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론이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도 공연된 일이 있는『에비타』는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4년여의 장기 공연을 기록한 뮤지컬이다.
주인공 「에비타」는 라틴아메리카의 독재자인 전 아르헨티나 대통령 「페론」의 두 번째 부인 「에바」다. 사생아로 태어나 15세때 배우가 되겠다고 무작정 상경한 그녀는 카바레 등을전전하다가 20세때에야 간신히 단역 배우 자리를 얻는다.
그리나 43년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자 그녀는 잽싸게 군의 고급 장교들 가운데 「페론」대령이 실력자임을 알고 접근, 동거한다.
쿠데타 후 부통령이 된 「페론」이 정적들에 의해 구속되자 「에바」는 권력을 장악하려면 군부 외에 노동자의 힘이 절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녀는 공장과 부두, 노조를 돌아다니며 「페론」의 지지를 호소한다.
마침내 50만 노동자들이 거리에 쏟아져 나오고 「페론」은 출감한다. 그는 출감하자마자 「에바」와 결혼식을 올리고 46년 2월 대통령에 취임한다.
퍼스트 레이디가 된 「에바」는 「에바-페론」 재단을 만들어 기업에 압력을 넣는다. 정부 예산의 3분의 1이 넘는 재단기금은 노동자들을 위한 자선행위와 자신의 사치 행각에 모두 탕진한다. 그리고 그녀는 결국 암으로 죽는다.
뮤지컬 『에비타』는 한 여성의 생애를 통해 아르헨티나의 그늘진 한 시대를 조명하고 있다.
대평원으로 이뤄진 국토면적 2백 80만평방㎞의 아르헨티나는 육류와 곡물 수출로 40년대 초까지만 해도 세계 5대 부국 중 하나인 축복 받은 나라였다.
그러나 군부에 의한 잇단 쿠데타와 노동자의 과욕에 의한 경제파탄은 오늘날 아르헨티나를 세계 최대의 채무국으로 만들었다.
최근 외신은 아르헨티나의, 도매물가 상승률은 4백 60%,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천%, 아우스트랄 화의 대달러 가치는 4월중에만 65% 하락했다고 보도했다. 외채도 5백 90억달러가 넘고 외환보유고도 1년 전의 5분의 1수준인 7억달러로 떨어졌다.
그 와중에서 페론이즘의 추종자 「베넥」이 새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그는 노동자의 임금을 올려주고 기업들에 신용대출을 확대함으로써 생산과 소비를 활성화시킬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페론」의 망령이 만신창이 아르헨티나를 구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