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이 5억까지 됐다 7000만원···암호화폐 광풍 1년의 현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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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의 일이다. 정부가 암호화폐 거래소의 폐쇄까지 검토한다는 소식에 투자자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2030 세대의 분노한 투자자들은 청와대 게시판으로 몰려가 거친 항의성 글을 쏟아냈다.

비트코인 이미지. [중앙포토]

비트코인 이미지. [중앙포토]

그 후 1년. 암호화폐 거래를 둘러싼 환경은 극적으로 변했다. 지난해 1월 개당 2500만원을 넘어섰던 비트코인 시세는 1년 새 반의 반 토막도 건지지 못할 정도로 폭락했다.

최근 들어 비트코인 시세는 개당 400만원 선까지 무너졌다. 이제 '김치 프리미엄(한국 거래소의 시세가 해외보다 높은 현상)'이란 말은 사라진 옛이야기가 됐다.

지난 1년의 변화를 2030 투자자들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20대 대기업 직원 A씨와 30대 금융회사 직원 B씨를 만나서 솔직한 얘기를 들어봤다.

A씨는 한때 1억원, B씨는 5000만원까지 암호화폐에 투자한 경험이 있다. 당시 두 사람 모두 마이너스 통장 대출까지 받았다고 한다. 신원 노출을 꺼린 이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익명으로 처리했다.

암호화폐 거래소 빗썸에 설치된 시세 전광판. [중앙포토]

암호화폐 거래소 빗썸에 설치된 시세 전광판. [중앙포토]

"회사 경고 무시하고 텔레그램으로 몰래 정보 공유"

Q: 언제 어떤 계기로 암호화폐 투자를 시작했나요?

20대 A씨(대기업 직원): 예전부터 자주 드나들었던 포털사이트의 주식투자 카페를 통해 암호화폐를 접했어요. 그 카페 운영자는 수년 동안 단 한 번도 틀린 선택을 한 적이 없는 '투자의 신'이거든요. 제가 투자하기 시작한 건 2017년 4월인데 카페 운영자가 암호화폐 얘기를 꺼낸 건 훨씬 더 오래전이니까 사실 저는 조금 늦은 편이었죠.

30대 B씨(금융회사 직원): 회사 동기들이 하는 걸 보고 2017년 8월부터 투자하기 시작했어요. 그즈음 회사에서 '우리 직원들은 비트코인 투자를 하지 말라'는 경고성 공문을 내기도 했던 게 기억나요. 저희 동기들은 텔레그램 앱을 통해 회사 몰래 투자 정보를 공유했죠. 암호화폐에 투자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사부에 들키기라도 하면 회사 전체에 소문이 날 수도 있었거든요.

"투자 원금 총 1억원, 마이너스 대출도 받아"

Q: 투자금은 얼마였나요?

A씨: 처음엔 2000만원으로 시작했어요. 투자 카페에서 추천하는 코인마다 오르는 걸 보면서 투자금을 늘리기로 결심했어요. 한 달 뒤인 2017년 5월엔 가지고 있던 돈을 전부 모으고 마이너스 통장까지 만들어 총 1억원을 투자했죠.

B씨: 저는 5000만원을 투자했어요. 모아놓은 돈이 없던 탓에 제 명의로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어 돈을 넣었어요.

암호화폐 비트코인 결제 이미지. [중앙포토]

암호화폐 비트코인 결제 이미지. [중앙포토]

"하루 만에 3000만원 수익, 월급이 돈으로 안 보여" 

Q: 암호화폐 시세가 급등했을 때 기분이 어땠나요?

A씨 : 신세계에 와 있는 기분이었어요. 출근 직전 1억원이었던 잔고가 점심시간에 1억2000만원이 되기도 하고 퇴근 때 1억3000만원으로 불어났던 때거든요. 금방 부자가 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생겼어요. 저뿐 아니라 투자 카페 회원들 모두가 경쟁적으로 수익률을 비교하면서 꿈에 부풀어 있었어요.

B씨 : 그때 전 거의 미쳐있었어요. 창구에서 손님을 대하면서도 책상 구석에 휴대폰을 올려두고 계속 시세를 체크할 정도였으니까요. 점심 먹는 동안에만 100만원, 200만원씩 잔고가 불어나던 때였는데, 동기들 사이에서 "월급(약 400만원)이 돈으로 안 보인다"는 얘기가 많이 나왔어요.

"매도 타이밍 놓쳐 3000만원 손해, 그나마 선방"

Q: 투자 결과는 어땠나요?

A씨 : 제 잔고가 2017년 12월에 5억원까지 불어났어요. 그때 현금화했어야 했는데 못 했죠. 결국엔 7000만원만 건지고 빠져나왔어요. 제가 넣은 투자금이 1억원이니까 마이너스(-) 30% 수익률을 본 셈인데 저는 그나마 선방한 거예요.

B씨 : 제 잔고는 한때 1억원을 찍었어요. 저는 대학생 때부터 주식 투자를 했는데 원래 '두 배 수익률이 나면 무조건 원금을 뺀다'는 철칙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때 원금 5000만원을 빼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죠. 처음으로 제 철칙을 깬 거예요. 지금 그 돈은 1300만원이 됐어요. 3700만원 손실을 본 거죠.

20대 여성이 암호화폐를 악용한 보이스피싱에 속아 8억원을 사기당했다. [중앙포토]

20대 여성이 암호화폐를 악용한 보이스피싱에 속아 8억원을 사기당했다. [중앙포토]

A씨 "좋은 꿈 꿨다" …B씨 "후회한다" 

Q: 암호화폐에 투자한 것을 후회하나요?

A씨: 후회라고 한다면 제때 돈을 못 뺀 게 후회스러울 뿐 암호화폐에 투자한 것 자체를 후회하지는 않아요. 제가 손실을 그렇게 크게 보지 않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는데, 그냥 '좋은 꿈을 꿨다'고 생각하려 해요.

B씨: 전 사실 후회해요. 내년에 결혼할 생각인데 모아놓은 돈이 없어서 부모님께 손을 벌리게 됐거든요. 물론 배운 건 있죠. 암호화폐에 투자했던 경험을 교훈 삼아 앞으론 '실체가 있는 자산에만 투자한다'는 원칙을 세웠어요. 지금도 주식 투자를 하고 있지만 전과 달리 회사의 실체를 열심히 공부해서 투자 결정을 내려요.

Q: 지금은 암호화폐를 어떻게 생각하나요?

A씨 : 아, 저 최근에도 암호화폐 투자를 다시 시작했어요. 투자 카페 운영자가 추천한 코인을 샀는데 이 코인은 음악가들에게 투명한 음원 수익을 가져다주기 위한 목적으로 개발됐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이제 암호화폐가 실용성을 갖추는 식으로 진화해간다고 봐요. 희망사항이긴 하지만 조만간 또다시 붐이 일 것 같아요.

B씨 : 저는 앞으로 절대 암호화폐에 투자하지 않을 생각이에요. 암호화폐 때문에 최근까지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요. 회사 감사부 눈치를 보느라 거래소에 넣어두고 전전긍긍했던 투자금을 얼마 전에야 겨우 뺐거든요. 다른 은행 통장을 여러 군데 거쳐 가면서 돈을 세탁한 뒤에야 거래 은행에서 만든 마이너스 통장에 1300만원을 갚을 수 있었죠. 그동안 이것 때문에 지출해야 했던 이자를 생각하면 지금도 뒷골이 당겨요.

정용환 기자 jeong.yonghwa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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