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핵인싸’‘만렙’을 아시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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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얼마 전 TV 예능 프로그램을 볼 때였다. “○○○, START”. 프로그램을 시작할 때 이런 자막이 나왔다. 그리고 “ㅋㅋㅋㅋ··· 쉰난다”는 자막이 이어졌다. 그러다 한 출연자의 말로 분위기가 가라앉자 “갑분싸”라는 자막이 다시 나왔다. 아마도 예능 프로그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막이라 생각된다.

TV 프로그램에서 자막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KBS 미디어인사이드가 지상파 주말 예능 프로그램을 분석한 결과 자막이 한 편당 평균 1400개를 넘었다고 한다. 3~4초마다 한 번꼴이다. 자막이 재미를 준다고 생각하다 보니 제작진이 자막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인다고 한다.

하지만 앞에서 보았듯 이러한 자막에는 신조어나 우리말을 훼손하는 말이 너무 많이 등장한다. 외국어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약칭 방심위)가 지상파와 종편 등 TV 프로그램을 모니터링한 결과 우리말 훼손이 심각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지난 3일 이들에 대해 행정제재인 ‘권고’ 조치를 했다.

방심위는 이들 프로그램이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을 위반했다고 밝혔다. ‘핵인싸’ ‘인싸’ ‘핵이득’ ‘만렙’ ‘입틀막’ ‘세젤귀’ ‘말잇못’ ‘맴찢’ ‘띵곡’ ‘띵언’ ‘ㅇㅈ’ 등을 우리말을 훼손하는 표현으로 판단했다. ‘핵인싸’는 남들과 잘 어울리고 단체에서 인정받는 사람을 의미한다. ‘만렙’은 하나의 게임에서 최고의 레벨에 이르는 것을 뜻하는 말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이 이해하기 어려운 신조어들이다.

물론 젊은 층이 주로 시청하는 프로그램에서 신조어를 쓴다고 해서 그렇게 문제 삼을 일이냐고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TV는 기본적으로 모든 연령층이 시청하는 매체다. 젊은 세대들마저 이러한 신조어를 제대로 모르는 것이 많다고 한다.

자막은 프로그램 내용을 명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본래 취지다. 자막에 지나치게 재미를 불어넣으려다 보면 오히려 방송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하고 언어 파괴라는 비교육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배상복 기자 sbb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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