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깊이읽기] 삼국유사가 '라이브 가수' 같다고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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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고운기 글, 양진 사진, 현암사, 368쪽, 1만5000원

'삼국유사'는 현장 답사서다? 생경하다. 정말 그럴까. '일연을 묻는다'의 글쓴이는 분명 "그렇다"고 대답한다. '삼국유사'는 책상에 앉아 자료를 정리해 쓴 책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일례로 다음 구절을 읽어보자.

"오늘 내가 몸소 와서 우러러 예불하고 나니 또한 분명히 믿을 만한 두 가지가 있었다. 골짜기 가득 대부분의 돌들이 금과 옥의 소리를 내는 것이 하나요, 멀리서 보면 나타났다가 가까이 가면 보이지 않고 또 보였다가 안 보였다는 하는 것이 하나이다."

경남 밀양 만어사에 얽힌 전설에 대한 '삼국유사'의 묘사다. 삼척동자도 아는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1206~89) 스님은 옛 이야기의 전거를 찾기 위해 역사의 현장을 찾아다녔다.

그런 일연을 제대로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스님의 행적에 관한 기록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말이다. 정답은 나와 있다. '삼국유사'에 나타난 스님의 발길을 함께 따라가는 것이다. 시인이자 연세대 연구교수로 있는 고운기씨의 선택이다. 발로 뛰며 읽는 '삼국유사'를 빚어냈다. 서울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부터 해온 일이다.

저자는 '삼국유사'를 '밭에서 방금 캐낸 야채' '라이브 무대의 가수'에 비유한다. 싱싱한 야채처럼 무엇이든 요리할 수 있고, 거칠고도 생생한 가수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일연이 태어났던 경북 경산군 압량면부터 일연이 숨을 거뒀던 경북 군위군의 인각사까지 한걸음 한걸음 발품을 팔았다. 과거에 박제된 일연이 아닌 현재에 살아있는 일연을 되살려냈다. '전국민의 필독서'이면서도 정작 읽은 사람은 별로 없는 '삼국유사'에 살을 붙이고, 피를 돌게 했다.

신간은 당연히 속도감이 넘친다. 사진작가 양진씨가 찍은 100여 컷의 사진이 읽는 맛을 더한다. 무인정권 시대의 혼란스런 정치, 몽골의 침략으로 피폐해진 경제 속에서 역사와 민생을 고민했던 '지식인 일연'을 바로 우리 눈앞에 불러낸다. 나아가 일연이란 개인을 넘어 13세기 고려의 사회상도 충실하게 짚어낸다.

일연이 제자들에게 남긴 마지막 한마디. "뒷날에 돌아오면 다시 여러분과 더불어 거듭 한바탕 흥겹게 놀겠소." '삼국유사'에 있는 일연의 시에 빠져 옛 선승을 짝사랑하기 시작했던 저자도 한바탕 신나게 논 게 분명하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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