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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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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귀향은 본래 귀양과 같은 말이다. 그냥 '고향 앞으로'면 귀향, 여기에 유배나 징벌이 더해지면 귀양이지만, 옛날엔 구분 없이 섞어 썼다. '당서(唐書)'엔 관원을 '귀향'보내는 장소로 해남(海南)이 유명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송대 도적떼 얘기인 수호전에도 108 호걸 중 하나인 무송이 해남에서 '귀향살이'하는 대목이 나온다.

귀향에도 등급과 단수가 있다. '교활한 귀향'의 으뜸은 송나라 때 재상 채경이다. 당시 4대 간신 중 한 명으로 80수를 누렸다. 그는 당파싸움을 교묘하게 이용했다. 세가 불리해지면 벼슬을 던지고 귀향했다가 상황이 유리해지면 다시 복귀했다. 이를 네 차례나 반복하면서 죽을 때까지 부귀영화를 누렸다. 악신(惡臣)의 대명사로 알려져 송나라 때를 배경으로 삼은 소설에 곧잘 등장한다. '서문경이 뇌물을 바치는 간신'(금병매)이나 '음모로 송강을 독살하는 악덕 승상'(수호전) 모두 채경이다. 살아선 영달을 누렸지만, 죽어선 천년 세월 손가락질을 받는 셈이다.

'절개 높은 귀향'의 백미는 동진(東晉)의 도연명이다. "어찌 쌀 닷 말(五斗米)에 허리를 굽히랴"며 벼슬을 버렸다. 삶은 빈한했지만, 마음은 풍요로웠다는 그의 귀거래사는 지금까지 만인의 귀감이다.

애처롭기에는 범증의 귀향만 한 게 없다. 범증은 항우를 천하제일인으로 만들었지만, 항우의 그릇은 천하를 담기에 부족했다. 한왕의 계략에 말려 자신을 죽이려는 주군 항우에게 범증은 "해골이나마 초야에 묻히도록 허락해 달라"(사기 장승상열전)고 청한다. 걸해골(乞骸骨)-. '몸과 마음은 주군에게 바쳤으되, 해골만이라도 돌려달라고 구걸한다'는 고사가 여기서 나왔다. 걸해골은 이후 고관대작 '사퇴 성명서'의 단골 메뉴가 됐다.

'한 맺힌 귀향'으론 조선시대 환향녀(還鄕女)를 당할 게 없다. 죄 없이 청나라에 잡혀갔다가 정절을 잃고 돌아온 양가 규수들은 가문에서도 버림받았다. 환향녀에서 유래한 '화냥녀'가 '음란한 여성'을 뜻하게 되면서 한은 더 깊어졌다.

'아름다운 귀향'으로 기억이 생생하기에는 하인스 워드다. 워드는 이 땅의 혼혈인들을 위해 '할 일을 하겠다'던 두 번째 방한 약속을 지켰다.

노무현 대통령이 최근 퇴임 후 귀향하겠다고 밝혔다. 역대 대통령 중 처음이다. 은퇴 후에도 세력을 만들지 않고 생태계 복원에 공을 들이며 살겠다는 뜻도 비쳤다. 일각에선 고단수의 '정치적 귀향'이라고 몰아붙이지만, 약속이 지켜진다면 그야말로 '아름다운 귀향'이 될 터이다.

이정재 경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