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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상환 3년 미뤄줄테니 다시 창업하라'…2조원 규모 자영업 대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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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범 금융위 부위원장은 2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금융위원회에서 자영업자 금융지원 대책 점검회의를 열었다. [금융위원회 제공]

김용범 금융위 부위원장은 2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금융위원회에서 자영업자 금융지원 대책 점검회의를 열었다. [금융위원회 제공]

정부가 사업이 어려워져 연체의 늪에 빠진 자영업자를 위한 패키지 지원에 나서기로 했다. 채무상환을 최장 3년간 미룰 수 있게 하고 남은 빚은 최장 10년간 나눠 갚을 수 있게 하는 방안이다.

하지만 자영업자를 돕겠다는 취지는 인정하더라도 과도한 지원은 나중에 후유증을 남길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도 나온다.

금융위원회는 2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금융감독원과 기업은행·서민금융진흥원 등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자영업자 금융지원 대책 점검 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김용범 금융위 부위원장은 "국내 자영업은 경쟁 심화, 비용부담 가중, 경영여건 변화 등으로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며 “금융부문의 자영업 대책을 조금 더 속도감 있게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기업은행은 오는 31일 총 1조8000억원 규모의 자영업자 전용 대출을 내놓는다. 자영업자의 신용카드 매출을 토대로 미래 매출을 추정하는 카드매출 연계 대출도 2000억원 규모로 제공한다. 두 상품의 대출 금리는 연 2%안팎이 적용된다.

정부는 기업은행에 대한 출자 예산으로 2000억원을 마련한 상태다. 기업은행이 자영업자 대출에서 손해를 볼 위험이 커진 만큼 정부가 세금으로 메워주는 셈이다.

자영업자에겐 대출액의 최대 100%까지 공공기관이 보증을 서준다. 보증료(현재 1.5%)도 최대 1%포인트 깎아준다. 금융위는 은행권 사회공헌자금(500억원) 등을 활용해 6000억원의 보증재원을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오는 7월에는 자영업자 채무조정 패키지도 나온다. 현재 자영업을 하고 있거나 폐업 2년 이내인 대출자 가운데 총 채무액이 15억원 이하면서 연체 기간이 3개월 이상인 경우가 지원 대상이다. 자영업자 재기를 위한 창업자금은 최대 7000만원, 운영자금은 최대 2000만원까지 빌려준다.

다만 금융위는 자영업자 중 부동산 임대사업자는 별도로 관리하기로 했다. 특히 임대사업자가 주택구입 목적으로 받는 대출은 규제를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최근 주택담보 대출의 규제가 강화되자 상대적으로 규제가 약한 자영업대출로 우회하는 경로를 차단하기 위해서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과도한 자영업자 금융지원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김기찬 가톨릭대 교수(경영학)는 “근본적인 대책 없이 성공 가능성이 낮은 자영업자에게 창업 자금을 지원하고 채무상환을 뒤로 미뤄주면 오히려 자영업자의 빚만 더 늘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박창균 중앙대 교수(경영학)는 “자영업 시장은 이미 포화상태로 경쟁력이 떨어진 게 근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은퇴 후 베이비부머가 제대로 일할 수 있는 일자리가 공급되지 않고서는 자영업자를 위한 금융지원은 일시적인 미봉책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금융위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자영업자 수는 550만명으로 전체 근로자의 24%에 달한다. 은퇴한 중장년층이 진입 장벽이 낮은 치킨집·편의점 등 생계형 창업에 뛰어들면서 시장은 포화 상태라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염지현 기자 y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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