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물가-"시장 가기 겁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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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우리 경제에 대한 우려의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실제로 물가불안·노사분규·통상마찰· 부동산투기·수출둔화 등 거의 모든 부문에 걸쳐 물이 새고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애써 이룩한 성장기반이 무너지고 선진국의 문턱에서 좌초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불안심리가 확산되고 있다.
본사는 우리 경제가 안고 있는 주요 현안문제들에 대해 학계·이해당사자, 그리고 정부관계자의 연쇄토론을 통해 문제점을 진단하고 대책을 모색해 보기로 했다.
그 첫 회로 물가문제에 대해 곽수일 서울대 교수, 김재옥 소비자 문제 연구를 위한 시민의 모임 사무처장, 김태연 경제기획원 물가국장의 대담을 중계한다.<편집자 주>

<저물가 겪어 더 불안>
▲곽 교수=노사분규·수출둔화 등 최근 어려운 경제현안들이 많이 대두되고 있으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물가안정이 아닌가 합니다.
시간이 조금 흘렀습니다만 제가 있는 한국 경영 연구원에서 작년 8월 실시한 국민 경제의식 동향조사에 따르면 주요 경제현안으로 77·6%가 물가안정, 54·1%가 분배차원에서 농어촌 소득증가를 꼽았습니다. 이는 경제를 보는 국민들의 시각이 최우선적으로 물가안정을 통한 경제안정에 있음을 뜻합니다. 올 들어 연초이후 물가의 고삐가 잡힌 듯 싶더니 최근 들어 인플레 심리 확산 등 불안이 가중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김 국장=80년대 들어 4∼5년간 전에 없는 저물가시대를 경험하면서 국민사이에 물가안정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넓게 확산됐습니다. 그런 것이 작년이후 연속3년간 고속성장·민주화추세를 탄 각계각층의 소득 보상적 욕구가 겹치면서 물가를 걱정하는 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한번 안정을 경험한 만큼 이 안정이 흔들리면 피해가 크다는 것도 더 잘 알게된 것이지요.
그러나 수치로 보면 지난 4월15일 현재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1·7%로 작년 같은 기간의 3·4%를 밑돌고 있습니다.
물론 작년에는 시기적으로 연초에 물가가 많이 뛰었고 또 지금 불안요소가 없는 것은 아
지난 4월초 정부가 원유 값 13%인상을 허용했는데 소비자가 시장에서 구입하는 관련 제품의 시장가격은 20∼30%오른 것이 현실입니다. 물론 그렇게된데는 유통과정의 담합 등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바로 이런 괴리현상이 정부 통계발표와 정책의 신뢰성을 떨어뜨리는게 사실입니다. 정부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으면『나만 손해보겠구나』하는 생각이 확산되는 것입니다.
▲곽 교수=최근 물가상승 원인을 보면 가격과 수요 양측면이 함께 문제가 있습니다. 요즈음 기업들의 임금 교섭결과 인상률이 15∼20%되는데 제조업 원가 중 임금 비중이 12%정도 되니까 이것만으로도 2%이상의 가격인상 요인이 생깁니다.
물가에 관한 한 정부·국민 모두가 어려운 기로에 선 느낌입니다.

<치솟는 부동산 허탈>
▲김 국장=성장·수출 등 경제전체도 그렇지만 물가측면만 떼어 놔도 노사분규로 임금상승폭이 어느 정도에 달할까가 큰 걱정입니다. 최근 보만 대기업쪽이 중소기업보다 높아 임금상승폭이 20%수준이 되는데 한은 분석에 따르면 임금이 10%오를 때 직접 상승요인은 1%정도이나 파급효과까지 감안하면 소비자 물가 상승 요인은 2·9%나됩니다.
▲김 처장=물가불안은 심리적 요인이 더 큰 것 같습니다. 특히 부동산 투기가 큰 문제입니다.
치솟는 아파트 가격을 보면 허탈감을 안 느끼는 사람이 드물 것입니다. 이래서야 알뜰하게 계획적으로 가계를 꾸리고 저축하는 사람들이 실망 안 한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지요. 그런데도 정부의 정책은 있는지 없는지 부동산 정책에 불만이 큽니다.
▲김 국장=주택·토지 등 부동산문제는 순수한 경제측면 만으론 해결이 어렵고 정부의 모든 정책이 다 연결된 것입니다.
정부에서는 부동산보유에 대한 과세 강화를 위해 종합토지세제 법안을 마련했고 최근에는 고급 주택 범위를 확대해 재산·양도세를 중과하는 조치를 취했습니다. 현재 5백만원 짜리 자동차 1대에 붙는 재산세는 22만5천원인데 서울 강남 압구정동의 80평 아파트 재산세가 46만원므로 2배 남짓에 불과합니다. 이렇게 형평에 문제가 커서는 부동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해서 보유과세를 강화, 투기를 억제해 나가자는게 정부의 생각입니다.

