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쉬림프’가 ‘슈림프’인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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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독서실보다 스터디센터란 간판을 선호하는 시대다. 식당 차림표에도 영어가 빠지지 않는다. 시대 흐름에 따른 불가피한 선택이라지만 최소한의 표기법도 지키지 않는 것은 문제다. 이런 표현이 광고 등을 통해 반복적으로 노출되면서 사람들에게 혼란을 주는 일이 허다하다.

공무원시험에 출제돼 화제가 됐던 ‘shrimp(새우)’가 대표적이다. 이를 한글로 옮길 때의 표기법을 묻는 질문에 ‘쉬림프’로 답한 이가 많았다. 정답은 ‘슈림프’였지만 유명 업체의 ‘쉬림프 피자’ 광고로 인해 오답이 속출했다. 모 회사의 ‘슈림프 버거’를 즐겨 먹었더라면 맞히지 않았겠냐며 푸념하는 사람까지 있었다.

‘shrimp’를 ‘슈림프’보다 ‘쉬림프’로 적는 게 원음에 더 가깝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어떤 표기가 현실음에 더 가까운지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어차피 영어에서는 자음 소리이고 우리말에선 모음과 결합하게 되므로 원어 발음과는 차이가 나게 된다. 영어 ‘sh’의 표기를 한글로 옮길 때 우리말의 발음 체계 아래 일관성 있게 적용되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어말의 [ʃ]는 ‘시’로 적고 자음 앞의 [ʃ]는 ‘슈’로, 모음 앞의 [ʃ]는 뒤따르는 모음에 따라 ‘샤’ ‘섀’ ‘셔’ ‘셰’ ‘쇼’ ‘슈’ ‘시’로 적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shrimp’의 경우 [ʃ]가 자음 앞에 왔으므로 ‘슈림프’로 표기하는 것이 바르다. ‘슈바이처’ ‘타슈켄트’ ‘카슈미르’ 등 영어가 아닌 다른 외국어에서도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 [ʃ]가 단어의 끝에 올 때는 ‘시’로 적어야 한다. 잉글리쉬(English)는 잉글리시, 대쉬(dash)는 대시, 피쉬(fish)는 피시, 플래쉬(flash)는 플래시가 바른 표기법이다.

모음 앞에선 [ʃ]가 뒤의 모음과 합쳐진 소리로 구현된다. ‘샤’ ‘섀’ ‘셔’ ‘셰’ ‘쇼’ ‘슈’ ‘시’의 형태로 나타난다. 샤크(shark), 섀도(shadow), 패션(fashion), 셰익스피어(Shakespeare), 쇼핑(shopping), 슈팅(shooting), 멤버십(membership) 등으로 표기한다.

이은희 기자 lee.eunhee@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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