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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환경부 사퇴 동향 문건’ 어물쩍 넘기려 해선 안 된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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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청와대 특별감찰반 비위가 이른바 ‘블랙리스트’ 의혹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자유한국당이 공개한 ‘환경부 산하기관 임원 사퇴 동향’ 문건이 환경부에서 작성된 것으로 확인되면서다. 정부의 정당성이 걸려 있다는 점에서 진상을 철저히 규명해야 할 사안이다.

“문재인 정부 블랙리스트” 의혹으로까지 번진 상황 #임종석·조국, 31일 국회서 있는 그대로 진상 밝혀야

문제의 문건엔 산하 공공기관 8곳 임원들의 이름과 임기, 사표 제출 및 반발 여부가 기재돼 있다. ‘반발’ 임원에 대해선 ‘새누리당 출신’ ‘야당 의원에게 내부 정보 제공’ 등의 설명이 붙었다. 자유한국당 측은 “문재인 정부에서 공식 확인된 블랙리스트”라며 “청와대가 ‘문재인 캠프’ 낙하산 인사를 위해 물갈이를 진행했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환경부는 그제 문건이 공개되자 작성 사실을 부인했다가 뒤늦게 “김태우 수사관의 요청으로 작성된 문건”이라고 말을 바꿨다.

의혹의 핵심은 두 가지다. 우선 해당 문건에 청와대의 어느 단계까지 관여돼 있느냐다. 청와대는 이 문건 역시 김 수사관의 ‘개인 일탈’이란 입장이다. 반면에 김 수사관은 “특감반장이 ‘(현 정부 인사들을 위해)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줘야 한다’며 표적 감찰을 지시했다”고 맞서고 있다. 만약 윗선에서 단순한 명단 정리 수준을 넘어 성향 분석 등을 지시했다면 그 파장이 민정수석실 선에 그치기 힘든 상황이다.

다른 하나는 관련 문건이 과연 환경부뿐이겠느냐는 의혹이다. 김 수사관은 “특감반원들이 전국 330개 공공기관장 및 감사들의 임기, 정치 성향 등을 조사해 리스트에 포함시켰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른 부처들에서도 비슷한 문건들이 만들어졌을 것이란 의심 정황이 불거진 것이다. 특히 현 정부 쪽 인사들을 낙하산으로 내려보내기 위해 전 정부에서 임명된 이들을 ‘찍어내기’한 게 사실이라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블랙리스트’ 문제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민주주의 근간을 흔드는 국가 폭력”이라고 했다. 현 정부 출범 후 수사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이 구속돼 재판이 진행 중이다. 다만 정권교체 때마다 반복돼 온 공공기관 물갈이에 똑같은 잣대를 댈 수 있느냐는 여권 내의 반박도 나오고 있다. 관건은 김 전 실장 사건 항소심 판결에서 제시됐듯 ‘조직적·계획적·집단적으로’ 배제 작업이 진행됐는지다.

어제 검찰이 김 수사관에 대한 중징계를 요청하겠다고 발표한 것도 뒷맛이 개운치 않다. 대검은 김 수사관을 둘러싼 비위 의혹들이 사실로 인정된다면서도 별도 수사 의뢰는 하지 않았다. ‘일부 혐의에 대해 수사가 진행 중’이라고 하지만 수사 의뢰를 통해 철저한 규명 의지를 보이지 않은 건 납득하기 어렵다.

여야는 어제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국 민정수석을 31일 국회 운영위에 출석시키기로 합의했다. 당연한 수순이다. 두 사람은 국민들 앞에서 진실을 있는 그대로 밝혀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의혹을 대충 덮으려다 더 큰 참사를 빚었던 지난 정부들의 전철을 밟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