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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핵무기 생산 중단, 미국은 석유 제재 완화 카드 내미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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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비핵화를 위한 ‘스톡홀름 담판’이 21일(현지시간) 마무리됐다. 스웨덴 스톡홀름 인근의 산속 협상장에서 스티븐 비건 미국 대북특별대표와 북한 최선희 외무성 부상,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등이 모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19일 미국 워싱턴DC에서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을 면담하고 나서 “비핵화와 관련해 큰 성과가 있었다. 북미 정상회담의 장소도 정했다”고 밝히면서도 디테일한 협상 결과에 대해서는 함구, 공을 스톡홀름으로 넘겼다. 스톡홀름 협상에서 북한이 제시한 비핵화 조치가 무엇이었냐에 따라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의지도 드러날 전망이다. 한·미 워킹그룹의 비핵화 구상 등을 바탕으로 스톡홀름에서 오갔을 수 있는 북·미 양측의 협상 카드를 정리했다.

스웨덴 스톡홀름 외곽 산골에 있는 회담장의 입구를 무장경찰들이 지키고 있다. [스톡홀름=김성탁 특파원]

스웨덴 스톡홀름 외곽 산골에 있는 회담장의 입구를 무장경찰들이 지키고 있다. [스톡홀름=김성탁 특파원]

 북한, 핵무기 생산 중단 카드 내놓을 수도

 ①핵무기 생산 중단=워킹그룹 내 한국 측 협상팀이 예측하는 북한의 비핵화 조치 중 현실성이 높은 조치 중에는 핵무기 생산 동결이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1월 신년사를 통해 핵무기 4불 원칙(생산ㆍ시험ㆍ사용ㆍ전파)을 밝혔다. 2017년 신년사에서 핵무기 대량 생산을 지시한 이래 이에 대한 중단 가능성을 김 위원장 육성으로 시사한 것이다. 이 때문에 북측이 제시할 비핵화 조치는 핵무기의 추가생산 중단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하지만 핵무기 생산 동결은 기존의 핵실험 및 미사일 발사 중단에 이은 추가 동결 조치에 불과해 미국이 만족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2012년 12월 북한 평안북도 동창리 미사일 시험장에서 장거리 로켓 은하 3호가 발사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9월 평양공동선언에서 비핵화 선제조치로 이곳을 영구 폐쇄하겠다고 밝혔다. / 사진:연합뉴스

2012년 12월 북한 평안북도 동창리 미사일 시험장에서 장거리 로켓 은하 3호가 발사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9월 평양공동선언에서 비핵화 선제조치로 이곳을 영구 폐쇄하겠다고 밝혔다. / 사진:연합뉴스

 ②동창리 미사일실험장 폐쇄 및 국제원자력기구(IAEA) 검증=앞서 남북 정상은 지난해 9월 평양선언을 통해 동창리의 엔진시험장 및 발사대 폐기를 합의했다. 미사일 실험장 폐쇄는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사를 통해 가능한 조치로 재언급한 만큼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중거리탄도미사일(IRBM)의 국외 반출 여부도 논의 대상이지만 실무 협상팀은 북한이 초기 단계에서 이를 제시하지는 않을 것으로 판단해 왔다. 협상팀 사정을 잘 아는 소식통은 “미사일이 단 한 기라도 미국에 넘어가는 순간 북한의 개발 능력이 노출되기 때문에 쉽게 내놓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단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를 받은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큰 성과가 있었다”고 언급한 만큼 북한이 뭔가 카드를 내놨을 가능성은 있다.
 ③영변 핵시설 폐쇄 및 검증=현실성 차원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조치가 될 수 있다. 폐쇄는 ‘해체(decommission)’ 수준을 말한다. 이미 2008년 6자회담에서 영변 핵시설의 불능화를 합의해 초기 단계인 단순 중단(shut down) 및 시설 폐쇄(close down)를 논의했기 때문에 지금 시점에서는 이 보다는 높은 불가역적 조치인 '해체'여야 한다는 뜻이다. 검증과 관련해선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방북을 허용하는 게 전격적 카드가 된다. 2012년 2.29 합의에서 북한은 "영변의 우라늄 농축 활동을 일시 중지하고 IAEA의 사찰을 수용하겠다"고 한 적이 있다.

