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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째 미쉐린 별 3개… 스페인서 찾은 인생 식당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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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8호 24면

 서현정의 월드 베스트 호텔 & 레스토랑 - 마르틴 베라사테기 

스페인 미식 도시 산세바스티안의 셰프 마르틴 베라사테기. 산세바스티안 근교에 자신의 이름을 딴 레스토랑 '마르틴 베라사테기'를 운영한다. [사진 마르틴 베라사테기]

스페인 미식 도시 산세바스티안의 셰프 마르틴 베라사테기. 산세바스티안 근교에 자신의 이름을 딴 레스토랑 '마르틴 베라사테기'를 운영한다. [사진 마르틴 베라사테기]

스페인의 전설적인 셰프 마르틴 베라사테기(Martin Berasategui·58)가 자신의 이름을 그대로 내걸고 운영하는 레스토랑 ‘마르틴 베라사테기’는 내 인생을 바꾼 식당으로 주저 없이 꼽는 곳이다.

‘미식 순례의 메카’ 마르틴 베라사테기 #산세바스티안서 차로 20분 거리 #셰프가 보유한 미쉐린 별만 10개 #장어·푸아그라, 해산물 샐러드 … #진한 풍미 우리 입맛에도 잘 맞아

2009년 떠났던 스페인 여행에서 생애 처음 방문한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이 바로 마르틴 베라사테기였다. 오후 1시에 시작한 점심은 오후 5시가 다 돼서야 끝났고, 호텔로 돌아가자마자 피곤함에 드러누워 버렸다. 밥을 먹었을 뿐 온종일 다른 관광은 생각도 못 한 일정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이미 여행의 만족감이 가슴 가득 차올랐기 때문이었다. 이날의 경험은 생각지 못한 새로운 세상이 세계 곳곳에 있으리란 기대를 갖게 해주었고, 결국 나는 여행을 새로운 업으로 삼게 됐다.

 미식 순례의 메카 

마르틴 베라사테기는 프랑스와 국경을 접한 스페인 북서부의 작은 마을 라사르테오리아(Lasarte-Oria)에 자리 잡고 있다. 급진적인 분리 독립운동으로 유명한 바스크 지방의 주도(主都) 산세바스티안(San Sebastian)에서 차로 20분 정도 더 들어가야 한다.

산세바스티안은 인구 20만 명이 사는 소도시인데, 인구 대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미쉐린 별을 가진 미식의 도시다.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이 11곳(스타 3곳, 2스타 1곳, 1스타 7곳)이나 된다. 아르작(Arzak), 무가리츠(Mugaritz) 등 미식가라면 한번 방문해보길 꿈꾸는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이 여러 곳 있다. 그중에서도 마르틴 베라사테기는 미식 순례의 중심에 놓인 성스러운 사원이라 할 수 있다.

잔디 정원에서 올려다본 레스토랑 건물. 주택가 한 가운데 있다. [사진 마르틴 베라사테기]

잔디 정원에서 올려다본 레스토랑 건물. 주택가 한 가운데 있다. [사진 마르틴 베라사테기]

레스토랑 메인 홀.정갈한 흰 테이블보가 우아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사진 마르틴 베라사테기]

레스토랑 메인 홀.정갈한 흰 테이블보가 우아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사진 마르틴 베라사테기]

레스토랑은 고즈넉한 주택가 한가운데 있는데, 계단을 올라 로고가 새겨진 금속 문을 지나면 전망대와도 같은 레스토랑에 들어서게 된다. 커다란 창 아래로 잔디밭이 펼쳐져 있다. 실내 공간은 단순하지만 우아하게 꾸며져 있다. 풀 먹인 테이블보가 정갈하게 정돈돼 있고 난초 화분은 새하얗게 빛난다. 스페인이 자랑하는 프라도 미술관에서 감상했을 법한 어느 귀부인의 초상화를 떠올리게 한다.

 셰프가 보유한 미쉐린 별만 10개 

1960년 산세바스티안에서 태어난 마르틴 베라사테기는 부모의 식당 주방에서 놀며 자랐다고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당연한 듯 요리의 길을 따랐고, 14세 때부터 음식 만들기를 본격적으로 배웠다. 17세에 프랑스로 요리학교에 다녔는데, 미쉐린이 편애하는 프렌치 쉐프 알랭 뒤카스(Alain Ducasse) 밑에서 견습 생활을 했다. 아버지를 여의고 20세에 고향으로 돌아온 베라사테기는 아버지의 식당 ‘보데곤 알레한드로(Bodegon Alejandro)’를 물려받았다. 그러고는 25세라는 어린 나이에 아버지의 식당을 미쉐린 1스타로 격상시켰다.

