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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조 기업 물려준대도 "싫다"는 2세···中 기업들 승계 고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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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중국판 우버 디디추싱의 류칭(柳青·41) 총재(사장 격)는 아버지 사업을 물려받는 대신 ‘마이웨이’를 택한 푸얼다이(富二代ㆍ재벌 2세)다. 중국 정보기술(IT) 업계의 대부로 불리는 레노버 창업자 류촨즈(柳傳志·75)의 딸이지만 이력 가운데 레노버와 관련된 건 없다.

경제성장 견인 1세대 상당수 은퇴 앞둬 #유학파에 신사업 원하는 2세들 '독립' 선호 #“가업 승계 질과 성공이 中 경제 미래 결정”

베이징대와 하버드대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했고, 골드만삭스에서 12년간 애널리스트로 일했다. 그러다 2014년 연봉을 깎으면서까지 스타트업 디디다처(디디추싱 전신) 최고운영책임자(COO)로 합류했고, 이듬해 사장 자리에 올랐다. “고난이 따라도 선택한 길이니 고생이라 여기지 말라”고 했다는 아버지 류촨즈는 2011년 결국 전문경영인인 양위안칭(楊元慶) 최고경영자(CEO)에게 레노버 회장직을 넘겼다.

중국 레노버 창업자 류촨즈와 딸 류칭. [사진 바이두]

중국 레노버 창업자 류촨즈와 딸 류칭. [사진 바이두]

창업 1세대들 험난한 승계

개혁·개방 40주년을 맞이한 중국에서 1980년대 이후 창업한 1세대 기업가들이 ‘경영권 승계’라는 새로운 고민거리를 맞닥뜨리고 있다. 창업주 본인은 은퇴를 준비해야 하는 시기가 됐지만 류칭처럼 가업 승계보다 독립을 원하는 2세들이 늘면서다. 가족경영 풍조가 뚜렷한 중국에서는 기업을 자녀에게 물려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중국 상장 민간기업 2000개 가운데 오너 나이가 55세 이상인 곳이 3곳 중 1곳꼴이다. 전체의 15%는 60세를 넘겼다. 그런데 베이징대 조사에 따르면 중국 기업 창립자의 자녀 80%는 부모의 기업체를 상속받지 않겠다고 한다.

중국 최고 금수저 중 한명인 완다그룹 회장 외아들 왕쓰총(王思聪·31)이 대표적이다. “아버지 같은 삶을 살고 싶지 않다”며 자산 100조원 넘는 가업 승계를 거부해 화제가 됐다. 2009년에는 장쑤성 쑤저우(蘇州)시에 사는 23세 부호 청년이 애니메이션 제작에 손을 떼고 가업을 물려받길 바라는 부모에 반발해 손가락 네 개를 잘라버린 사건도 있었다. 저장성 츠시(慈溪)에 위치한 하이테크 소재 기업 창립자의 딸인 쉬지아는 지분을 주겠다는 아버지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 “관심 없는 일을 하고 싶지 않다”면서다. 대신 영국 런던에서 석사 과정을 마친 뒤 창업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중국 완다그룹 외아들 왕쓰총. [사진 중국시보 캡처]

중국 완다그룹 외아들 왕쓰총. [사진 중국시보 캡처]

실제로 SCMP가 회계법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의 조사를 인용한 바에 따르면 중국 본토 가족기업 가운데 21%만 승계 계획을 세웠다. 이는 글로벌 평균보다 28% 포인트 낮다고 한다. SCMP는 “서양에서 교육을 받은 많은 자녀들이 자신만의 사업을 꾸리거나 다른 기회를 잡음으로써 자신을 증명하고 싶어한다”고 전했다.

헤니 센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홍콩 주재 선임기자도 “중국 기업들에 있어 승계는 가장 큰 장애물”이라며 “한때 무적(invincible)으로 보였던 1세대 기업가들이 (승계)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관심 없다” 승계 거부하는 푸얼다이, 왜

부호 2세들의 '승계 거부'엔 중국 고성장 신화가 막을 내린 게 한몫한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창업과 함께 성공가도를 달린 부모 세대와 달리 중국 경기가 둔화하면서 기업경영이 만만치 않은 상황이 이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특히 시진핑(習近平) 정권 들어 ‘국진민퇴(국유기업은 발전하고 민영기업은 쇠퇴한다)’로 비지니스 환경이 위축된 것도 영향을 줬을 것이란 설명도 있다.

여기에 ‘중국제조 2025’라는 첨단산업 육성을 내거는 상황에서 화학, 섬유, 저가 제조업 같은 구세대 산업을 물려받는 것에 대한 거부감도 있다. 포춘제너레이션은 제조업계 재벌 2세 가운데 65%는 제조업에서 일을 하고 싶지 않아 한다고 전했다. 중국유럽국제경영대학원의 진리 교수는 “해외 경험이 풍부한 자녀들은 더 많은 선택권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금융이나 투자 분야를 선택하고 자신의 회사를 차리길 원한다”고 말했다.