미국의 북한 전문매체 [38노스]가 8월 공개한 위성 영상. 북한 영변 핵단지 재처리시설 화력발전소에서 옅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미국의 북한 전문매체 [38노스]가 8월 공개한 위성 영상. 북한 영변 핵단지 재처리시설 화력발전소에서 옅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④검증 수용에 비핵화 의지 달려 있어=협상팀은 과거 북핵 협상이 숱하게 실패한 요인을 신고·검증 문제로 본다. 이번 협상에서 미국이 비핵화 초기 단계에서 핵무기ㆍ프로그램에 대한 완전한 신고·검증을 요구하지 않기로 한 것도 이 때문이다. 대신 북한이 제시하는 비핵화 조치에 대해서는 기존의 방문 수준 검증은 안 된다는 입장이다. 서울의 한 외교 소식통은 "영변 핵 시설의 핵물질 시료 채취 등을 허용한다면 북한이 어느 정도 비핵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협상에서 거론되지 않고 있는 우라늄농축프로그램(HEU) 논의가 나올지도 주목된다. 크리스토퍼 힐 전 6자회담 수석대표는 지난해 "북한 강선 지역에 핵심적인 HEU 프로그램이 집중돼 있다"고 밝혔다.

北, 김정은 언급 '핵무기 생산 중단' 예상, 동결 수준 #미사일 실험장·영변 핵시설 폐쇄는 검증 수반 돼야 #美, 북한 조치 따라 종전선언·연합훈련 중단 카드 등

 미국 상응조치 북한에 달려, 석유 수입 쿼터 늘리는 카드 있어

 미국은 북한의 실질적인 비핵화 움직임이 없이 제재완화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스톡홀름 회담에서 북한이 내민 카드가 무엇이냐에 따라 상응조치도 달라질 수 있다.
 ①종전선언=현재로서 미국이 줄 수 있는 ‘당근’은 종전선언을 꼽을 수 있다. 평화협정 전 단계이자 지난해 북·미 싱가포르 정상회담 4대 합의사항 중 ‘평화 체제보장’에 해당하는 조치로 북한이 충분한 검증 허용과 같은 높은 수준의 조치를 취할 경우 전격적으로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신범철 아산연구소 안보통일센터장은 “미국 조야에선 북한이 종전선언을 사실상의 평화협정 체결로 간주하고 주한미군 철수나 유엔사 해체 등으로 연동할 것이라는 우려가 큰 상황"이라며 "종전선언을 협정문에 포함시키더라도 ‘정치적 선언’이라는 점을 명문화해 해석상의 여지를 남기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Acting Secretary of the Interior David Bernhardt, left, and acting Secretary of Defense Patrick Shanahan, right, listen as President Donald Trump speaks during a cabinet meeting at the White House, Wednesday, Jan. 2, 2019, in Washington. (AP Photo/Evan Vucci)

Acting Secretary of the Interior David Bernhardt, left, and acting Secretary of Defense Patrick Shanahan, right, listen as President Donald Trump speaks during a cabinet meeting at the White House, Wednesday, Jan. 2, 2019, in Washington. (AP Photo/Evan Vucci)

 ②경제 제재 완화 및 테러지원국 해제 가능성은=현재 미국은 "비핵화 없는 제재 완화는 없다"는 입장이지만, 북한의 태도에 따라 파격적인 조치가 불가능한 건 아니다.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로 묶어 놓은 석유 수입량(원유·정제유 총 7만t, 북한 한해 수요의 절반 가량)을 일부 늘려줄 수 있다. 포괄적인 경제 제재 해제를 의미하는 테러지원국 해제(2017년 11월 지정)는 의회의 동의가 필요해 당장은 어렵다. 미 의회는 지난해 테러지원국 해제 요건을 높인 ‘수출통제법 개정안(Export Control Reform Act)’을 초당적으로 통과시켰다.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되면 2년간 해제될 수 없고, 해제 시 의회의 검토 기간이 45일에서 90일로 대폭 늘었다. 트럼프 행정부가 셧다운으로 하원과 등을 돌린 상황에서 대북제재 완화를 위한 '원포인트 특별법' 통과도 여의치 않다. 역시 북한이 핵무기ㆍICBM 반출 또는 시료 채취 허용과 같은 전례 없는 카드를 내밀어야 의회를 설득할 명분이 생긴다.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 로비에서 워킹그룹 2차 회의를 마친 뒤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 로비에서 워킹그룹 2차 회의를 마친 뒤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③평양-워싱턴 연락사무소 개설=양국 관계 정상화의 신호탄으로 연락사무소 개설을 논의할 수 있지만, 언제든 폐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낮은 단계의 조치라는 시각도 있다. 베트남은 95년 미국과 관계 정상화를 하기 6개월 전 대사관에 해당하는 연락사무소를 워싱턴에 개설했다. 신 센터장은 "북측에선 장기적으로 부담이 될 수 있는 연락사무소보다 한·미 연합훈련의 중단 등과 같은 실리적인 조치를 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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