.
다음은 역시 기술개발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다.
기종하나를 개발하는데 10억 달러씩을 쏟아 붓는 미국회사들의 연구개발은 꿈도 꾸지못할 일이지만, 과기처 산하 기계연구소에 고작 1개실 규모로 10명의 인원이 일하고있는 지금과 같은 연구개발투자는 말이 안 된다는 얘기다.
현재 상공부는 경제기획원과 협의, 오는 94년까지 3천억원의 예산으로 3백∼4백명 규모의 독립연구소를 만들 계획을 추진중이지만, 일부에서는 매년 3천억원씩을 연구개발비로 써도 모자란다는 지적도 있다.
이와 함께 작은 일이라고 할 수 있지만 몇 안되는 국내업체들끼리 지난해 초 협회설립을 위한 발기인 총회까지 해놓고서 아직도 협회를 설립하지 못 할만큼 지나친 경쟁을 하고 있는 것도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김수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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