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방하듯 가볍게…이젠 유튜브 폭로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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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기획재정부 사무관이 유투브 개인방송을 통해 ’청와대가 KT&G 사장을 바꾸라고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영상을 올린 이는 신재민씨로 그는 올해 7월까지 기재부에서 사무관으로 근무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지난해 12월 29일 올라온 영상은 온라인을 통해 퍼지고 있다. [유튜브 캡쳐]

전직 기획재정부 사무관이 유투브 개인방송을 통해 ’청와대가 KT&G 사장을 바꾸라고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영상을 올린 이는 신재민씨로 그는 올해 7월까지 기재부에서 사무관으로 근무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지난해 12월 29일 올라온 영상은 온라인을 통해 퍼지고 있다. [유튜브 캡쳐]

청와대가 KT&G와 서울신문 사장 인사에 개입하고 적자 국채를 발행하도록 압력을 행사했다는 신재민(33)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의 폭로는 내용뿐 아니라 방식 면에서도 전과 달랐다.

사회심리학자가 본 신재민 폭로 #"집단보다 주체적인 개인 중시 #기업 등 사회 곳곳서 나타날 것"

신 전 사무관은 지난해 12월 29일 자신의 유튜브 계정에 첫 영상을 올렸다. 영상 제목은 ‘뭐? 문재인정권 청와대가 민간기업 사장을 바꾸려 했다고?!’다. 까만 정장을 입고 카메라 앞에 앉은 신 전 사무관은 간간이 미소도 지으며 폭로를 이어갔다. 지난해 12월 30일에는 두 번째 영상을 올렸다.

편집된 영상에는 자막과 학원 광고도 있었다. 계좌번호와 함께 후원금을 독려하는 멘트도 나온다. 신 전 사무관은 “공무원 그만두고 살이 10kg 이상 쪄서 너무 뚱뚱하네요”라는 글도 영상과 함께 올렸다. 내용을 떠나서 보면 1인 크리에이터의 유튜브 방송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은 유튜브 계정에 첫번째 영상에 지난해 12월 30일 이어 '내가 기획재정부를 나온 이유 2'라는 제목의 두번째 영상을 업로드 했다. [유튜브 캡쳐]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은 유튜브 계정에 첫번째 영상에 지난해 12월 30일 이어 '내가 기획재정부를 나온 이유 2'라는 제목의 두번째 영상을 업로드 했다. [유튜브 캡쳐]

윤인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 영상에 대해 “젊은 공직자들의 자기 인식이 달라진 것”으로 평가했다. 윤 교수는 “과거 공무원은 공직 사회의 규범을 준수하고 문제가 있더라도 밖으로 잘 드러내지 않고 집단의식이 강했지만 요즘 2030은 집단보다 주체적 개인을 중시한다”고 진단했다. 그는 “한국 사회의 세대 차가 공직 사회에 그대로 반영된 것"이라며 "앞으로 기업 등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이런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게이트 키핑'을 거치지 않은 직접 폭로방식 선택 

신 전 사무관은 유튜브뿐 아니라 고려대학교 커뮤니티 ‘고파스’도 활용했다. 윤 교수는 “과거에는 자기 입장을 지지할 수 있는 신문사를 찾아가는 등 공적인 기관을 통하는 방식을 썼다면 이제는 사적인 방식으로 폭로한다”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커뮤니티 등 자신에게 익숙하고 기존에 써왔던 자기표현 매체를 그대로 사용한다”고 말했다. 유세경 이화여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기존 미디어는 '게이트 키핑(gate keeping)'을 거치지만 유튜브는 이 과정 없이 자기 생각을 직접 전달할 수 있어 선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게이트 키핑이란 뉴스 미디어 조직 내 뉴스 결정권자가 뉴스를 취사선택하는 과정을 뜻한다.

과거 폭로자들은 주로 자신의 얼굴을 철저히 숨겼다. 최근 청와대 특별감찰반의 민간인 사찰 의혹을 폭로한 김태우 서울중앙지검 수사관도 지난 3일 조사를 받기 위해 검찰에 출석하며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신 사무관은 정면에 얼굴을 드러냈다.

유 교수는 “SNS는 익명성을 담보로 해서 자신을 가렸던 측면이 있는데 영상을 기반으로 한 유튜브는 본인을 드러냄으로 신뢰성을 더 줄 수 있는 방식”이라며 “특히 젊은 세대는 지식정보도 유튜브에서 검색할 정도로 유튜브를 신뢰하기 때문에 얼굴을 직접 드러냄으로 메시지의 신뢰도를 높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폭로의 확산 속도에 대해 우려하는 전문가도 있다. 김영란 숙명여대 사회심리학자 교수는 "요즘은 다들 동영상을 보기 때문에 유튜브를 폭로 방식으로 선택한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선택"이라며 "유튜브 자체가 확산이 빠르다는 특성이 있는데 여기에 대립구도에 놓여있는 여당과 야당이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더해져 사안 자체가 빠르게 확산하며 변질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폭로 전과 후 신 전 사무관의 심리상태  

지난 3일 오후 1시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이 서울 동작구 보라매병원 응급실로 후송되고 있다. 신 전 사무관은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메시지를 남기고 잠적한 지 4시간 만에 관악구 서울대입구역 인근 건물에서 발견됐다.[뉴스1]

지난 3일 오후 1시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이 서울 동작구 보라매병원 응급실로 후송되고 있다. 신 전 사무관은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메시지를 남기고 잠적한 지 4시간 만에 관악구 서울대입구역 인근 건물에서 발견됐다.[뉴스1]

지난 3일 신 전 사무관이 유서를 남기고 잠적했던 상황에 대해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곽 교수는“한 개인이 감당하기에 너무 큰 사건이기 때문에 이런 일을 겪으며 우울감을 느꼈고, 그 우울감으로 인해 극단적 행동을 보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에 대한 폭로를 결정했을 때 심리상태에 대해 곽 교수는 “인간은 사적인 동물이기 때문에 자신에게 완벽한 손해가 있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며 “폭로의 공적인 면도 있지만, 자신이 양심적인 사람이고 정의로운 사람으로 유명해질 수 있다는 개인적 이득도 배제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해리 기자 park.hae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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