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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기부 27% 감소…유난히 얼어붙은 올 ‘사랑의 온도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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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20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 있는 ‘사랑의 온도탑’ 수은주가 33.1도를 가리키고 있다. 모금 목표액수의 1%가 모일 때마다 1도씩 올라간다. [임현동 기자]

20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 있는 ‘사랑의 온도탑’ 수은주가 33.1도를 가리키고 있다. 모금 목표액수의 1%가 모일 때마다 1도씩 올라간다. [임현동 기자]

19일 오후 6시30분 서울 광화문광장. 사회복지공동모금회(공동모금회)가 설치한 ‘사랑의 온도탑’의 수은주는 33.1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3년 전인 2015년 이맘때 41도를 넘었던 것과 비교하면 8도 이상 낮다. 온도탑은 모금 액수의 목표치(올해 4105억원)에 1%가 모이면 1도씩 올라간다. 수십명의 시민들이 광장 앞 횡단보도를 지나갔지만 온도탑에 눈길을 주는 사람은 드물었다. 대학생 정성욱(22)씨는 “취업과 등록금 걱정 때문에 선뜻 돈을 낼 생각이 안 든다”며 “기부한 돈이 엉뚱한 곳에 쓰일지도 불안하다”고 말했다.

공동모금회 캠페인 참여 저조 #17개 지회 모금액 작년의 82% #내년 1월까지 목표 달성 ‘빨간불’ #경기 침체에 기부단체 불신도 커 #전문가 “기부자 알 권리 강화해야”

본격적인 추위가 시작됐지만, 온정이 담긴 기부 물결은 아직 얼어 있다. 특히 일반 시민의 기부 손길이 줄어들고 있다. 공동모금회에 따르면 이 기관이 시행하는 ‘희망 2019 나눔캠페인’ 모금액은 18일 기준 약 1360억원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 모금액(1236억)보다는 많지만, 이는 중앙회 모금액이 평소보다 많았기 때문이다. 17개 지방 지회의 모금액은 지난해 82% 수준에 불과했다. 이장희 공동모금회 홍보미디어팀장은 “중앙회 모금액은 이번 주 들어 대기업 기부가 이어지며 증가했다”며 “지방지회는 비중이 큰 개인 기부가 줄어 지난해보다 모금액이 적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개인 모금액은 꾸준히 줄고 있다. 지난 2013년 2663억원이던 공동모금회의 개인 모금액은 지난해 1939억원으로 27% 줄었다. 전체 모금액 중 개인이 차지하는 비율도 같은 기간 47%에서 32%로 낮아졌다. 이 팀장은 “기업 등 법인은 한 해 정해놓은 자체 계획대로 기부하기 때문에 연말에 기부를 많이 하고 신년엔 모금액이 많지 않다”며 “모금 기간 후반부엔 개인 기부가 뒷받침돼야 목표치를 달성할 수 있는데 참여가 저조해 걱정”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20일 시작한 캠페인은 내년 1월 31일 종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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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간 이어진 경기침체는 국내 기부 참여율에 영향을 줬다. 통계청의 ‘2017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1년 동안 기부를 해 본 경험이 있다’고 답한 사람은 26.7%로 2013년에 비해 7.8%포인트 감소했다. 기부하지 않은 이유론 ‘경제적 여유가 없다’가 57.3%로 가장 많았다. 기부의 ‘큰손’도 사라지고 있다. 공동모금회에 1억원 이상을 낸 개인 고액기부자 모임 ‘아너 소사이어티’ 신규 가입자 수는 2016년 422명이었던 신입 회원 수가 지난해 338명으로 감소했다. 올해는 17일 기준 209명에 불과하다.

기부금 사용 대한 ‘불신’도 개인의 기부 의지를 움츠러들게 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16년 ‘나눔 실태 및 인식 현황’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2038명 중 964명은 기부를 하지 않은 이유로 ‘기부를 요청하는 시설, 기관, 단체를 믿을 수 없어서(23.8%)’를 가장 많이 꼽았다. 간호사 김소연(29)씨는 “‘어금니 아빠’ 이영학이 후원금을 자기 마음대로 썼다는 뉴스를 본 뒤 충격을 받았다”며 “내가 기부한 돈이 허투루 쓰일 바엔 기부를 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기부자의 알 권리’를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황신애 한국모금가협회 이사는 “이영학 사건은 성금을 받은 개인이 벌였지만, 기부단체 불신으로 이어졌다”며 “단체 스스로 기부금 용처를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전현경 아름다운재단 전문위원은 “미국의 ‘글래스포켓츠’ 처럼 비영리단체의 투명성을 평가·인증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연순 공동모금회 사무총장은 “기부는 정부 손길이 안 닿는 사람들을 돕는 민간차원의 자발적 나눔으로 강한 사회통합의 기능이 있다”며 “나눔에 대해 망설이는 분들이 조금만 힘을 보태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승호·이수정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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