중국 디디추싱 총재 류칭. [로이터=연합뉴스]

중국 디디추싱 총재 류칭. [로이터=연합뉴스]

40년간 형성된 중국의 국가자본주의가 배경에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동원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1세대들은 정치 권력의 변화를 견뎌내온 사람들”이라며 “해외에서 정치가 아닌 재무교육을 먼저 받은 새 세대들은 가업을 물려받음으로써 직면하게 될 정경유착 같은 복잡한 정치적 계산이 싫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최대 음료업체 와하하그룹 회장의 외동딸로 미국 대학을 졸업한 뒤 중국으로 귀국해 아버지 사업을 도운 종푸리(宗馥莉)는 영국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부패한 중국 사회를 간접 비판한 바 있다. “우리는 영혼을 잃은 것 같다. 미국에는 기독교, 가톨릭의 신념이 있고 중국에는 불교가 있지만, 사람들은 그런 신념에 따라 살지 않는 것 같다”면서다.

호주 국립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이 발간하는 이스트아시아포럼은 “해외에서 교육을 받은 2세대들은 종종 회사 경영을 놓고 부모와 마찰을 빚는다”며 “이들은 가족기업에 서양식 경영 체제를 도입하기를 바라지만 부모들은 서구화된 방식이 중국 내 현실과 양립할 수 없다고 믿는다”고 전했다.

가족승계 아닌 전문경영인에

이러다보니 류촨즈처럼 경영권을 자녀가 아닌 전문경영인에게 넘겨주는 기업이 늘고 있다. 중국 최대 가전업체 메이디그룹의 허샹젠(何享建) 전 회장도 그런 사례다. 40년 넘게 일군 기업의 회장직을 2012년 팡훙보(方洪波) 메이디전기 회장에게 넘겨줬다. 조기 은퇴를 선언한 마윈 알리바바 그룹 회장도 아들이 아닌 장융(張勇) CEO를 후임자로 지목했다. 그는 평소 대물림 세습경영을 타파하겠다며 가업 승계에 선을 그어왔다. 매기 정 중국 최고 기업인클럽 회장은 “이제 지도자들은 자녀들을 포함해 더 나은 자격을 갖춘 사람들에게 최고 역할을 부여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중국 가족기업의 79%는 승계 계획을 확정하지 못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중국 가족기업의 79%는 승계 계획을 확정하지 못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다만 외부 출신 경영인에게 맡길 경우 신뢰도가 낮아 오래 버티지 못한다는 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중국 경제학자 송칭후이는 “충성심은 중국 기업가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핵심 가치”라며 “외부 관리자가 가족 사업을 충실히 이해하는 것은 어렵고, 가족 지도자도 외부인을 신뢰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 후위안 주스그룹은 외부 관리인을 고용해 신임 회장과 사장직을 맡겼지만 그가 1년 만에 사임하기도 했다.

일각에선 전문경영인이 과도기 역할을 하며 궁극적으론 2세대의 매끄러운 승계를 돕는 방안을 제언한다. 최대 사료공급업체인 뉴호프 그룹의 류웅하오(刘永好) 회장이 딸에게 기업을 물려주기 전 3년간 기업전략가를 공동 대표로 고용한 것처럼 말이다.

알리바바 그룹 창업자인 마윈 회장. [AFP=연합]

알리바바 그룹 창업자인 마윈 회장. [AFP=연합]

승계 문제는 향후 중국 경제의 향방과도 관련돼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중화전국공상업연합회에 따르면 중국 1000만개 민간기업은 국내총생산(GDP)의 60%를 차지할 정도로 영향력이 크다. 2011년말 기준 이 중 8%는 가족기업으로 경영권 승계 작업이 삐걱댈 경우 중국 경제에 미치는 여파가 클 것이라는 우려다.

송칭후이는 “사기업의 승계는 중국 경제의 건강과 안정에 중요하다”며 “민간기업 승계의 질과 성공이 향후 몇십년간의 중국 경제 미래를 결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철부지 2세에 기업을 맡겼다가 몰락의 길 걷기도 

하이신철강 아들 리자오후이. [사진 중국 시나파이낸스]

하이신철강 아들 리자오후이. [사진 중국 시나파이낸스]

가업 승계가 중요한 건 자칫 상속자를 잘못 고를 경우 사세가 기울기도 해서다. 산시성 최대 민영철강 회사인 하이신(海鑫) 철강이 대표적이다. 창업주인 리하이창(李海仓)이 2003년 피살된 후 아들이 경영을 넘겨받았는데 20대의 어린 나이에 시가총액 70억 위안에 달하는 기업 경영권을 승계한 그는 주식 투기에 열을 올리며 자산을 늘려갔다. 한때 최연소 부호에 오르기도 했지만 결국 회사 경영에 소홀하면서 2014년 아버지 회사를 부도로 내몰았다. 중국 유명 제약 상장사 하이샹약업도 아들의 도박 탓에 회사 경영권을 투자자에 뺏긴 경우다.

황수연 기자 ppangsh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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