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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초마다 바닷속 '우주왕복선' 소음...해양생태계 위협하는 '오바마 뒤집기'

중앙일보

입력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연안에서 원유 및 가스 시추를 대대적으로 허용함에 따라 연안 지역의 주와 환경단체들의 반발이 거세다. [AP=연합뉴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연안에서 원유 및 가스 시추를 대대적으로 허용함에 따라 연안 지역의 주와 환경단체들의 반발이 거세다. [AP=연합뉴스]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연안에서 원유와 가스 시추를 대대적으로 허용하는 이른바 ‘에너지 우위(Energy Dominance) 정책’을 본격화함에 따라 백악관과 환경단체, 해안 시추에 반대하는 주 정부와의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 특히 원유와 가스 매장 여부를 탐지하기 위해 발사되는 ‘탄성파 공기총(Seismic Airgun)’ 사용도 정부가 허가함에 따라 해양 생태계가 악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404만㎢ 탄성파 공기총 사용 허가...해양 생태계 파괴하는 ‘오바마 뒤집기’

지난 4일(현지시각) 뉴욕타임스(NYT)와 AP통신에 따르면 라이언 징크 전 미국 내무장관은 에너지 업계가 태평양·대서양·멕시코만에 걸친 거의 모든 미국 연안에서 석유와 가스를 시추할 수 있도록 허가하는 5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임기 말 연방정부 소유의 북극 및 대서양 41만㎢에서 석유와 가스 시추를 영구 금지한 조치를 정면으로 뒤집는 이른바 ‘오바마 뒤집기’다. 징크 전 장관은 같은 날 “이 계획이 실행되면 미 연안에 매장된 에너지의 90%가 개발 목적으로 사기업에 개방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개방 면적은 약 10억 에이커(약 404만 6000㎢)에 달한다.

라이언 징크 전 내무부 장관은 미국 내 5개 에너지 기업이 플로리다 중부부터 동부해안 전역에 대해 탄성파 공기총 사용을 허가한다고 4일(현지시각) 발표했다. NYT는 3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고 보도했다. [AP=연합뉴스]

라이언 징크 전 내무부 장관은 미국 내 5개 에너지 기업이 플로리다 중부부터 동부해안 전역에 대해 탄성파 공기총 사용을 허가한다고 4일(현지시각) 발표했다. NYT는 3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고 보도했다. [AP=연합뉴스]

문제가 되는 것은 에너지 업체들이 사용하는 탄성파 공기총이다. 해저에서 자원이 매장돼 있는 곳을 찾기 위해서는 해저 수 ㎞까지 뚫고 들어갈 수 있는 음파를 사용해야 한다. 이들이 반사돼 돌아오는 패턴을 음파 탐지기로 감지하면, 이를 3차원으로 구현해 오일과 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큰 지역을 알 수 있다. 일종의 해저 자원 지도를 그리는 것이다.

우주왕복선 발사 소리보다 큰 공기총...동물성 플랑크톤, 고래에 치명적 

이 음파는 해저 생태계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호주 커틴대와 태즈메이니아대가 2017년 ‘네이처 생태와 진화(Nature Ecology & Evolution)’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공기총이 내는 음파는 동물성 플랑크톤과 크릴 등 미세한 유기체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해양 먹이사슬 최하층에서 다양한 생물의 먹이가 되기 때문에 피해가 더욱 심각하다는 것이다.

고래는 소리를 통해 의사소통을 하는 등 고도의 사회생활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탄성파 공기총은 고래에게 치명적 영향을 미친다. 2001년 9ㆍ11테러 이후 선박 운행이 감소했을 당시, 과학자들은 고래의 배설물을 조사해 이들의 스트레스가 줄어들었다는 것을 밝혀내기도 했다.[로이터=연합뉴스]

고래는 소리를 통해 의사소통을 하는 등 고도의 사회생활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탄성파 공기총은 고래에게 치명적 영향을 미친다. 2001년 9ㆍ11테러 이후 선박 운행이 감소했을 당시, 과학자들은 고래의 배설물을 조사해 이들의 스트레스가 줄어들었다는 것을 밝혀내기도 했다.[로이터=연합뉴스]

더글라스 노와첵 듀크대 해양보존기술학과 교수는 “에너지 기업들은 이런 탄성파 공기총을 약 10초 간격으로 24시간, 수개월에 걸쳐 쏜다”며 “약 4000㎞ 밖에서도 음파가 탐지될 만큼 매우 크다”고 밝혔다. NYT에 따르면 공기총이 발사될 때 나는 소리는 최대 260 데시벨(dB)에 달한다. 우주왕복선이 발사될 때 발생하는 소음이 약 160dB임을 고려하면 상상하기 힘든 수준이다. 특히 물은 공기보다 밀도가 높기 때문에, 공기 중에서보다 소리가 4배나 더 빠르고 멀리 이동한다.

특히 공기총은 다양한 소리를 내며 의사소통을 하는 고래에게 더욱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조사됐다. 소리에 극도로 민감한 부리고래(Beaked Whale)는 공기총의 소리를 피하려고 수면으로 도망치다 질소 거품이 신경을 영향을 미치는 ‘감압병’에 걸려 폐사한 사례도 보고되고 있다. 국제 환경단체 그린피스는 “주로 북극에 살며 계절에 따라 이주를 하는 일각돌고래의 경우, 소음으로 인해 이주를 중지한 것으로 보인다”며 “고래가 얼음 바다에 갇혀 죽음을 맞고 있다”고 밝혔다. 이 외에도 해양생물은 뇌출혈이나 청력 손상을 겪으며, 만성적 스트레스로 번식에도 영향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계절에 민감한 일각 고래는 주로 북극에 서식하지만, 온도 변화에 따라 서식지를 옮겨다닌다. 최근 바닷속 소음이 증가해, 이들의 이주가 끊겼고 얼음 아래서 폐사하는 사례도 보고되고 있다. [중앙포토]

계절에 민감한 일각 고래는 주로 북극에 서식하지만, 온도 변화에 따라 서식지를 옮겨다닌다. 최근 바닷속 소음이 증가해, 이들의 이주가 끊겼고 얼음 아래서 폐사하는 사례도 보고되고 있다. [중앙포토]

그럼에도 이미 5개 에너지 기업이 플로리다 중부부터 미 동부 연안 전체에 대해 탄성파 공기총을 사용해 해양 지도를 그릴 수 있도록 허가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30년 만에 처음이다. 환경단체들은 관계 당국인 미 국립해양수산부가 ‘멸종위기종보호법’ 등 복수의 연방법을 위반한 것으로 보고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NYT에 따르면 미 서부 연안의 오리건, 캘리포니아, 워싱턴 주와 동부 연안의 메릴랜드 주 등 10개 주 주지사들도 이런 법적 조치에 동참하는 것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9일 신임 환경보호청장에 석탄 로비스트 출신 앤드루 휠러를 지명하고, 자동차 배출가스 규제 강화를 중단하는 등 잇따른 반(反) 환경보호 정책으로 비판을 받고 있다.

2010년 4월 발생한 이른바 '딥 워터 호라이즌 호 폭발사건'. 미국 사상 최악의 원유 유출 사건이라고 알려져있다. 캘리포니아 주는 이 때문에 트럼프 정부의 원유 시추 허가 정책에 반대하고 있다. [AP=연합뉴스]

2010년 4월 발생한 이른바 '딥 워터 호라이즌 호 폭발사건'. 미국 사상 최악의 원유 유출 사건이라고 알려져있다. 캘리포니아 주는 이 때문에 트럼프 정부의 원유 시추 허가 정책에 반대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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