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22) 선수가 10대 시절부터 조재범(38·수감 중) 전 대표팀 코치로부터 상습적인 성폭력을 당했다고 추가 고소한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이 심 선수 진술의 ‘신빙성’이 크다고 보고 증거를 확보하는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심 선수는 한 팬으로부터 받은 편지에서 용기를 얻어 과거 성폭력 사건을 고소할 수 있었다고 한다. 현재 “조 전 코치를 강력처벌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진행 중이다.
9일 사건을 수사 중인 경기남부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지난달 17일 심 선수의 법률대리인을 통해 조 전 코치에 대한 고소장이 접수됐다. 혐의는 아동·청소년의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강간상해) 등이다. 이날 심 선수는 1심에서 징역 10월을 선고받은 조 전 코치의 상습상해 및 재물손괴 사건의 항소심 2차 공판에 증인으로 나와 조 전 코치의 범행을 증언했다.
고소장을 접수한 경찰은 사안이 심각함에 따라 고소장 접수 이틀 뒤인 지난달 19일에 이어 이달 초 고소인 조사를 마쳤다. 심 선수에 대한 2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비공개 조사를 벌였다. 경찰은 이와 동시에 조 전 코치의 스마트폰과 노트북, 태블릿PC, 외장하드 등을 압수한 뒤 디지털포렌식 수사를 벌이고 있다. 디지털포렌식은 각종 디지털 정보를 분석해 범죄 단서를 찾는 수사기법이다.
이를 통해 경찰은 심 선수가 주장한 성폭력 시점 전후로 심 선수와 조 전 코치가 나눈 대화 내용을 확보, 분석할 계획이다. 내용에 따라 심 선수의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직접 또는 정황증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찰은 심 선수의 주장이 일관되고 비교적 정확히 진술함에 따라 신빙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심 선수는 고소장을 통해 고등학생 신분이던 2014년부터 2018평창동계올림픽 개막 전까지 태릉선수촌·진천선수촌·한국체대 빙상장 등에서 조 전 코치에게 수차례에 걸쳐 성폭력 등을 당했다고 밝혔다. 특히 경찰은 성폭력이 가해지기 전에 폭행과 협박도 이뤄졌던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범행 장소 주변의 폐쇄회로TV(CCTV) 영상은 저장 기간이 지나 사실상 확보가 불가능하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경찰은 디지털포렌식 수사를 마치는 대로 수원구치소에 수감 중인 피고소인 조 코치를 조사할 계획이다. 경찰 관계자는 “피고소인 조사는 아직 조율 단계”라고 말했다.
조 전 코치에 대한 항소심 선고 공판은 오는 14일 수원지법에서 예정대로 진행된다. 경찰의 성폭력 수사가 마무리되지 않아 두 사건을 묶을 수 없기 때문이다. 조 전 코치는 항소심 재판부에 22차례에 걸쳐 반성문을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심 선수의 '#미투'(나도 당했다)는 한 팬의 편지로 시작됐다고 한다. 심 선수가 조 전 코치로부터 심하게 폭행을 당했음에도 선수 생활을 열심히 하는 게 팬에게는 너무 큰 힘이 됐다면서 심 선수에게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이에 심 선수는 자기로 인해 누가 힘을 낸다는 걸 보고 묻어놨던 과거 사건을 밝히기로 결심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지난달 18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조재범 코치를 강력히 처벌해달라”는 청원이 올라왔다. 1심에서 징역 10개월형을 받은 조 전 코치의 형량이 가볍다는 주장이다. 이 청원에는 9일 오후 2시 현재 15만6944명이 동의했다. 조 전 코치의 성폭력 의혹도 제기돼 기존 청원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수원=김민욱·최모란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