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 읊는 한편의 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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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무대 왼쪽은 천장으로부터 바닥까지 길게 늘어진 수백 가닥의 종이 테이프들, 무대위는 구겨진 닥종이들이 입체감을 갖고 넝마처럼 흩어져 있다.
그 위에 물 잎이 돋아 있고, 오른쪽 가운데 천장에는 동그마니 2개의 붕어풍경이 달려 있다.
막이 오르면 바람이 불어와 풀잎이 바람에 날리고, 댕그렁, 댕그렁 풍경들이 부딪치면서 맑고 투명한 소리를 내고, 닥종이 더미 뒤에 숨어 있던 무용수 김신자씨의 팔이 풀잎인양 흔들리며 솟아오른다.
단순한 디자인의 흰색바지와 웃옷 차림의 김씨는 무대위에서 때로는 뒹굴고, 엎드리고, 일어서며 편안하게 춤을 춘다.
들려오는 음악은 신디사이저연주를 기반으로 한 소리의 울림일 뿐(안일웅)이나 묘하게 듣는 이의 가슴에 남는다.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붕어풍경이 흔들려 소리를 내고, 풀잎들이 수선거리고, 닥종이들이 부석거리고, 무용수의 몸짓이 정지한 듯 아주 느리게, 때로는 아주 격렬하게 바뀐다. 이렇게 중견무용가 김현자씨(부산대교수)의 새로운 시도, 기의 흐름을 따라 추는 생춤은 25, 26일 오후 8시 문예극장 대극장에서 일반에 첫선을 보였다. 바람과 풀과 무용수와의 관계의 변화를 보여주겠다는 김씨의 솔로작품 『다시없음이 되어』(공연시간 40분)를 보고무용평론가 김영태씨는『새로운 시도가 돋보인 명상적인 한편의 시』라고 평했다.
김씨가 거대한 얼음 위에서, 5명의 무용수는 얼음이 녹아 흘러내린 물위에서 춤춘 『늘함이 없음을 깨닫고』(공연시간 40분)는 얼음이 녹아 물로 바뀌고 그것이 다시 증기가 되는 물의 변화과정을 통해 끊임없이 생성·소멸하는 사물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춤.
얼음이 녹고 증기로 피어오르는 과정에서 필수적인 열판사용이 누전위험으로 공연장 당사자에 의해 만류되어 무대효과는 반감됐다. 무용평론가 정병활씨(중앙대교수)는 『늘함이…·』가 『지루한 감이 있다. 10여분쯤 갈라 압축시키면 훨씬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여하튼 김씨의 새로운 시도인 생춤은 『신선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새로운 춤』으로 일단 합격점을 받았다. < 박금옥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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