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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부, 국민연금 폭탄 국회로 던졌다…“사지선다 국민 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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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가운데)이 지난 1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제4차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안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양성일 보건복지부 인구정책실장, 박 장관,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뉴시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가운데)이 지난 1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제4차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안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양성일 보건복지부 인구정책실장, 박 장관,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뉴시스]

보건복지부는 14일 사지선다의 국민연금 개편안을 공개했다. ▶현행 유지 ▶기초연금 인상 ▶보험료 12%-소득대체율 45% ▶보험료 13%-소득대체율 50% 등이다. 지난 8월 보건복지부 산하 국민연금제도발전위원회(이하 제도위원회)가 두 개의 권고안을 냈는데, 이게 배로 늘어났다. 이번 연금 개편은 4차 재정재계산으로 국민연금 건강검진 격이다. 과거에는 정부가 제도위원회 복수안을 받아서 단일안을 낸 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반대로 안을 늘렸기 때문에 국회에 떠넘겼다는 비판이 나온다.

국민연금 네 가지 개편안 왜 나왔나 #8월 보험료율 인상 2개안 내놨다 #대통령이 질책한 뒤 방향 바꿔 #소득대체율 50% 대선공약도 부담 #여당도 여론 의식해 인상안 난색

당장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성명서를 내고 “여러 가지 안을 나열하며 국민들에게 폭탄을 던지고 있고, 제시된 안들도 핵심은 빠진 속 빈 강정에 불과하다”며 “단일한 안을 제시하지 않아 국민 혼란만 가중시키고 세대 갈등만을 조장한다”고 비판했다. 왜 정부는 네 가지로 늘렸을까.

◆국민 동의 반복 강조=제도위원회는 8월 현행 소득대체율(2018년 45%→2028년 40%)을 유지하면서 보험료율(현재 9%)을 1단계로 13.5%까지 인상하는 안과 ‘소득대체율을 45%-보험료율 11%안’을 제시했다. 전자는 재정 안정을, 후자는 노후소득 보장을 강조했다. 당초 제도위원회는 단일안을 내려고 시도했으나 내부 이견이 너무 엇갈려 두 가지 안을 냈다. 정부가 판단해 두 가지를 조정할 것을 주문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두세 차례 연금개혁 방향을 제시하면서 방향이 바뀌기 시작했다. 문 대통령은 8월 “국민 동의를 거쳐 연금 개편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11월에도 복지부에 “전면 재검토”를 지시하면서 국민 눈높이를 강조했다. 당시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보험료 인상이 제일 국민 눈높이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계신다”고 설명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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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료 인상에 국민 동의를 받기가 쉽지 않다고 판단한 듯하다. 국민연금연구원이 전국 국민연금 가입자 및 수급자 2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현재 9%인 보험료율이 ‘부담된다’는 응답은 63.4%(1268명)였다. ‘부담되지 않는다’고 답한 비율(34.6%·692명)보다 거의 두 배에 육박했다. 11월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의 보고가 퇴짜를 맞을 무렵,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왜 우리 정부에서 연금 개혁을 해야 하느냐’는 반대파와 ‘우리가 해야 한다’는 개혁파가 맞서고 있다”고 전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청와대의 이런 분위기 탓에 제도위원회의 두 가지 안 중 ‘보험료율 13.5%-소득대체율 40%’라는 재정 안정 방안은 이번 정부 개편안에서 사라졌다. ‘보험료 인상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다’는 문 대통령의 입장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대신 문 대통령의 노후 소득 보장 강화 방침이 반영됐다. 현행 법률에 따르면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은 올해 45%에서 단계적으로 떨어져 2028년 40%까지 떨어진다.

이에 문 대통령은 지난 대선 당시 “소득대체율 50%를 회복하겠다”고 공약했다. 올 들어서도 “노후 소득 보장”을 줄기차게 강조했다. 정부는 이런 방침을 충실히 반영해 넷 중 세 개 안을 노후소득 보장 안으로 짰다. 여기에 현상유지 안을 더해 네 개로 늘어났다. 김용하 순천향대 금융IT학과 교수는 “재정 안정화 방안은 없애버리고 노후소득 보장 강화만 나열한 개악”이라며 "겉으로는 네 가지로 선택폭을 넓힌 것처럼 보이나 실상은 소득 보장이나 재정 안정에 대해 고민한 흔적이 거의 없다”고 꼬집었다.

더불어민주당도 보험료 인상에는 난색을 표한다. 민주당 관계자는 “박능후 장관이 대통령에게 보고하기 전에 우리 당과 안을 상의했고, 여기에서 보험료를 꽤 올리는 안은 거부당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11월 문 대통령 퇴짜를 맞을 당시 보고 초안에 있던 소득대체율 인상안을 두 개로 늘렸고, 보험료를 올리지 않는 현상유지 안이 추가된 것으로 보인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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