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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냐, 집토끼냐…‘방위비 분담금’ 딜레마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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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4호 08면

‘평화를 위해 돈을 더 내야 하나? 지지층을 고려해 버텨야 하나?’

한·미 올해 마지막 협상도 결렬 #북핵 협상, 대미 발언권 위해 #트럼프 증액 요구 수용해야 하나 #지지층 반대 여론에 고민 깊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위비 분담금 대폭 증액 요구에 청와대가 막바지까지 결단을 못 내리고 있다. 서울의 한 외교소식통은 14일 중앙SUNDAY에 “지금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3년 이라크 추가 파병을 결정했을 때와 유사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부시 행정부의 ‘군사적 옵션’이 아니라 ‘대화를 통한 평화적 북핵 해결 원칙’을 설득하기 위해 지지층이 강하게 반대했던 이라크 추가 파병 결단을 내렸다. 이후 지지율은 실제 추락했다. 최근 장기 교착 우려마저 나오고 있는 북·미 비핵화 협상에서 한국의 발언권 강화를 위해선 트럼프 대통령의 수천억원 증액 요구를 수용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럴 경우 진보 성향이 강한 지지층의 이탈이 일정 부분 불가피하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고민이 깊어지면서 결국 2019년부터 한국이 내야 할 분담금 총액, 유효기간, 인상률 등을 놓고 지난 11~13일 진행된 올해 마지막 협상도 끝내 결렬됐다. 외교부 당국자는 14일 “이번 협상에서도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며 “(분담금) 총액과 관련한 입장 차이가 아직도 크고 이를 좁히기 위해 계속 노력 중인데 여의치 않았다”고 밝혔다. 미국 측이 요구한 수준은 지난 7일 월스트리트저널(WSJ) 보도 등에 따르면 2018년 분담금(9600억여원)보다 약 50% 인상된 12억 달러(약 1조3000억원) 수준이다. 2014년 협상 당시 2015년 분담금을 5.8% 인상(2016~2018년엔 물가인상률만큼 증액)한 것과 비교할 때 약 9배나 높은 요구다. 이와 관련,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이나 전화 통화에서 방위비 분담금의 대폭 증액을 빼놓지 않고 요구하고 있다. 반면에 한국은 ‘상호 존중과 이해의 정신하에 상식적인 수준에서 인상하자’는 입장이다. 2019년 첫해 총액이 커지면 협정 유효기간과 매년 인상률에 따라 분담금 규모가 눈덩이처럼 늘어날 수 있어서다.

향후 협상 일정도 정해지지 않았다. 이제 실무협상은 할 만큼 했고, 양국 정상 간 결단만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 당국자는 “거의 모든 사항이 합의됐고, 앞으론 대표 간 협상뿐 아니라 외교채널 협의로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청와대 내에서도 그동안 갑론을박이 오갔다고 한다. 한 여권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과공(過恭)’ 논란까지 무릅쓰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평택기지 방문에 공을 들였던 이유도 현재와 같은 선택의 기로에 놓이지 않기 위한 것이었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비즈니스적 기질이 워낙 강해 결과적으로 먹히지 않았다”고 말했다. 평택 기지는 107억 달러(약 12조1000억원)에 달하는 전체 기지 건설비용의 92%를 한국이 부담했다.

이 관계자는 “여권 내에선 한반도 평화를 위해 결국 분담금을 더 낼 수밖에 없지만 지지층 설득을 위해선 증액 규모를 최대한 줄여야 해 협상이 길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협정의 유효기간은 이달 말까지다. 국회의 비준 동의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협정 공백 상황이 길어질 수도 있다. 2019년도 분담금 집행과 관련, 새 협정 체결 전까지는 일단 2018년도에 준해 필요한 금액을 집행하고 이후 차이가 발생할 경우 예비비를 활용해 총액을 맞추게 된다고 한다.

차세현·권유진 기자 cha.seh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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