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폭 왜 처벌 않나" 쇠사슬 두른 588집창촌 시위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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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2층짜리 폐상가 건물 옥상에서 '588집창촌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소속 관계자들이 3일째 철거 보상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윤상언 기자

15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2층짜리 폐상가 건물 옥상에서 '588집창촌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소속 관계자들이 3일째 철거 보상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윤상언 기자

15일 오전 동대문구 전농동 청량리4재정비촉진구역(청량리4구역)엔 침묵이 감돌았다. 사람들이 다 빠져나간 동네에 재개발을 앞둔 폐건물들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 사이에 위치한 2층짜리 건물 옥상에 한 남자가 걸터앉아있었다.

건물 옆 전봇대와 연결된 쇠사슬을 목에 두른 채였다. 이 남자는 바로 588 집창촌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관계자 중 한명인 최창욱(50)씨다. 비대위는 이전부터 청량리 재개발 이주 보상비 관련 시위를 벌이던 단체다.

최씨의 뒤에는 함께 농성 중인 비대위 관계자 4명이 서성이고 있었다. 건물 옆에는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준비된 에어메트리스가 놓여있었다.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2층짜리 폐상가 건물 옥상에서 '588집창촌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소속 관계자들이 철거 보상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윤상언 기자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2층짜리 폐상가 건물 옥상에서 '588집창촌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소속 관계자들이 철거 보상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윤상언 기자

최씨를 포함한 시위자 5명은 지난 13일 오전 비대위 운영진 측과 상의 없이 돌연 건물에 올라 시위를 시작했다. 이에 비대위 측은 이들의 시위를 전혀 알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농성을 끝낼 수 있는 조건도 직접 전달한 것이 없다. 조철민 비대위원장은 “나는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관계자들이 아침부터 옥상으로 올라간 것”이라며 비대위 측의 조직적인 행동이 아니라고 밝혔다. 다만 그는 “재개발 사업 업체 등과 제대로 된 보상금을 협의한 뒤 이들을 설득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최씨는 자신들이 쇠사슬을 목에 걸고 시위를 시작한 이유가 비단 보상금 때문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우리는 지금 추가 보상 요구를 하는 게 아니다”는 점을 강조했다.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2층짜리 폐상가 건물 옥상에서 '588집창촌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소속 관계자들이 철거 보상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윤상언 기자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2층짜리 폐상가 건물 옥상에서 '588집창촌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소속 관계자들이 철거 보상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윤상언 기자

최씨가 밝힌 가장 큰 이유는 ‘억울함’이다. 재개발과 관련된 조폭에게 수년간 괴롭힘을 당해왔지만 제대로 된 처벌이 없다는 것이다.

청량리 집창촌에서 10여년간 업소를 운영한 최씨는 조직폭력배들에게 금품을 갈취당하는 등 수모를 겪었다고 한다. 재개발 사업이 시작되자 최씨는 조폭 두목을 공갈 등의 혐의로 고소했지만, 지난해 12월 5일 고등법원에서 4건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유죄로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고 한다.

최씨는 “너무 억울해서 고민도 많이 하고 죽으려고 했는데 죽기 전에 뭐라도 보여주고 죽으려고 올라온 것”이라고 토로했다. 조 비대위원장도 이에 대해 “무죄 판결 이후 최씨가 실의에 빠져서 한 달 넘게 불안증세를 보였다”며 “지난 13일 나에게 죽는다는 식으로 ‘마지막 인사를 드리고 갑니다’라는 문자를 남기고 시위하러 올라갔다”고 전했다.

14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2층짜리 폐상가 건물 옥상에서 '588집창촌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소속 관계자들이 철거 보상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윤상언 기자

14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2층짜리 폐상가 건물 옥상에서 '588집창촌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소속 관계자들이 철거 보상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윤상언 기자

현장에 있는 경찰은 시위자들이 제각기 다른 이유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최씨처럼 법원 판결에 항의하기 위해 올라간 사람도 있지만 추가 보상금을 원하는 시위자들 중 일부는 추가 보상을 원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시위자 중에는 인슐린을 꾸준히 맞아야 하는 환자도 포함돼있어 농성 장기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옥상에 오른 다음날인 14일이 돼서야 비대위 측이 기존에 환자가 처방받은 인슐린 주사를 전달했지만, 농성이 길어지면서 약이 다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윤상언 기자 youn.san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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