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은내친구] 빅 게임 들었다 놨다, 칼 같은 심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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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그레이엄 주심(左)이 후반 9분 박지성에게 반칙을 범한 토고의 장폴 아발로에게 레드카드를 들어 보이며 퇴장을 선언하고 있다. [프랑크푸르트 AP=연합뉴스]

14일(한국시간) 독일 월드컵 G조 프랑스-스위스전의 주인공은 앙리(프랑스)도 프라이(스위스)도 아닌 러시아인 주심 발렌틴 이바노프(45)였다. 이 경기에서 그는 이번 월드컵 들어 가장 많은 8장의 옐로카드를 뽑아들었다. 직업이 교사인 그는 몸싸움으로 빚어지는 충돌에는 관대했지만, 심판에 대한 항의나 비신사적인 행동에는 가차없이 카드를 꺼냈다. 마치 예의를 가르치려는 듯이.

토고전에서 한국이 전세를 뒤집었던 것도 사실 박지성이 이끌어 낸 상대편 수비수 퇴장이었다. 심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전 세계 수십억 인구가 지켜보는 월드컵은 각 팀의 승패가 해당 국가의 경제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파급력이 지대하다. 각국의 도박사들에게는 매 경기가 거액이 달린 '한판'이다.

이같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심판들이 돈의 유혹에 빠지지 않고 공정한 판정을 내리도록 국제축구연맹(FIFA)은 이들의 처우 개선에 크게 신경을 썼다. 경기당 2만 달러이던 수당을 1인당 4만 달러로 올렸다. 주심 23명을 포함한 81명의 심판들은 프랑크푸르트 교외의 5성급 특급호텔에 머무르도록 배려했다. 호텔 앞에 있는 큰 호수는 심신의 긴장을 풀기에 안성맞춤이다. 체력 담당 트레이너 6명, 마사지사 8명, 심리학자 2명, 상주 팀닥터 1명이 배치돼 이들의 컨디션을 관리해 준다. 특급 대우를 하는 셈이다.


대신 이들에 대한 관리는 엄격하다. 내부에 10명의 안전요원이, 외부에 4명의 경찰관이 배치돼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했다. 밖에서 걸려오는 전화도 받을 수 없다.

매일 1시간씩 전날 치러진 경기 화면을 모든 심판이 함께 보면서 잘잘못을 따진다. 10일 에콰도르와 폴란드의 경기 부심을 맡았던 김대영씨는 "오심이 밝혀지면 견디기 힘든 수치심이 몰려오지만, 어려운 순간에 정확한 판정을 했을 경우 큰 박수를 받기도 한다"고 말했다. 심판 간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같은 나라나 대륙에서 온 심판들이 한 경기에 들어갈 수 있도록 배치하고 무선 헤드셋을 착용해 심판들끼리 수시로 대화가 가능하도록 한 것도 이번 대회의 특징이다.

스타 선수들을 배출해 온 월드컵은 많은 스타 심판을 세상에 알리기도 했다. 지금은 은퇴했지만 깡마른 체구에 박박 민 머리로 그라운드를 누볐던 피에르 루이기 콜리나(이탈리아) 심판은 명판관으로 이름을 떨쳤다. 2002년 우리나라와 이탈리아 경기 주심을 맡았던 에콰도르의 바이런 모레노 심판은 우리에게는 '은인'으로, 이탈리아에서는 '원수'로 기억되고 있다. 이번 월드컵 최고의 심판이 누가 될지 궁금해진다.

임장혁 기자

*** 바로잡습니다

15일자 20면 '빅 게임 들었다 놨다, 칼 같은 심판' 기사에서 심판 수당은 경기당 4만 달러가 아니라 월드컵 기간에 1인당 4만 달러이므로 바로잡습니다. 주심과 부심의 수당차이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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