<정부서 인상 부추겨>
▲김 처장=농산물·공산품 값도 문제지만 짜장면·냉면 값·학원비 등 개인 서비스 요금도 너무 오르고 있습니다. 얼마 전만 해도 주부들이 미장원 한번 가는데 5천원 하던 것이 이젠 7천∼8천원 합니다.
▲김 국장=앞서 언급했습니다만 지난 4월15일 현재 소비자 물가가 1·7%상승했는데 이중0·58%가 개인서비스 요금이 밀어 올린 것입니다. 공공요금이 많이 올랐다지만 기여도가 0·28%로 이에 비하면 훨씬 적습니다.
▲곽 교수=이야기를 종합하면 최근의 물가상승은 수요·가격 양측면의 복합적 요인에 정치·사회적으로 들뜬 분위기가 지속되면서 이것이 인플레 기대 심리 만연으로 나타나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데 있는 것 같습니다.
물가는 어떻게든 잡아야하고 그러자면 빨리 진정국면을 조성해야 할텐데 어떻습니까.
▲김 국장=노사분규만 해도 임금상승→상품가 상승→물가상승→임금상승의 악순환을 어디선가 단절해야 합니다. 정부로서는 이 때문에 부동산 투기 등을 억눌러 불노 소득을 봉쇄하고 금융실명제 등을 도입, 계층간 소득격차를 줄여 상대적 빈곤감을 완화해 나가려 합니다.
▲김 처장=현재 우리 사회의 소비자 의식수준은 예를 들면 단결해서 독과점 기업에 대항할 만큼 되지 않은 걸음마 단계입니다.
정부의 역할이 아직 크고 그런 만큼 물가도 정부가 안정시켜줘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최근의 택시요금 인상에서 보듯이 공공요금을 앞서서 올려서는 앞뒤가 안 맞는 이야기입니다. 국민들에 대해 물가억제에 대한 협조가 설득력을 가질 수 없습니다.
▲곽 교수=우리사회에 소비자 파워가 성숙되지 않았고 현재 우리 경제규모에서 정부가 모든 물가를 통제할 수 없다는 점은 모두 맞습니다.
물가안정을 위해선 공급측면의 더 과감한 확대정책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시외버스의 경우도 원한다면 버스회사를 늘러 줘 공급을 촉진하고 그러면 경쟁체제 속에서 가격도 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자유 경제 체제 원리에도 맞습니다.
▲김 국장=정부로선 올 봄에 위생도기, 타일 등이 모자라 건축자재 값이 오르자 생산능력을 확충하는 등 공급확대에도 주력하고 있습니다.
또 국내 뿐 아니라 해외로부터도 수입확대 조치를 취하고 있습니다. 국제수지 흑자로 이제는 여력도 있고 따라서 값싼 상품도입을 늘려 소비자에게 혜택이 돌아가게 하자는 것이지요.
▲곽 교수=수입확대라 하지만 화장품의 경우 생산업체가 수입창구로 돼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점이 바로 문제로 제정신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기업체에 손해 될 수입을 하겠습니까.
▲김 처장=환율만 해도 그동안 대폭 원화절상이 이뤄졌는데 소비자들로서는 이것이 수입물가를 내려 실제 상품가격이 싸졌다는 경우는 별로 못 보았습니다.

<공기업 제품 값 인하>
▲김 국장=수입에 관련된 제도와 법이 미처 정비 못된 것은 인정합니다.
또 이런 제도나 법들은 우리가 적자 시대를 살며 수십년간 구축된 것으로 일시에 제거하기엔 기득권 층의 반대도 거센게 사실입니다. 충분하지는 않으나 점차적으로 개선해 나가자는게 정부의 입장입니다.
▲곽 교수=일반기업만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공기업의 제품가격과 서비스도 정부가 다시 한번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작년 정부투자기관들의 경영실적을 보면 한전의 경우 9천억원 가까운 흑자를 냈는데 그 정도면 전기요금을 내릴 충분한 요인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지금같이 물가관리가 어려울 때 정부가 솔선해서 내리게되면 인플레 심리의 진정효과도 클 것입니다.
▲김 처장=앞에 국민 경제의식 동향조사에서 언급됐지만 지금 여론조사를 하면 90%이상의 국민들이 물가안정이 제일 중요하다고 답할 것입니다. 어쨌든 일반국민들은 정부가 물가를 강력하게 안정시켜주길 원하고 있고 그러자면 상습 투기자 및 기업 부동산투자를 억눌러 부동산 투기 억제에 단호한 의지를 보여줘야 합니다.
▲곽 교수=개인 서비스 요금의 통제같은 것은 정부가 시도해도 잘 안될 것입니다.
결국 인플레 기대심리를 단절시켜 안정성장을 지켜나가는게 시급한데 수급 불균형 부문을 시급히 해소하고 공공요금 인상 억제 등을 통해 정부가 불안요인 제거를 선도해 나간다면 최근에 풀린 물가고삐도 잡혀 금년은 갈 넘어가지 않을까 기대합니다.<정리=장성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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