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날 해칠 것” 전세계에 호소한 사우디 여성, 위기 넘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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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공항에 억류됐다 강제송환 위기를 넘긴 사우디 10대 라하프 무함마드 알-쿠눈 [로이터, 알-쿠눈 트위터 영상 캡처=연합뉴스]

태국공항에 억류됐다 강제송환 위기를 넘긴 사우디 10대 라하프 무함마드 알-쿠눈 [로이터, 알-쿠눈 트위터 영상 캡처=연합뉴스]

가족 학대를 피해 호주로 망명하려다가 태국공항에서 억류됐던 사우디아라비아 출신 10대 여성이 강제송환 위기를 넘겼다. SNS를 통해 자신이 본국으로 송환될 경우 목숨을 잃게 될 것이라고 알린 이 여성은 국제 사회의 관심에 힘입어 극적으로 탈출한 것으로 전해진다.

7일 AFP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수라찻 학빤 태국 이민청장은 18세 소녀 라하프 무함마드 알-쿠눈이 이날 오후 저녁 유엔난민기구(UNHCR)의 보호 아래 방콕 수완나폼 공항을 빠져나가 현재 태국 내에 머물고 있다고 밝혔다.

보도에 따르면 알-쿠눈은 호주 망명을 위해 쿠웨이트 공항을 떠나 지난 6일 경유지인 태국 수완나폼 공항에 도착했다. 하지만 알-쿠눈은 공항에서 여권과 여행서류를 빼앗겼다. 알-쿠눈은 자신의 아버지 요청을 받은 사우디와 쿠웨이트 대사관 관계자들이 자신을 공항에 억류했다고 주장했다.

엄격한 종교적 규율에 따르는 사우디에서는 여성은 아버지나 남편 등 남성 보호자의 허락을 받아야 결혼·이혼, 여행, 교육, 취업 등 사회활동을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알-쿠눈은 아버지의 강압으로 사우디로 강제 송환 위기에 놓였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알-쿠눈은 스스로 시위에 나섰다. 그는 억류된 공항 내 호텔에서 가구 등으로 바리케이트를 치고 강제 송환에 반대했고, 그 과정을 트위터 등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알렸다.

알-쿠눈은 트위터를 통해 “사우디로 송환되면 목숨이 위험해진다”며 전 세계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는 “내 가족은 여섯달 동안 나를 방안에 가두고 머리카락을 잘랐다”라며 “사우디로 돌아가면 감옥에 갇힐 것이 확실하다. 감옥에서 나오면 그들이 나를 죽일 것이라고 100% 확신한다”고 했다.

알-쿠눈의 폭로에 네티즌은 관련 트윗을 공유하며 그를 지지했다. 여기에 세계 언론이 이를 신속히 보도하면서 파문은 일파만파 커졌다. 그럼에도 수라찻 태국 이민청장은 같은 날 “(알-쿠눈은) 결혼을 피하기 위해 도망쳤다. 이번 일은 가족문제”라며 송환을 시사했다.

그러나 논란이 계속 확산했다. 태국 내에서는 당국에 강제송환 조치를 금지해달라는 소송이 제기됐고, 유엔난민기구가 알-쿠눈을 보호하겠다고 나섰다.

결국 수라찻 청장이 입장을 바꿨다. 수라찻 청장은 “알-쿠눈이 (태국에) 머무르는 것이 허용됐다”며 “현재 유엔난민기구의 보호 아래 있으며 유엔난민기구 관계자들과 공항을 떠났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태국을) 떠나길 원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송환을) 강제하지 않을 것”이라며 “태국은 미소의 나라다. 우리는 누구를 죽게 보내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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