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권력 대 재야 전면전 조심|「좌경」강경 대처로 긴박해진 4월 정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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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문익환 목사의 귀국이 임박해짐에 따라 전국이 좌경문제의 소용돌이로 휘말려 들고 있다. 울산 노사분규를 전국적인 총 파업의 시발로 보고 체제 전복 움직임에 강력히 대처한다는 정부측의 강경 방침이 거듭 표명되고 있는 가운데 전민련 등 재야단체도 전면전을 불사하겠다는 태세로 반정부 투쟁을 굽힐 기세가 전혀 없어 공권력과 재야의 한판 격돌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긴장감이 돌고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도 여야 4개 정당은 제대로 수습방안을 마련하지도, 못한 채 뒷전에 밀려나 있는 상태다.

<체제 도전 위험 수위>
좌경세력에 대한 초 강경 분위기 속에 민정당은「강경 대처」라는 한 목소리에 합류하고있다.
민정당은 검찰의 공안 합동 수사 본부를 통해 가시화하고 있는 정부외 대 좌경대책을 주시하고 있는데 전민련 등 재야단체 핵심인사의 구속이 가져올 정치적 부당을 인정하면서도 일단은 정부측의 과감한 접근을 뒷받침해 준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이 문제에 관해서는 여야 영수회담 등 일체의 협상을 배제해 선 조치 후 협상의 입장이다.
당의 정세 분석 관계자들은 문씨 입북 사건이 좌경대처를 위한 결정적이고도 중요한 계기이며 울산 분규는 6공 정권이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마지노선」으로 보고있다.
정부측 관계자들은 『두 가지 사건은 6공 정부에 대한 체제 도전 세력의 위협이 어느 정도 위험수위에 와있는 가를 보여주는 극명한 실례』라고 밝히고 있다.
이 관계자는『5공 정권의 부도덕성으로 공권력의 기능이 상실돼 지난 1년간은 실제로 공권력의 엄정한 집행이 불가능해졌다』며 『그러나 이제는 민주세력과 체제도전 세력이 어느 정도 명확히 구분되고 좌경 세력에 대한 국민의 반감과 경계심이 높아 공권력 확립의 분위기가 성숙했다』고 주장했다.
민정당의 관계자들도 『좌경 세력의 위협은 그 숫자가 아니라 조직력에서 나온다』며 『볼셰비키 혁명도 70명에서 출발했다』고 주장했는데 『대학가의 전대협과 서총련, 노동계의 전노련, 문화계의 민문련, 교사들의 전교협 그리고 재야 단체 연합인 전민련의 조직과 활동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말해 이들 단체가 강경 대처의 대상임을 밝히고 있다.
정부나 민정당이 내부적으로 더욱 예민하게 주시하고 있는 쪽은 울산사태.
민정당은 재야 노동권에서 흘러나오는 5월 대 파업설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데『울산에서 무너지면 걷잡을 수 없다』며 고삐를 바짝 당기고 있다.
당의 한 관계자는 『체제 도전 세력은 애초 서울 지하철 파업에 한판 승부를 걸었으나 여론의 악화로 실패하자 울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는데 현대 중공업의 노학 연대 투쟁을 확대시켜 전국적인 투쟁으로 확산시킬 계획이라고 보고 있다.
정부측은 3천∼4천명의 전대협·서총련 소속 학생들이 울산 현지에 침투할 것으로 보고 있다.
민정당은 대 좌경 전면전의 기치를 내세우면서도 자칫하면 5공식 탄압이란 비판을 받을까봐 좌익의 성격규정에 고심하고 있다.
8일의 당국자 회의는 좌익을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폭력으로 전복하려는 세력』이라고 규정했는데 이와 관련, 당의 한 관계자는 『제도권이 수렴해야 하는 진보적 사상과 좌경과는 구분해야한다』며『전민련·전대협 등은 노 정권 퇴진 등 정치투쟁에 나서고 있고 폭력에 의존하고 있어 수용 가능한 진보세력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정부 측 강도에 신경>
정부·여당의 강경 바람에 야당 측은『좌경을 빙자한 탄압』이라고 반발하고 있지만 내심 정부측 태도의 강도에 대해 신경 쓰는 눈치.
평민당은 4당 영수회담을 제의하는 등 정치권의 적극적인 해결 노력을 제안하고 나셨지만 민정당 측이 정치적 수습에 나설 의향이 아직 없는데다 민주당 측도 평민당에 동조할 생각이 없어 정당들은 공권력 대 재야의 대결을 수수방관해야할 처지.
전민련 측은 사태의 극복을 위해 야당 측과의 연대도 희망하고 있으나 야당 측으로서도 앞으로의 노사분규가 극심해 지고 문 목사 귀국 후 재야세력들에 대한 검거선풍이 불게 되면 그 와중에서 어느 쪽에 서야할지가 모호하다는 인식.
정부 강경 방침의 표적인 전민련도 정부의 일련의 강경 조치설이 정치국면의 전환을 목적으로 한 위협용인지 실질적 전면 탄압의 시작인지를 아직 지켜보아야 한다는 판단아래 대응책을 마련중이다.
전민련은 정부측이 핵심인사의 전면구속 및 사무실 폐쇄 등으로 나오면 학생 및 노동 운동권과 연계. 물리력을 사용한 「전면전」에 나선다는 방침.
전민련의 당초 투쟁 시간표는 4월 임금투쟁을 통한 민중 생존권 확보 투쟁, 4∼6월 노 정권 퇴진운동으로 대표되는 반 파쇼 민주화 투쟁.
전민련은 이미 산하 노동단체에 동원령을 내려 「임투본」(전국 노동법 개정 및 임금 인상투쟁 본부)의 주최로 9일 전국 11개 도시에서 열린「현대 중공업 규탄 및 89임금 인상 투쟁승리 전진 대회」를 적극 지원했으며 5월1일로 예정된 메이데이 총 파업에도 동참한다는 계획이다.
전민련은 문 목사 사건을 예정 외의 돌발사건으로 보고있다.
당초 조국통일 투쟁을 남북 학생회담·평양축전·범 민족 대회가 몰려있는 7∼8월에 벌이기로 한 전민련은 문 목사 방북으로 정부·여당의 집중포화를 받은데다 투쟁 역량의 분산을 맞게되어 외부적으로 전술적·감각적 대응이 부족하다』고 문 목사에 대한 비판이 나오는 실정이다.
명분상 문 고문을 지지 할 수밖에 없는 전민련은 13일부터 1주일간 전국에서 문 목사 환영대회·구속할 경우 규탄 및 석방 촉구 대회를 벌일 계획이나 문 목사 소용돌이는『길어야 1주일이면 국민의 관심이 사그라질 것』이라고 관측하고 있다.
따라서 전민련은 문 목사 파문을 조속히 매듭짓고 임금투쟁 등 메이데이 총 파업으로 이어간다는 건제아래 4·19에서 5·17에 이르는 기간에 정치투쟁을 강화, 5공·광주문제의 척결요구와 함께 노태우 퇴진 운동을 강화해 나간다는 전략이다.
전민련은 그러나 정부의 강경 조치로 사무실 폐쇄 등의 사태가 올 경우 이제까지의 합법적 공간 내에서의 역량 확대 방식에서 벗어나 물리적 투쟁으로 나설 수밖에 없다고 보고 이 경우학생·노동·농민 운동과 결집해 장외 대중 집회를 계속하는 등 87년 직선제 투쟁과 동일한 전면투쟁에 나선다는 방침이며 내부적으로 도피장소·연락방법·업무분담 계획 등을 수립해 놓고 있다는 후문이다. <조현욱·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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