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은내친구] 진화하는 거리응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토고전이 열렸던 13일 오후 서울광장과 세종로 일대엔 50만 명이 거리응원을 했다. 승패보다 응원 자체를 즐기러 나온 사람이 많았다.

전반전이 끝난 뒤 한국팀이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곳곳에선 미니 공연이 벌어졌다. 거리응원객 중 일부가 미리 준비한 통기타 등 악기를 꺼내 즉석 연주를 했다. 아마추어 밴드의 공연을 빙 둘러 지켜보다 흥에 겨워 낯선 사람과 어울려 춤추는 이들도 있었다. 한국팀의 승리로 경기가 끝나자 서울 도심에선 즉석 '기차놀이'가 벌어졌다. 대학생 이진영(21.여)씨는 "4년 전보다 더 재미있어졌다. 프랑스전(19일) 거리응원도 꼭 할 것"이라고 말했다.

월드컵 거리응원이 우리 사회의 축제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전북대 함한희(문화인류학) 교수는 "일제시대와 근대화를 거치면서 한국에선 전통적 마을축제가 거의 사라졌다. 그런데 월드컵 거리응원이 자발성을 기초로 한 공동체 축제의 성격을 띠어 무척 흥미롭다"고 말했다. AP 등 해외언론은 "한국 전역에서 2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붉은 티셔츠를 입고 거리 곳곳을 붉게 물들였다"고 전했다.

◆ 업그레이드 된 거리응원=전반적으로는 질과 양적인 면에서 거리응원이 한층 발전돼 성별.연령.직업을 떠나 온 국민이 참여할 수 있는 축제로서의 틀이 갖춰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무엇보다 거리응원의 대중적 기반이 부쩍 넓어졌다. 거리응원은 2002년 월드컵 당시 붉은 악마와 네티즌을 중심으로 시작됐다. 일반시민의 참여는 이를 뒤따랐다. 그러나 이번엔 처음부터 시민.학생이 적극 참여하면서 인산인해를 이뤘다. 성신여대 심상민(문화정보학) 교수는 "많은 사람이 4년 전 거리응원에 대한 학습효과를 갖고 있다. 공간이 마련되자마자 거리응원이 폭발적으로 일어난 것"이라고 말했다.

외형적인 부분에서도 발전이 있었다. 2002년 당시 거리응원은 '대~한민국'구호와 '오~ 필승 코리아'응원가 등 비교적 단조로운 패턴이었다. 그러나 이번엔 '꼭짓점 댄스'를 비롯해 누구나 부담없이 어울릴 수 있는 다양한 응원 방식이 등장했다. '도깨비 뿔'도 응원도구로 큰 인기를 누렸다.

일각에선 과거에 비해 거리응원에 상업적인 요소가 강해졌다는 비판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거리응원이 다양한 측면에서 진화하고 있다는 점은 대부분 인정한다.

◆ 한류 상품으로 뜨나=2002년에 비해 이번 거리응원에선 외국인의 참여가 많았다는 점도 특징이다. 월드컵 기간 중 말레이시아.캐나다.미국 등지에서 2500여 명의 외국인이 거리응원에 참가하려고 한국을 방문한다고 한국관광공사는 추산했다.

수백 명의 외국인 노동자들도 한국-토고전 거리응원 대열에 합류했다. 스코틀랜드 출신 영어 강사 로렌(23.여)은 "한국인의 열정을 직접 느끼고 참가하고 싶어 거리 응원에 나섰다"고 말했다.

이철재.정강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