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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으로 기업 옥죄기···상장사 300곳 비상 걸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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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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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23일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수탁자 책임 원칙)를 적극적으로 행사하겠다”고 밝히면서 국민연금의 보유 지분이 많은 상장사에 비상이 걸렸다.

국민연금의 투자 규모는 국내 증시의 투자자 가운데 압도적인 1위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9월 말 기준으로 약 124조원의 자금을 국내 주식에 투자하고 있다. 스튜어드십 코드를 행사할 때 기준이 되는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회사만 300곳에 가깝다. 전체 상장사의 약 일곱 곳 중 한 곳꼴(14%)이다.

증시에서 시가총액 1위인 삼성전자(국민연금 지분율 8.97%)를 비롯해 SK하이닉스(9.1%)ㆍ현대자동차(8.7%) 등 주요 대기업 계열사들이 대부분 포함된다. 국민연금이 10% 이상 지분을 보유한 기업도 대한항공(11.56%)ㆍ포스코(10.72%)·신세계(13.49%) 등 80곳에 달한다. 이들 기업의 주주총회에서 최대주주나 경영진이 올린 안건에 국민연금이 반대표를 행사할 경우 해당 기업으로선 큰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포스코ㆍKT(12.19%)·KT&G(10%) 등 국민연금이 이미 최대주주에 오른 상장사도 적지 않다. 과거 공기업이었다가 민영화되면서 특정한 주인이 없는 기업의 경우 정부가 국민연금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국민연금은 최근 ‘스튜어드십 코드 가이드라인’을 공개했다. 여기선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할 ‘중점관리 기업’을 선정하는 기준으로 네 가지를 제시했다. 이 중 ‘법령 위반 등으로 기업가치를 훼손하거나 주주권익을 침해하는 사안’은 문 대통령이 강조한 내용과 일치한다.

이밖에 ^기업의 배당정책 수립 ^임원 보수 한도의 적정성 ^지속적인 반대 의결권 행사에도 개선이 없는 사안 등도 국민연금이 제시한 기준에 포함됐다.

국민연금은 이미 지난해부터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하고 있다. 정몽규 HDC 회장의 사내이사 선임 안건, 박병대 신한금융지주 사외이사 선임 안건, 대우건설의 이사 보수한도액 승인 안건 등에서 국민연금은 반대표를 던졌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지난해 1월부터 10월까지 총 726회의 주총에 참석해 2782건의 안건에 대한 의결권을 행사했다. 이 중 반대 의견은 535건으로 전체 주총 안건의 19.23%를 차지했다. 2017년(12.87%)보다 6.36%포인트 높아졌다.

올해는 국민연금이 어떤 기업의 주총에 참석해 어떤 안건에 반대표를 던질지가 관심이다. 국민연금의 가이드라인에는 정기적인 환경ㆍ사회ㆍ지배구조(ESG) 평가등급이 일정 수준 이상 떨어져 하위등급에 해당하는 경우 중점관리 대상에 포함하도록 하고 있다. 예상치 못한 기업가치 훼손이나 주주권익을 침해할 우려가 발생한 경우 단계별 수탁자 책임 활동을 추진한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하이투자증권은 최근 ‘강성부 펀드’의 공격 대상이 된 한진과 한진칼을 비롯해 대한항공 등이 국민연금의 가이드라인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합리적인 배당정책을 수립하고 공개하지 않는 기업 등도 국민연금의 중점관리 대상 기업에 포함될 수 있다”며 대림산업과 현대그린푸드 등 관련 기업으로 꼽았다.

신한금융투자는 최근 보고서에서 대주주 지분율이 낮으면서 배당성향과 이익률이 저조한 곳으로 SK하이닉스ㆍ네이버ㆍ넷마블ㆍ카카오 등을 제시했다. 이 중 네이버는 국민연금이 10%의 지분을 보유해 최대주주에 올라있는 기업이다.

김수현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지난해부터 국민연금이 상장사에 배당 확대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며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과 맞물려 해당 기업들의 배당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정용환 기자 jeong.yonghwa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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