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로호 선사 유물 "하나라도 더 찾자"-또다시 물에 참기는 양구·화천 선사유적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평화의 댐 공사로 43년만에 햇빛을 보았던 강원도 양구·화천 2개 군에 걸쳐있는 파로호의 선사유적지가 또 다시 물 속에 잠기게 된다.
한강수력발전처가 86년 평화의댐 건설로 파로호 물을 빼기 위해 화천댐에 뚫어놓았던 5개수로(직경5m 패쇄작업을 시작, 6월말까지 공사를 끝내고 담수를 하게되기 때문이다.
86년12월부터 물이 빠져 두 차례에 걸쳐 이 지역 유적을 발굴해봤던 강원대발굴조사단(단장 최복규) 은 이 지역이 물에 잠기기 전에 하나의 유물이라도 더 수습하기 위해 지난달 15일부터 3차 발굴에 들어갔다.
이 지역이 구석기시대의 선사유적지로 학계의 관심을 끌게된 것은 87년5월.
당시 지표조사와 발굴조사에서 대량의 구석기시대 유물과 유적이 발견·수습되는 등 양구읍 공수리에서 화천읍 동촌리까지 2km에 이르는 광활한 지역이 구석기 유적지로 확인됐다.
현재까지 강원대발굴조사단과 경희대발굴조사단에 의해 수습된 유물만 6천여 점에 이른다.
찍개·사냥돌·망치돌·긁개·돌날걱지 등의 유물과 함께 선사인들의 이동 경로를 밝혀줄 혹요석 2백51점, 이암(이암) 석기 20여 점 등 3만∼10만년전의 중기구석기와 후기구석기시대 유물이 대량으로 수습됐고 청동기시대의 지석묘 1백여 기도 재조사됐다. 이와 함께 화천댐이 건설되기 전 있었던 화천 광동학교와 양구 상무룡학교 등의 학교 터·마을 등 유적들도 다시 모습을 드러내 당시 이 고장에 살았던 주민들이 40여 년 만에 고향을 다시 보는 감격을 맛보기도 했다.
파로호 선사유적지가 학계의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은 경기도 연천군 전곡리 유적지와 쌍벽을 이루는 국내 최대규모의 유적지인데다 함경도 융기, 강원도 양양군 오산리, 충남 공주군 석장리에서 발견된 혹요석이 대량으로 수습돼 민족의 이동경로를 구명할 수 있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최복규교수(강원대박물관장) 는 『이 유적지의 성격은 3차 발굴이 끝난 후 종합적인 분석에 따라 밝혀지겠지만 현재의 상황에서 전곡리 유적과 흡사하다』며 『다양한 문화층을 향유한 파로호 유적지가 다시 수장되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최교수는 『3차의 발굴로 파로호 유적지를 모두 찾아볼 수는 없다』고 밝히고 『어디에고 숨어있을 유물·유적들이 햇빛을 보지 못하고 다시 수장되는 것은 고고학계의 손실로 총체적인 발굴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학계의 아쉬움뿐만 아니라 40여년 전 이곳에 살았던 주민들 또한 잠시나마 되찾은 고향의 모습이 물 속에 잠기게 되는 것을 아쉬워하고 있다. 수몰이 된 곳은 화천군 간동면 태산리와 양구군 양구읍 상무룡리 등 2곳이다.
지난해 5월 5일 자신이 다녔던 화천군 간동면 태산리 광동학교터에 찾아가 「화천 광동학교 구지」란 표석을 세웠던 김병두씨(춘천교대학장) 등은 학교 터가 물에 잠기기전에 찾아가 표석들이 물에 잠기더라도 훼손되지 않게 단장할 계획이다.
이 학교는 김대식씨(70·초대해병대사령관)부친 김영대 선생이 설립한 학교로 1930년 일제에 의해 강제 폐교됐었다.
20일에도 김대직씨와 학교 터를 다시 방문하는 계획을 논의했다는 김두병학장은 『이제 학교 터가 물에 잠기면 언제나 다시 고향 학교를 찾을 수 있을 지 알 수 없다』며 『학교는 물에 잠기지만 민족학교로서의 뜻을 기리기 위해 자료를 수집, 학교사를 발간하겠다』고 말했다.
양구군의 공무원재직시절 선사유적지인 양구읍 상무룡리에 수없이 다녔다는 손종금씨(70·양구읍 상리) 는 『1백40여가구가 살던 상무룡리는 물이 맑고 고기가 많이 잡혀 천렵하기에 좋은 마을이었다』고 회상하고『물에 감기기 전에 다시 한번 천렵을 하고 싶지만 그곳에 살던 옛친구들이 없는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한편 선사유적지가 물에 잠기게 되자 양구군은 상무룡리 일대가 국내 최대의 유적지였음을 알리기 위한 방안을 마련중이다.
그러나 종합평가가 이루어지지 않은 현재로서는 수습된 유물을 전시하기 위한 전시관 건립 등 계획은 세우지 못하고 있으며 보존상태가 좋은 지석묘 이전도 재원마련이 어려운 상태.
양구군은 11기의 지석묘를 지방기념물로 지정해주도록 도에 건의했고 지방기념물로 확정되면 새로 건설되는 종합운동장주변으로 이전할 계획이나 올해 안에 실현은 어려울 것 같다.
군 관계자는 『지석묘가 위치한 공수리나 고대리는 갈수기때 물이 빠져 언제라도 이전할 수 있다』며 『문제는 관연 유적이전이 바람직하느냐는 점』이라고 말했다. 【양구=이찬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