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영장 놓고 진통거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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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당초 40명선으로 알려졌던 구속 대상자가 76명으로 크게 늘어난데는 「이번 사태를 경찰사기 회복과 공권력 사수의 계기로 삼아야한다」는 경찰 내부의 여론이 크게 작용했다.
부산시경은 4일오후 구속영장 신청을 앞두고 검찰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94명 전원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해야 한다』는 강경입장을 미리 발표하고 나섰고, 일부 경찰간부들은 『학생들에 대한 조치가 미흡할 경우 공권력은 돌이킬수 없는 좌절감에 빠지게 된다』 고 말하는등 강력대응에 일치된 자세. 이같은 경찰의 분위기와 집단사표 파동 등 최근 일련의 상황이 감안돼 검찰의 76명 영장청구로 낙착됐다는 풀이.
이와관련, 부산지검은 당초 이날 오후 자체 수사결과를 종합, 주동자와 극렬 행위자·적극 가담자등 40여명에 대해서만 구속영장을 신청키로 의견을 모았으나 대검으로부터 「관련자 94명을 전원 구속하라」는 지시가 내려와 자정까지 방침을 결정하지 못한 채 고심.
이건개대검공안부장이 상부지침을 가지고 부산으로 내려온 뒤 다시 조정에 들어가 신법처리시한을 5시간 앞둔 5일오전2시쯤에야 중간선인 「76명구속」을 최종 결정.
특히 관심을 모았던 살인죄 적용 대상도 부산지검은 총학생회장 이종현군(25·법학4)과 기획부장 오태봉군(25·철학4)등 2명에게만 적용키로 의견을 모았다가 상부와의 절충 끝에 김영권(22·미술4) 윤창활(22·법학4)군 등 2명을 추가, 이 과정에서 시간을 끌어 영장신청이 5일 새벽으로 늦어졌다.
구속영장 청구를 앞둔 부산지검은 4일 오후8시쯤부터 정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외부차량의 출입을 일체 통제하는등 긴장된 분위기.
김유후검사장을 비롯, 김정길1차장·신창출2차장·조준웅공안부장등 간부검사 대부분과 안승규검사등 공안부검사 5명 전원, 특수부·형사부검사 등 모두 30여명의 검사들이 퇴근하지 않은 채 비상대기.
일부 검사들은 기자들의 질문을 피하려 집무실 문을 안에서 걸어 잠근채 기자들의 접근을 막았고 김검사장등은 비상대기 중 오후10시쯤 전화로 배달시킨 된장찌개로 저녁을 들다 기자들이 몰려가 『영장을 몇시에 청구하느냐』 『구속자 폭이 결정됐느냐』는등 질문을 퍼붓자 『제발 밥이라도 편히 먹게 해달라』고 사정.
한때 묵비권을 행사하다 국가보안법 위반혐의가 추가 적용된 총학생회장 이군은 부산시경 공안분실에서 조사를 받은 때문에 다른 학생들과는 별도로 부산시경이 5일 오전4시14분쯤 검찰에 직접 영장을 접수.
이군의 영장을 검찰에 접수시킨 시경직원은 『이 영장을 제일먼저 처리해달라』고 요구해 공안부 안승규검사가 이군의 영장을 검토한 뒤 3분만에 서명, 법원으로 넘기기도.
구속영장 처리를 맡은 부산지법은 4일 오후8시쯤부터 보도진이 몰려들자 당직판사인 박성철판사의 소재에 대해 함구령.
박판사는 영장처리를 위해 오후9시쯤 제5별관에서 본관2층 당직 판사실로 자리를 옮겼으나 당직근무자들은 『박 판사가 어디 있는지 모른다』고 일체 행방을 대지않은채 오후9시50분쯤엔 당직판사 실로 통하는 출입문을 모두 걸어 잠그는등 보안유지에 신경전.
구속영장 청구작업을 끝낸 5일 오전5시까지 밤을 꾜박 새운 공안부검사들은 법원에서 혹시 기각판정이 날까 초조해하다 5시간30분만인 오전10시35분쯤 『단 한건의 기각도 없이 영장이 발부됐다』는 소식을 듣고 적이 안도하는 표정.
검사들은 5일이 어린이날임을 뒤늦게 의식한 듯 『늦었지만 꼬마들에게 선물이라도 사가야 되지 않겠냐』며 홀가분한 표정으로 퇴청.
단순가담자로 불구속 입건돼 5일오전8시 풀려난 학생18명은 경찰서를 나서기 전 북부경찰서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 들러 울먹이며 분향을 마치고 귀가.
농성장 경비를 맡았다는 김모군(20·전자통신1)은 『시위엔 가담했지만 이런 엄청난 일이 빚어질 줄은 전혀 예상못했고 경찰관이 숨겼다는 사실을 알고 심한 불안과 공포감에 시달렸다』고 실토.
구속영장이 발부된 최대철군(19·경영2)의 누나 명화씨(26·회사원)는 5일오전11시 북부경찰서에 찾아와 동생의 구속사실을 확인하고 『오늘이 동생의 20번째 생일인데』하며 하염없이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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