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인싸] 文 만난 공무원 "직장서 충신하려니 집에서 간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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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인싸’는 국회 안(inside)에서 발생한 각종 이슈와 쏟아지는 법안들을 중앙일보 정치팀 2030 기자들의 시각으로 정리합니다. ‘여의도 인싸’와 함께 ‘정치 아싸’에서 탈출하세요.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달에 정부세종청사에서 7개 부처의 내년도 업무 보고를 받으면서 각 부처 격무 부서를 방문해 직원들과 직접 소통할 기회를 가졌습니다. 그 중엔 아이 둘을 키우는 워킹맘부터 여름 휴가를 아직 못 다녀 온 직원도 있었습니다. 직원들은 남녀 구분할 것 없이 일ㆍ가정 양립이 어려운 현실을 문 대통령에게 토로했습니다.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지난해 5월 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진행된 제19대 대통령 선거 마지막 유세에서 딸 문다혜 씨와 손자로부터 카네이션을 선물받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지난해 5월 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진행된 제19대 대통령 선거 마지막 유세에서 딸 문다혜 씨와 손자로부터 카네이션을 선물받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문 대통령 딸 다혜씨도 지난해 대통령선거 하루 전인 5월 8일 서울 광화문 유세에서 “전업맘과 워킹맘이 아이와 함께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 달라”고 당부했었는데요. 1년 반이 지난 지금 상황이 크게 나아진것 같지는 않습니다. 먼저 문 대통령과 부처 직원들의 대화 내용부터 살펴볼까요.

문재인 대통령이 11일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교육부의 업무보고를 받은 뒤 교육복지정책국 사무실을 방문해 직원들을 격려하고 이야기를 나눴다. 교육복지정책국은 최근 사립유치원의 회계 비리 사태의 대응 정책을 총괄하는 실무 부서다. 문 대통령 오른쪽은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11일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교육부의 업무보고를 받은 뒤 교육복지정책국 사무실을 방문해 직원들을 격려하고 이야기를 나눴다. 교육복지정책국은 최근 사립유치원의 회계 비리 사태의 대응 정책을 총괄하는 실무 부서다. 문 대통령 오른쪽은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청와대사진기자단]

<2018년 12월 11일 교육부 교육복지정책국>

▶문 대통령=유아교육정책과가 요즘 유치원 문제를 다루는 곳인가요. 다들 고생들 하셨는데, 정작 자기 자신들의 아이들은 제대로 못 돌보시는 것 아닙니까.(일동 웃음)
▶권지영 유아교육정책과장=사실 그 전에는 저희가 되도록 정시퇴근 하자고 했는데, 두 달 전부터는 가정을 내팽개치고 일하고 있습니다.(일동 웃음)

문재인 대통령이 11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에서 2019년 업무보고를 마친 후 고용노동부 내 근로기준정책과를 방문해 직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11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에서 2019년 업무보고를 마친 후 고용노동부 내 근로기준정책과를 방문해 직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18년 12월 11일 고용노동부 근로기준정책관실>

▶문 대통령=최저임금 인상하고, 노동시간 단축이 우리 정부의 가장 핫한 이슈여서 안착시키는 게 엄청난 일이었는데, 또 일자리 안정자금 제대로 수급되게끔 하고, 그런 고생들 다 하셨네요?
▶최태호 근로기준정책과장=자기 개인생활이나 이런 것들 희생하며 일하고 있고요, 김경선 서기관도 애 둘 키우면서 하고 있습니다.
▶김경선 서기관=남편이… (애를 키우고 있습니다).(웃음)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환경부에서 &#39;모두가 함께 만드는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39;을 주제로 2019년 환경부 업무보고를 받은 뒤 전국 주요 상수원의 녹조와 각종 수질오염 사고에 대응하는 수질관리과를 방문해 직원들을 격려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환경부에서 &#39;모두가 함께 만드는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39;을 주제로 2019년 환경부 업무보고를 받은 뒤 전국 주요 상수원의 녹조와 각종 수질오염 사고에 대응하는 수질관리과를 방문해 직원들을 격려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18년 12월 18일 환경부 수질관리과>

▶문 대통령=(녹조 업무 때문에) 한참 여름철이나 남들 휴가 갈 때 제대로 휴가도 사용하지 못했겠습니다. 오늘 또 업무보고 때문에 이달에도 휴가를 사용하지 못하는 것 아닙니까?
▶김양동 사무관=아뇨, 내일부터…. 겨울철 되니까 녹조 업무 아니라 폐수 업무를 담당하게 돼서.(일동 웃음)
▶조석훈 수질관리과장=우리 과에 충신이 있습니다. 곽충신입니다. 수질오염사고 담당입니다. 주말에 비상대기 한다고 고생하고 있습니다.
▶문 대통령=공무원 되신 게 천직이십니다.(웃음)
▶곽충신 사무관=곽충신이라는 이름이 가정과 일을 양립하기가 어렵습니다. 직장에서 충신하려니 집안에선 간신이 돼 가지고.(웃음)

