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일본 히트상품 공통점은 여유 …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3면

경기가 순조롭게 회복되고 있는 일본에서 최근 소비 패턴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장기불황이라는 '인내의 시절'에 유행했던 '저가격','위안'이란 키워드는 뒤로 밀려나고 '강함', '여유'로 대표되는 소비 풍조가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경기회복으로 개인 소득이 늘어난 게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예컨대 닛케이유통신문(MJ)이 선정한 올 상반기 최대 히트 상품은 '뇌를 단련하는 게임'이다. 이는 닌텐도가 휴대용 게임기인 DS용으로 개발한 게임팩이다. 이른바 '뇌연령'을 측정해주는 이 게임은 중장년층에서 폭발적 인기를 모으며 두 종류 합해 450만장이나 팔렸다. 젊은이 못지 않게 머리가 돌아가고 싶다는 욕망, 그리고 경기회복으로 심적 여유를 되찾고 싶어하는 중장년 소비자들의 심리에 착안한 게 주효했다.

닛케이유통신문(MJ)은 올 상반기 히트 상품의 키워드를 세가지로 요약했다.

첫째는 '역발상'이다. "과연 이런 방법으로 성공할 수 있겠냐"고 여겨지던 수법으로 성공을 거둔 상품과 서비스가 많았다. 이를 두고 업계는 "상품을 만드는 기업이나 소비자 모두 '여유'가 생겨났음을 뜻한다"고 분석한다. 주부들에게 폭발적 인기를 끈 '유키구니(雪國) 콩나물'이 대표적이다. 이 콩나물의 TV광고는 "'유키구니 콩나물'은 무지 비싸니까 절대로 사지 마세요"란 수퍼마켓 점장의 충고로 시작한다. 그러자 장바구니에 이 콩나물을 넣었던 고객이 당장 이를 빼내 원래 진열장에 갖다 놓는다. 상품 자체를 부정하는 듯한 이 광고에 소비자들은 역으로 움직였다. 이 광고가 나간 4월 이후 판매량은 종전의 2배로 늘었다.

'초콜릿은 달다'는 관념을 뒤집은 초콜릿도 대히트를 쳤다. 메이지(明治)제과는 올 상반기 '초콜릿 효과'란 신상품을 내놓으면서 초콜릿에 들어가는 성분인 카카오의 함유비율을 72%, 80%, 86%, 99%로 각각 차이를 뒀다. 소비자들이 알아서 선택하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99% 함유된 초콜릿의 표지에는 '대단히 쓴 초콜릿입니다'라고 경고문을 달았다. 소비자들의 도전심을 자극한 이 상품의 매출은 당초 판매목표량을 83% 웃돌았다.

두번째 키워드는 '안전'이다. NTT도코모는 3월 위성항법장치(GPS)기능을 탑재해 부모가 자신의 휴대전화나 PC로 자녀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어린이용 휴대전화 '키즈 휴대전화 SA800i'를 내놨다. 휴대전화에 달려 있는 끈을 당기면 방범벨이 울리고 자동적으로 사전에 등록된 집 전화나 부모의 휴대전화로 연결된다. 또 제 3자가 휴대전화의 전원을 끄면 즉시 부모의 휴대전화 메일로 연락이 간다. 어린이에 대한 흉악범죄가 늘고 있어서인지 이 상품은 시판 2개월만에 12만대가 팔려나갔다.

마지막 키워드는 '디자인'. 상반기에는 소비자들이 반할만한 디자인을 내세운 상품들이 전면에 부상했다. 이제는 좀 더 질 좋고 튀는 것들을 찾고 싶어하는 소비자들의 여유가 드러난 것이다.

최근 일본에 상륙한 세계최대 가구 체인 이케아(IKEA)가 각광을 받고 있는 것도 그런 배경에서다. 화려하고 신선한 디자인의 캐주얼 안경들의 대히트도 이를 반영한다. 또 항공기 색깔을 검정으로 통일한 항공사 '스타 플라이어'의 발상도 큰 주목을 끌었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