마르틴이 자신의 이름을 딴 레스토랑을 차린 것은 1993년에 들어서다. 마르틴 베라사테기 레스토랑은 2001년 미쉐린 3스타를 처음 획득한 이래 18년째 해마다 별 3개가 빛나는 레스토랑이 됐다. 마르틴 베라사테기는 본점을 포함해 멕시코·도미니카공화국 등에서 모두 16개의 레스토랑을 운영한다. 이 중 2곳이 3스타, 1곳이 2스타, 2곳이 1스타를 받아 셰프가 보유한 미쉐린 스타는 모두 10개에 이른다.

미쉐린만 마르틴 베라사테기를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미쉐린 가이드』와 함께 미식의 중요 참고서로 꼽히는 『월드 베스트 100 레스토랑(The World’s Best 100 Restaurants)』에 2008년 이후 꾸준히 이름을 올리고 있고, 2015~2016년 여행 리뷰 사이트 ‘트립어드바이저(tripadvisor)’에서 여행자가 직접 뽑은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에 선정됐다. 마르틴 베라사테기가 미식 전문가뿐만 아니라 일반 여행객에게도 좋은 평가를 받는다는 뜻이다.

 메뉴마다 탄생 연도 표기 

성게알 무스 요리 [사진 마르틴 베라사테기]

성게알 무스 요리 [사진 마르틴 베라사테기]

조개 관자와 해초 요리 [사진 마르틴 베라사테기]

조개 관자와 해초 요리 [사진 마르틴 베라사테기]

훈제장어, 푸아그라, 사과가 어우러진 밀푀유. 1995년 탄생한 레스토랑의 시그니처 메뉴다.[사진 서현정]

훈제장어, 푸아그라, 사과가 어우러진 밀푀유. 1995년 탄생한 레스토랑의 시그니처 메뉴다.[사진 서현정]

마르틴 베라사테기가 두루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음식이 맛이 있어서다. 이 정도 레스토랑이 맛이 없겠으냐 하겠지만, 서양 음식이 한국 사람 입맛에 항상 맞는 것은 아니다. 최근에는 새롭고 도전적인 테크닉을 추구하는 셰프가 많아지고 맛보다 창조성을 중시하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프렌치에 바탕을 둔 스페인 요리를 추구하는 마르틴 베라사테기는 우리 입맛에도 잘 맞으니 행여 비싸고 맛없는 음식을 먹게 될까 걱정할 필요가 없다.

메뉴는 세트 메뉴 ‘그레이트 테이스팅 메뉴(The Great Tasting Menu)’와 개별 요리 ‘아 라 카르트(a la carte)’로 나뉘어 있다. 그레이트 테이스팅 메뉴는 14가지 코스로 제공되고 1인 260유로(33만3000원)이다. 아 라 카르트는 에피타이저 54유로(6만9000원), 메인 디시 84유로(10만7000원), 디저트 41유로(5만2000원)로 원하는 만큼 주문해서 먹을 수 있다. 각 요리의 설명 앞에는 메뉴가 탄생한 연도가 쓰여 있다.

추천 메뉴는 1995년 탄생한 훈제장어와 푸아그라 요리다. 장어와 푸아그라의 진한 풍미가 새콤한 사과와 조화를 이룬다. 해산물 샐러드도 2001년부터 선보인 스테디 메뉴다. 화사하고 아름다운 꽃과 채소 사이사이에 신선한 갑각류가 숨어있다. 음식을 맛보고 나니 메뉴에 일일이 연도를 달아 놓은 의미를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화가가 자신의 그림에 연도와 사인을 남기듯, 요리 하나하나를 소중한 작품으로 생각하는 셰프의 자부심이 느껴졌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서현정 여행 칼럼니스트 shj@tourmedici.com

 인류학 박사이자 고품격 여행사 ‘뚜르 디 메디치’ 대표. 흥미진진한 호텔과 레스토랑을 찾아 전 세계를 돌아다닌다. 품격 있는 여행 정보를 알려주는 여행사가 없어 아예 여행사를 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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