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이제는 날개 달고 편한 곳으로 가세요"…대통령도, 시민도 빈소 찾아 애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9일 서울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 특1호실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의 빈소가 마련되어 있다. [사진=연합뉴스]

29일 서울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 특1호실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의 빈소가 마련되어 있다. [사진=연합뉴스]

28년간 일본군성노예 피해를 알리는 데에 힘썼던 고 김복동 할머니(향년 93세)의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빈소에는 29일 고인을 기리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동료 피해 할머니 길원옥·이용수 할머니, 말 잇지 못해  

길원옥 할머니가 29일 서울 신촌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故김복동 할머니의 빈소를 조문하고 있다. 경향신문 이준헌 기자

길원옥 할머니가 29일 서울 신촌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故김복동 할머니의 빈소를 조문하고 있다. 경향신문 이준헌 기자

전날 별세한 김 할머니의 빈소는 이날 오전 11시 장례식장 지하 2층의 특1호실에 차려졌다. 오전 11시 20분쯤 영화 '아이 캔 스피크'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증언하는 주인공 역할을 맡았던 배우 나문희(78)씨가 빈소를 찾았다. 나씨는 “뉴스로 소식을 들었다. 직접 뵙지는 못했지만 가슴이 아파서 왔다”며 “너무 고생하셨으니까, 이제는 날개 달고 편한 곳, 좋은 곳으로 가시기를 바란다”는 말로 고인을 기렸다.

오후 2시 35분쯤 길원옥(91) 할머니도 휠체어에 앉아 빈소를 찾았다. 길 할머니 역시 일본군성노예 피해자로, 김복동 할머니와 함께 피해자들의 실상을 알리는 활동에 힘써온 활동가다. 지인들의 부축을 받아 빈소에 들어간 길 할머니는 김 할머니의 영정 앞에 무릎을 꿇고 5분 동안 조용히 바라보다가 눈을 감고 한숨을 쉬었다. 길 할머니는 “하시고 싶은 말씀 하시라” “김복동 할머니 보니 어떠시냐”는 주변인의 말에도 답을 하지 못했다. 물도 마다하고 앉아만 있던 길 할머니는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대표 등이 “김 할머니 편안히 가셨다”고 전해주는 말에 “이렇게 빨리 가시네” 겨우 한마디를 했다.

문 대통령 방문, 진선미 장관은 빈소 지켜  

문재인 대통령도 오후 3시쯤 빈소를 찾아 30분간 머물렀다. 문 대통령은 조문을 마치고 길원옥 할머니가 있는 방에서 한동안 대화를 나눴다.

정‧관계 인사들의 발길도 이어졌다. 오전에는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조용히 빈소를 찾았고, 오후에는 진선미 여성가족부장관도 조문을 했다. 진 장관은 “7일 전에 병원에서 뵀는데, 할머니들의 한을 풀 방법 찾아볼테니 견뎌주셔야 한다고 말씀드렸는데 떠나셨단 소식을 듣고 할머니께 너무 죄송스러웠다”며 “오늘은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빈소를 지킬 예정”이라고 전했다. 그는 “할머니가 계속 관심 가지셨던 문제들을 이어받아 열심히 노력하겠다”면서 “마음 편히 가셨으면 좋겠다. 가시는 할머니 외롭지 않게 관심 많이 가져달라”고 덧붙였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 정의당 심상정 의원,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 민주평화당 천정배 의원 등도 빈소를 찾았다. 심상정 의원은 빈소에서 관계자들을 일일이 안으며 “가슴이 뻥 뚫린 것 같이 허전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심 의원은 “김 할머니는 우리의 깃발이셨다. 돌아가시기 직전까지도 실천으로 인간의 존엄과 평화를 위해서 싸우셨다”면서 “아베의 사과 없이는 절대 눈을 감을 수 없다고 말씀하시곤 했는데, 남은 숙제는 할머님이 키워내신 평화의 나비들과 함께 꼭 풀어내겠다고 약속드린다”며 고인의 영면을 빌었다.

학생, 외국인들도 빈소 찾아 눈물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에 차려진 고 김복동 할머니의 빈소 안내 화면. 김정연 기자.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에 차려진 고 김복동 할머니의 빈소 안내 화면. 김정연 기자.

김 할머니를 기리는 시민들의 조문도 이어졌다. 점심시간 빈소를 찾은 이모(50)씨는 “최근 페이스북 등 SNS에서 위독하시다는 얘기는 들었는데도, 어제 뉴스로 돌아가셨다는 걸 알고는 기분이 이상했다"며 “빈소에 왔다 가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가 될 것 같아서 왔다”고 말했다. 오후에 홀로 빈소를 찾은 편지연(33)씨는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김복동 할머니를 다 알 것”이라며 “마음이 안 좋아서 찾아왔다”고 했다. 그는 “어제 기사를 보고 ‘그동안 너무 무지했구나’라며 반성하게 되더라”고 말하면서 빈소에서 참았던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백창욱(57)씨도 “식민 치하에서 겪은 고통을 공적인 일로 승화하신 분이고, 역사에 말로 다 할 수 없는 기여를 하신 분”이라며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꼭 조의를 표하고 싶어 왔다”고 말했다. 이날 "평소 평화나비 활동에 관심이 많았는데, 김복동 할머니의 별세 소식을 듣고 꼭 조문하고 싶어 찾아왔다"며 한 외국인이 빈소를 찾아 조문하기도 했다.

‘여성인권운동가 김복동 시민장’으로 치러지는 김 할머니의 장례는 할머니의 생전 활동을 함께했던 정의기억연대가 호상을 맡았다. 다음달 1일 오전 6시 30분 후 김 할머니를 태운 운구 차량은 서울광장과 일본대사관 앞을 거쳐 서울 추모공원으로 향한다. 김 할머니의 유해는 화장 후 천안 망향의 동산에 안치될 예정이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