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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금융당국의 늑장 판단이 바이오업계 삭풍 불러왔다

중앙일보

입력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금융감독원 건물. [연합뉴스]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금융감독원 건물. [연합뉴스]

훈풍은 짧고 삭풍은 길었다. 올해 제약ㆍ바이오 업계를 돌이켜보자면 그렇다. 유한양행 등을 중심으로 기술 수출 총액은 5조원을 넘어섰다. 이는 한국 제약ㆍ바이오 기술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런 가운데 금융감독원이 삼성바이오로직스에 이어 셀트리온헬스케어의 국내 판매권 내부 거래를 문제 삼으며 분식회계 감리에 나서자 제약ㆍ바이오 시장은 다시 출렁이고 있다. 업계에선 “금감원 발 회계 한파가 다시 찾아왔다”는 볼멘소리도 들린다.

올해 제약ㆍ바이오 업계에서 회계 한파는 유독 길었다. 연구개발비 회계처리를 시작으로 삼성바이오의 분식회계 논란으로 한 해를 보냈다. 행정소송으로 번진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사태에 더해 셀트리온헬스케어에 대한 금감원의 감리가 시작되면서 회계 이슈는 내년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삭풍이 길어진 건 금융 당국의 늑장 대처 탓이 크다. 대표적인 게 연구개발비 회계처리 논란이다. 금감원은 지난 9월 감독지침을 통해 “신약은 임상시험 3상부터 자산화가 가능하고, 바이오시밀러는 임상시험 1상부터 자산화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지난해 연말 금감원의 바이오 연구개발비 테마감리 발표부터 지침이 나오기까지 10개월 가까이 걸린 것이다. 한 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신약과 바이오시밀러 개발 과정 차이는 업계에선 상식”이라며 “상식 수준의 지침을 내놓는 데 1년 가까이 걸린 건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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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당국의 느린 대처가 못내 아쉬운 건 한국이 2011년 채택한 국제회계기준(IFRS)을 들여다보면 쉽게 알 수 있다. IFRS는 연구개발비를 자산으로 처리할 수 있는 6가지 요건을 제시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게 ‘기술적 실현 가능성’이다. 기술적 실현 가능성에 대한 해석은 제품 개발 과정이나 회사 사정에 따라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다. 금융 당국의 빠른 판단과 그에 따른 지침 마련이 필요한 이유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7월 여의도 금융감독원 브리핑룸에서 금감원 감독 강화와 금융 개혁 방안 등 장기적인 업무 추진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중앙포토]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7월 여의도 금융감독원 브리핑룸에서 금감원 감독 강화와 금융 개혁 방안 등 장기적인 업무 추진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중앙포토]

2년 가까이 끌어온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사태에서도 금융 당국의 뒤늦은 대처가 아쉽다. 분식회계 결론을 얻기까지 2년이나 끌어야 하는 일이었는지 묻고 싶다. 셀트리온헬스케어 문제에서도 금융 당국이 얼마나 빠르게 결론을 짓느냐에 따라 시장 혼란이 길어질 수도 짧아질 수도 있다.

원칙만 정해놓은 채 해석할 여지를 남겨둔 IFRS 특성상 이런 혼란은 한동안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시장 혼란을 줄일 수 있는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은 금융 당국의 발 빠른 지침 마련에 달렸다.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 변화에 기업의 적응을 돕기 위함”이란 IFRS의 도입 취지를 살려야 한다. 금융 당국의 속도전이 필요한 시점이다.

강기헌 과학&미래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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