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좌경 몸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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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문익환 목사의 구속 이후 좌경에 대한 정부의 강공이 전민련 지도부 구속에 이어 한겨레신문에까지 뻗치자 긴장된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정부는 좌경 대책을 강경하게 밀고 나갈 태세인데 야당 측이 반발하는 조짐이어서 조만간 정치권이 한바탕「좌경몸살」을 앓을 것 같다.
○…민정당이나 정부측은 이영희 교수 구속사태가 언론탄압의 차원이 아니라 방북 문익환씨를 구속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나온 좌경 대책의 일환이라고 보고있다.
일본인「야스에·료스케」(안강량개)에게 보낸 이 교수의 한겨레신문 북한 취재에 관한 협조요청 서한은 △단순 취재가 아니라「존경하는 김일성 주석과 잠시라도 만나는 시간을 허락해 주도록」희망하는 등 북측과 접촉을 시도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취재 허가를 받아야하는 정부를 제치고 비밀접촉을 했기 때문에 국가 보안법에 저촉돼 당연히 사법 처리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정부측은 사법조치 대상을 한정해 이것이 언론 탄압이란 인상을 주는 것은 피하지만 사법조치 자체만큼은 강행할 생각에 변함이 없다.
이같은 정부의 좌경에 대한 강경 조치는 시국에 대한 인식이나 정국운영 구상과 관계되어있다. 현 시국을 해방 이후의 극심했던 이념 대결과 사회혼란에 버금가는 극도의 위기 상황으로 인식하고 있는 여권은 민주세력이란 이름으로 포괄돼 있던 재야에서 좌경세력을 분리, 강력하게 규제하겠다는 생각이다.
문익환 목사 방북사건 처리를 계기 삼아 전민련 지도부 구속, 이영희씨 등 한겨레에 대한 조치 등 한 걸음 한 걸음 가시화해 가고 있는「좌경척결」이라는 강경 대응 조치를 통해 크게는 자유민주 체제를 지키고 작게는 정부의 권위 회복과 정국 주도권을 장악해 보자는 방침인 것이다. 그러면서 중평연기 이후 여권 내부에 강경 그룹의 반발 등 내부 진통도 해소시키는 부수적 효과도 노리고 있는 듯 하다.
때문에 민정당은 다소의 대결 국면이 조성되더라도 공권력의 강력 행사에 주력하고 당분간은 영수회담이나 국회소집에 불응할 방침이다.
박준규 대표의『이제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다』는 결연한 태도나 김윤환 총무의『문 목사 사건은 홍정식 정치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말로 여권의 내부 기류를 전해주고 있다.
호국 청년회 등 우익단체들의 활동이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것도 여권내의 분위기나 대처 방향을 시사하는 것이라는 풀이도 있다.
따라서 민정당은 정부의 공권력 행사를 뒷받침하는 의미에서 4월중엔 고위급 정치회담을 기피하면서 좌경세력에 대한「소탕」작전을 벌이도록 하고 이를 통해 제도권 야당의 입지를 대폭 축소시켜 놓은 뒤 5월10일을 전후해 임시국회를 소집, 강경 조치 등에 따른 역작용 등을 흡수하는 등 뒷수습을 해나간다는 수순을 정해놓은 눈치다.
민정당 측은 전민련 전면 수사·이영희 교수 등 한겨레신문의 북한취재 관련 수사 등 좌경 강경 조치를 싸고「과잉대응」·언론탄압이라는 등 비판적 역풍이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는 있지만『이번만큼은 또 다시 구속 인사들이 민주인사로 대접받고 풀려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게 많은 당 관계자들의 주장이다.
○…야권은 정부가 문 목사 사건의 충격과 노사분규 격화를 한데 묶어 체제수호를 내세워 공권력을 동원, 재야 세력에 대한 전면전을 펼치는데 대한 저의와 파장을 분석하며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야당들은 일단 좌경 폭력세력에 대한 분명한 반대 입장을 천명, 여론 동향에 신경 쓰는 한편 여권의 최근 강경 일변도 조치를「위험한 좌경화 흐름」으로 보고 이의 견제대책을 세우는 등 제도권 야당으로서의 입지 확립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문 목사 구속에 대해선 신중한 비판 입장을 보였던 평민·민주당 등은 이영희 교수 구속과 한겨레신문에 대한 조치가 시작되자 이를 언론탄압으로 규정, 석방을 요구하는 등 비판의 강도를 높여가고 있다.
평민당은 문 목사 사건을 계기로 최근 정부내에 일련의 강경한 좌경 척결작업을 벌이는 것을 심각하게 보고 있는데 한겨레에 대한 조치에 대해선 상당히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강경 비난 성명을 내는 등 즉각적 비난을 하고 나온 것은 정부측의 강경 조치가 계속될 경우 야당의 입지도 약화될 우려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여권내의 강경한 우익 세력이 정국을 계속 주도할 경우 정치권 왜곡 현상이 일어날 것으로 보고「적절한 선」에서 조정되기를 바라는 것 같다.
평민당이 3김. 4자 회담 등을 제안해 놓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동해시 재선거 후보 매수 사건으로 당이 벌집 쑤셔놓은 꼴이된 민주당도 황망 중에 한겨레 사태에 대한 비난성명을 내는 등 반대에 나서고 있다.
민주당은 공권력에 의한 재야의 일망타진식 구속에 반대하면서도 급진 재야와도 선을 분명히 그은 상태로 정부·여당을 도와주는 형국이 되는데 대해 고심하고 있다.
민주당 역시 이 강경 국면의 조기 해소를 위한 야당 공조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으나 동해시 후보 매수사건으로 위기에 몰린 데다 공화당과 사이가 벌어져 어떤 형태든 이사건의 조기수습에 정신이 없다.
공화당은 이영희 교수 구속에 대해선『언론인 구속은 신중해야 한다』고 논평, 언론 문제에 대해선 조심스런 견제를 하고 있으나 좌경문제에 대해선『지켜보자』는 신중한 태도다.

<고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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