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질 수 없는 상처 진상 캐내자" |제주 최대의 비극 「4·3사건」 41주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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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제주 현대사의 「최대비극」으로 일컬어지는 4·3사건 41주년을 맞아 제주에서 4·3사건 진상규명논의가 활발히 일고 있다. 1일부터 「4·3 추모 제」「토론회」「강연회」「마당 굿」등 각종행사가 잇따라 열려 도민들의 관심 속에 역사재조명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양민 2만7천 여명이 희생됐다는 주장과 7만 명 이상이 희생됐다는 주장이 엇갈릴 만큼 정확한 사실조차 밝혀지지 않은 채 40여 년 동안 묻혀온 비극의 진상은 과연 무엇인가
진상규명논의가 본격화한 것은 6·29이후 일부향토사학자를 비롯해 평소에 관심을 갖고있던 학자들과 재야민주단체 등이 토론회·강연회 등 행사를 마련하면서부터다.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 때 제주도감사에서『4·3사건의 진상을 바로 알고 억울하게 희생된 양민을 위해 위령탑이라도 건립해주어야 할 것』이라는 제주출신 강보성 의원 (민주) 의 공식적인 발언이 진상규명의 촉매제가 됐다.
4· 3사건은 뒤이어 터진 6·25후 자유당, 민주당 5·16군사정권, 공화당 유신정권을 거쳐 제5공화국에 이르기까지 논의가 금기 시 되어왔다.
가해자는 물론피해자까지도 기억을 되살리기를 꺼리는 「잊고만 싶은 과거의 상처」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과거의 올바른 이해와 정리라는 차원에서 뒤늦게 진상 규명작업이 시작된 것이다. 올해 행사는 제주도문제연구소(이사장 강보성 국회의원)주관 4·3 보고 회를 비롯, 제주 여 민회·제주문화운동협의회·제주사제협의회·제주YWCA대학부·청년 부· 제주교사협의회·제주지역총학생회협의회 등 11개 단체가 공동으로 1일부터 8일까지를 추모기간으로 정해 제주시민회관 세종 미술관·관덕정 광장 등에서 갖가지행사를 벌이고 있다.
그중 1일 제주도학생회관에서 제주도 문제연구소 주관으로 열린「4· 3 보고 회」에서는▲4· 3사건의 정치적 배경(김남식)▲4·3사건의 진상 (오성찬)에 대한 특별강연과 4·3사건에 관련된 25개항의 도민상대 설문조사결과 보고가 있었다.
제주도문제연구소가 1월15일부터 3월15일까지45세 이상 1천2백 명의 제주도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4·3사건에 대해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73%(8백67명) 가 『잘 알고 있다』, 26%가 『들어서 알고 있다』고 답하고, 『모른다』 는 대답은 1%밖에 안돼 오랜 세월동안 침묵해 오면서도 4·3사건은 잊혀질 수 없는 상처임을 보여 주었다.
특히 4·3사건은 직접 체험했다는 응답자가전체의 71%가 됐으며,4·3사건으로 피해를 보고 있느냐는 질문에는 45%가 그렇다고 했다.
4·3사건이 왜 발생했다고 생각하느냐에 대해 ▲모르겠다 27%▲남로당조직의 공산화목적 23%▲좌·우익싸움 17%▲남로당 선동에 의한 반발11%▲무 응답 9%▲경찰과 서북청년단 등·횡포와 탄압에 대한 반발 8%의 순으로 나타났다.
또 양민들에 대한 학살은 누가 했다고 생각되느냐의 질문에 ▲경찰·군인·폭도들이 했다 41%▲경찰이나 군인들이 했다 32%▲폭도라고 부르는 자들이 했다 25%▲무 응답 2%순 이었다.
1일 제주시민회관에서 열린 추모 제에서는 인간문화재 안사인 씨를 수심 방으로 초감제를 벌이고 슬라이드상영· 노래공연·마당 굿 (한라산) 이 있었다.
2일에는 제주출신 소설가 현기영 씨의 「4·3 어떻게 볼 것인가」강연이 있었으며, 3일에는 범 도민 4·3 진상규명촉구대회에 이어 체험자 증언과 토론회가 열리는 등 제주도전역이 4·3열기다.
그러나 4· 3사건의 성격규명·양민학살 책임 등에 대한 견해는 학자들마다 크고 작게 서로 다르고 피해자와 가해자가 좁은 지역 내에 현존하는 상황에서 서로의 증언이 엇갈리는 경우가 많다.
자칫 잘못 정리될 경우 오히려 커다란 역사의 오류를 남긴다는 위험부담도 적지 않은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한가족 중에도 좌·우익양쪽에 의해 학살되거나 협조(?)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당시의 처절한 상황이 어떻게 규명될지 난제가 많은 실정이다. 4·3사건의 진상규명이 또 다시 갈등을 낳는 상황은 없어야 할 것이란 지적도 있다.<제주=김형환 기자>
미군정아래인 48년 4 월 3일 제주도 내 남로당계 좌익게릴라 5백여 명과 동조자 1천 여명이 도내 15개 경찰지서 중 14개를 습격하는 것으로 시작된 폭동사건. 몇 년 가을 완전진압 때까지 만5년간 계속됐으며 좌익게릴라와 군경간의 전투과정에서 엄청난 인명살상과 방화로 인한 공공시설·주택소실 등 피해가 났다. 특히 좌·우 양측의 보복적인 집단학살 등 무차별폭력행위에 거의 전 제주도민이 피해를 보았다.
1일 제주시민회관에서 열린 4·3추모굿판,「제주도민의 한」4·3사건 재조명이 이제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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