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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든 독배'가 된 야구대표팀 감독

중앙일보

입력

프로야구 감독은 해군 제독,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함께 미국 남자들이 선망하는 3대 직업으로 꼽힌다. '권력맛'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여러 사람들을 한데 모아 어려움을 이겨내고 훌륭한 성과를 내는 쾌감은 무엇과도 바꾸기 어렵다. 게다가 모든 스포츠인의 꿈인 올림픽에 나갈 대표팀 감독이라면? 필생의 영광이다.

연봉 과분하고 AG우승 당연한 자리 #대표팀 감독의 명예회복이 최우선 #산업화까지 성공한 일본팀과 대비

현재 공석인 한국 야구대표팀 감독도 그럴까? 아마 아닐 것이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 됐을 뿐이다.

"연봉이 얼맙니까? 너무 쉽게 돈 버는 거 아닙니까?" "몇시에 출근하십니까?" "(아시안게임) 우승이 그렇게 어려운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 선동열 전 국가대표팀 감독을 불러 이렇게 몰아세웠다. 그 자리에서 연봉 2억원이, 정시 출퇴근하지 않는 근무 형태가, 프로선수들을 데려가 아시안게임 우승을 차지한 게 죄가 돼버렸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선동열 감독에게 질의하는 손혜원 의원. [뉴스1]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선동열 감독에게 질의하는 손혜원 의원. [뉴스1]

선 감독에 이어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한 정운찬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는 "개인적으로 전임 감독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발언했다.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과 자신의 인사권자인 총재로부터 존재 자체를 부정당한 선 감독은 결국 스스로 물러났다.

정운찬 KBO총재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증인 선서를 하고 있다. 양광삼 기자

정운찬 KBO총재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증인 선서를 하고 있다. 양광삼 기자

야구 대표팀 감독의 위신은 땅에 떨어졌다. 선망하는 자리는커녕 '독이 든 성배(聖杯)'도 되지 못 한다. 2억원 연봉이 과분하고, 아시안게임 우승은 성과로도 인정받지 못 하게 됐다. '돈이 든 독배'로 추락했다.

선 감독이 내던진 대표팀 감독은 이달 안에 새로 선임될 전망이다. KBO는 선 감독 선임 후 폐지됐던 기술위원회를 재구성하기로 하고, 지난달 말 김시진 기술위원장을 임명했다. 장윤호 KBO 사무총장은 "오는 15일까지 기술위원회(위원장 포함 7명) 구성을 완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은 상당히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선 감독 사퇴 과정에서 생긴 상흔이 너무 커서다. 누구든 선뜻 맡기 어렵고, 누구든 리더십을 발휘하기 어려워졌다.

무엇보다 신임 감독 선임 과정이 시끄럽다는 후문이다. 기술위원회는 보수적 방식으로 프로 감독 출신이며 국가대표 지휘 경험도 있는 인물을 선호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이유로 김경문 전 NC 감독, 조범현 전 KT 감독 등이 물망에 오르고 있다. 그러나 KBO 내부에서는 "꼭 프로 감독 출신일 필요가 있느냐"는 목소리도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각 구단 사장으로 구성된 KBO 이사회의 일부는 "40대 젊은 감독도 좋다"며 세대교체를 주장하고 있다.

기술위원회가 복수의 감독 후보를 추천하면 정운찬 총재가 최종 결정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KBO 이사회도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 적임자를 찾기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인데, 기술위원회가 부활하면서 의사결정 구조가 복잡해졌다.

신임 기술위원장에 선임된 김시진 전 롯데 감독. 양광삼 기자

신임 기술위원장에 선임된 김시진 전 롯데 감독. 양광삼 기자

한국 야구의 라이벌 일본은 2020년 도쿄 올림픽 우승을 목표로 이나바 아쓰노리 감독을 선임, 일찌감치 준비를 시작했다. '사무라이 재팬'이라는 대표팀 브랜드도 지난 5년 동안 굳건히 자리잡았다. 한국 대표팀은 2017년 선 감독을 선임해 일본을 쫓아가려 했지만 국정감사를 통해 스스로 좌초하고 말았다. 한참 뒤처진 상황에서 한 발 나아갈 때마다 스텝만 꼬이고 있다.

김식 기자 see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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