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ㆍ바이오주 21조원 증발...'뜨거운 감자'된 R&D 회계 처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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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최초의 바이오시밀러 항체 의약품으로 꼽히는 셀트리온의 램시마. [중앙포토]

세계 최초의 바이오시밀러 항체 의약품으로 꼽히는 셀트리온의 램시마. [중앙포토]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논란에서 시작된 악재에 제약 및 바이오 주가 추락하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KRX 헬스케어지수는 지난 27일 3672.04로 마감했다. 2년 만에 처음으로 6주 연속 하락한 것이다. 이 지수는 셀트리온, 삼성바이오로직스 등 코스피와 코스닥 제약 및 바이오 종목 77개로 구성됐는데 같은 기간 동안 증발한 시가총액은 21조원에 달한다. 그만큼 제약 및 바이오 종목이 하락 폭이 크다는 것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이슈는 최종 결론이 나지 않아 시장 불확실성이 여전하다. 회사 대표가 구속된 네이처셀도 관련 종목 하락에 불을 붙였다.

제약ㆍ바이오 주 주가 하락의 일차적인 원인은 삼성바이오로직스 발 회계 기준 위반에 있다. 하지만 업계에선 그 이면에 금감원의 연구개발(R&D)비 회계 처리 테마 감리가 있다는 목소리가 들린다.

사연은 지난해 연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금감원은 지난해 12월 ‘2018년 테마 감리’ 중 하나로 개발비 인식ㆍ평가의 적정성을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금감원은 “개발비는 연구단계와 개발 단계의 구분이 명확지 않아 자산으로 인식할 수 있는 요건을 갖추지 못했음에도 과도하게 자산으로 인식해 회계 처리에 자의성이 많이 존재한다”라며 “회계 처리 오류 가능성이 커져 점검할 필요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올해 1월에는 제약ㆍ바이오 업종을 콕 찍어 테마 감리 대상으로 발표했다.

금감원이 테마 감리에 돌입한 기업명을 공개하진 않았다. 하지만 업계에선 셀트리온과 신라젠 등 10개 제약ㆍ바이오 기업을 대상으로 테마 감리가 한창 진행되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이후 금감원의 칼날이 향할 것으로 보이는 제약ㆍ바이오 기업에 대한 주가 조정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다양한 불확실성으로 누적된 피로감이 제약 및 바이오주 주가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다”며 “회계 감리 이슈 등이 커지며 불안한 투자 심리를 더욱 위축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주가 하락 폭은 바이오 주가 전통적인 제약사보다 컸다. 이는 연구개발비 회계처리 기준 때문이다. 전통적인 제약 기업들은 연구개발비를 비용으로 처리하지만, 신생 기업에 속하는 바이오 기업들은 자산으로 잡고 있다. 올해 초 내놓은 각사의 지난해 사업보고서를 보면 이런 경향이 뚜렷하다. 신약과 비슷한 약효를 내는 바이오의약품인 바이오시밀러를 생산하는 셀트리온은 지난해 연구개발비(2270억 원)의 74.4%를 자산으로 잡았다. 코오롱티슈진도 지난해 연구개발비의 93%를 자산으로 책정했다. 반면 전통적인 제약사로 분류되는 유한양행은 지난해 연구개발비(1036억 원) 모두를 비용으로 처리했다. GC녹십자도 연구개발비(1165억 원)의 자산 처리 비율은 17%에 수준이었다.

바이오 업계 내에서는 금감원이 진행하고 있는 연구개발비 테마 감리에 대해 “문제가 없다”라는 반응이 다수다. 한국이 채택한 국제회계기준(K-IFRS)은 연구개발비를 자산으로 처리할 수 있는 6가지 요건을 제시하고 있다. ▶기술적 실현 가능성 ▶자산을 판매할 수 있는 기업의 능력 ▶미래 경제적 효과 등이다. 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바이오시밀러 등은 기술적 실현 가능성이 커 연구개발비를 자산으로 처리해도 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금감원의 입장은 다르다. 금감원 관계자는 “개발비는 연구단계와 개발단계의 구분이 명확치 않아 무형자산 인식요건을 갖추지 못했음에도 과도하게 자산으로 인식하는 등 회계처리에 자의성이 많다”며 “개발 프로젝트의 사업성이 낮거나 중단상태에 있는 등 손상징후가 나타났음에도 이를 적시에 손상 처리하지 않아 회계처리 오류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테마감리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2016년 기준으로 152개 제약ㆍ바이오 상장기업 중 55%(83개사)가 연구개발비를 비용이 아닌 자산으로 처리하고 있었다.

강기헌 기자 emc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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