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 한강변 60Km 도주극···잡고보니 음주운전 상습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28일 밤 11시 10분쯤 서울 강남구 청담동 영동대교 남단. 음주운전 단속을 하던 경찰들이 분주해졌다. 스포티지 차량 한 대가 검문 중인 경찰을 보고 달아났기 때문이다.

지난 28일 밤 11시 10분쯤 음주단속을 피해 60km를 도주한 A씨(35)가 경찰에 붙잡혔다. 현장 음주 측정 결과 혈중알코올농도 0.185%의 만취 상태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사진 강남경찰서]

지난 28일 밤 11시 10분쯤 음주단속을 피해 60km를 도주한 A씨(35)가 경찰에 붙잡혔다. 현장 음주 측정 결과 혈중알코올농도 0.185%의 만취 상태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사진 강남경찰서]

신속히 순찰차에 올라탄 경찰들은 차량을 쫓기 시작했다. 그러나 수차례에 걸친 정지 명령에도 운전자는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영동대교 남단에서 도주를 시작한 운전자는 영동대교 북단을 향한 후 강변북로(구리방향)를 지나 올림픽대교에 들어섰다. 올림픽대로(김포 방향)에서 다시 남쪽으로 강을 건넌 운전자는 영동대교 남단에서 북단까지 다시 한번 질주했다. 강변북로(구리방향)에서 이번엔 토평IC로 유턴하더니 성수대교 북단까지 다다랐다. 결국 동부간선도로에 진입해서는 다니는 차가 없자 최고속도 시속 180Km로 질주하기도 했고, 1차선에서 5차선을 갑자기 넘나드는 등 위험천만한 질주를 이어갔다.
스포티지 차량은 노원구에 다다랐다. 후미에서 추격하던 경찰관은 마침 동부간선도로 노원교 부근에서 차량 앞에서 나란히 진행하던 다른 일반차량을 발견했다. “속도 좀 줄여주세요”라는 순찰차의 요청에 시민들이 감속하자 도주하던 차량도 자연스럽게 속도를 줄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도로공사로 인해 1개 차로로 줄어들어 도주도 어렵게 됐다. 그럼에도 차량은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2차로에서 나란히 진행하던 순찰차를 밀어붙이기 시작한 것이다. 무리하게 순찰차를 들이받다 공사용 방호벽을 들이받은 뒤 한 바퀴 돌면서 재차 순찰차를 충격한 후에야 차량은 멈춰 섰다. 장장 60Km에 달하는 한밤 음주운전 도주극이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A씨(35)가 도주한 경로. [사진 강남경찰서]

A씨(35)가 도주한 경로. [사진 강남경찰서]

사고 이후에도 스포티지 차량 운전자는 계속 전화를 시도하며 차량에서 내리려고 하지 않았다. 10분간을 버티자 경찰관 한 명은 조수석에서 밀고, 두 명은 팔다리를 잡고 끌어내야 했다. 조사 결과 운전자는 회사원인 A씨(35)로 현장 음주측정 결과 혈중알코올농도 0.185%의 만취 상태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A씨는 잡힌 후에도 “왜 나를 폭행하느냐”며 경찰관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심지어 이전에 4번이나 음주운전으로 처벌받은 전력이 있었다. 강남경찰서 관계자는 “가장 최근 음주운전으로 처벌받은 건 2011년이다. 그 이후에도 음주운전으로 입건은 됐으나 혐의없음으로 처벌받지 않기도 했다”며 “이외에도 크고 작은 전과가 있어 일정한 직업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A씨가 순찰차를 들이받는 바람에 순찰차 앞부분이 심하게 부서졌지만, 다행히 승차한 경찰관 1명만이 가벼운 부상을 입었다고 경찰은 전했다. 이날은 A씨를 검거한 이희수 강남서 교통과 순경의 생일이었다. 이 순경은  “순찰차를 들이받는데도 검거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어 ‘잡았다’는 생각만 들었다”며 “A씨가 많이 저항해 제지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지만, 팀원들이 합동으로 일해 검거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추격이 길어지면서 시민들의 안전이 염려됐는데 마침 앞서 진행하던 일반차량이 나란히 속도를 줄여줘 용의차량을 감속시키고 검거할 수 있었다”며 감사의 뜻을 표했다.

경찰은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상습 음주운전 및 난폭운전 혐의로 A씨를 입건했다. A씨가 이미 4회의 음주운전 전력이 있고 경찰의 정지 명령에 불응하고 장시간 도주하면서 난폭운전으로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등 죄질이 불량하다고 판단해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다.

이가영 기자 lee.gayoung1@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