 문 대통령이 대선 때 “아이 낳고 키우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며 내놓은 주요 일ㆍ가정 양립 지원을 위한 공약(대선 공약집 기준)의 이행률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진행 상황을 현 시점 기준으로 ○, △, Ⅹ로 나눠봤습니다.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지난해 2월 8일 오후 일 가정 양립 일자리 기업 투어의 일환으로 경기 성남시 중원구에 소재한 ㈜아이에스씨(ISC)를 방문해 직원들과 간담회를 갖고 있다. [문재인 공식 블로그]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지난해 2월 8일 오후 일 가정 양립 일자리 기업 투어의 일환으로 경기 성남시 중원구에 소재한 ㈜아이에스씨(ISC)를 방문해 직원들과 간담회를 갖고 있다. [문재인 공식 블로그]

문재인 후보 대선 공약집

문재인 후보 대선 공약집

①배우자(아빠) 출산휴가 확대(△)

문 대통령은 아빠 출산휴가 유급 휴일을 10일로 확대하겠다고 공약 했습니다. 여성의 독박 육아를 줄이자는 취지입니다. 지난 17일 발표된 2019년 경제정책방향에 따르면 정부는 배우자의 유급 출산휴가 일수를 3일에서 10일로 늘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정부 출범 이후 1년 반여년 만입니다. 그러나 일반 사기업의 배우자 출산휴가를 규정하고 있는 남녀고용평등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야 해서 정부는 내년 하반기에나 시행이 가능하다는 입장입니다.

②첫 3개월간 육아휴직 급여 인상(△)

문 대통령은 남녀 모두 최초 3개월간의 육아휴직 급여를 월급의 40%→80%, 상한액을 100만원에서 200만원으로 올리겠다고 했습니다. 지난해 8월 고용보험법 시행령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하면서 정부는 육아휴직시 첫 3개월 급여를 월급의 40%에서 80%로 인상했습니다. 그러나 상한액은 100만원에서 150만원으로 50만원 오르는 데 그쳤습니다.

③아빠 육아휴직보너스제 도입(△)

문 대통령은 자녀수에 상관 없이 같은 자녀에 대하여 육아휴직을 순차적으로 사용할 경우, 두번째 사용하는 사람의 육아휴직 급여를 6개월까지 월급의 80%, 상한액을 200만원으로 인상하겠다고 했습니다. 지난해 7월 이전에는 상한액이 모든 자녀에 대해 150만원이었으나 내년 1월부터는 모든 자녀에 대해 250만원이 됐습니다. 단 첫 3개월 육아휴직 급여에만 해당되네요. 지원 기간을 현행 3개월에서 6개월로 연장하자는 논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문재인 후보 대선 공약집

문재인 후보 대선 공약집

④유급 가족돌봄휴직제도(Ⅹ)

문 대통령은 현재는 무급인 가족돌봄휴직제도를 30일 유급으로 하겠다고 공약했습니다. 부모, 자녀, 배우자, 배우자 부모를 대상으로 1회 최소 30일 이상, 연간 최대 90일까지 분할해서 사용할 수 있는 제도입니다. 정부는 제도 자체가 많이 활성화돼 있지 않아서 사유 대상에 손자녀를 포함해서 확대하는 방향으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라고 합니다.

⑤칼 퇴근법 제정(Ⅹ)

문 대통령은 출퇴근 시간 의무 기록제를 도입해 야근을 해소하는 이른바 ‘칼퇴근 법’을 제정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칼 퇴근법은 이후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발표한 국정운영5개년 계획에서 빠졌습니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말 “칼퇴근 보장은 대통령 공약이기도 해서 연구용역을 실시 중으로 용역 결과가 나오는 대로 조속히 추진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국회에도 “사용자는 근로자의 업무개시ㆍ종료시간을 일ㆍ주ㆍ월단위로 측정하여 기록한 명부를 3년간 보존한다”는 내용을 담은 법안(바른미래당 이찬열 의원) 등이 발의돼있지만 구체적인 시행방안이 논의중인 것은 아닙니다.

정리해보면 육아휴직 급여나 아빠 육아휴직보너스제 금액이 일부 인상된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저출산 해소와 일·가정 양립을 위해 정부가 더욱 분발해야 할 대목이 많아 보입니다.

위문희 기자 moonbrigh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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