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애는 사교육 안 시켜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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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두개쯤 틀리면 어때요. 엄마랑 함께 있는 시간이 더 중요해요. 한달만 다니면 100점 맞는 학원은 사고력이 아니라 푸는 기법을 가르쳐주는 거죠. 그냥 자유롭게 뛰어놀게 키울래요"

사교육 없이 '홀로서기'를 시도하는 초등생 학부모들이 모처럼 기를 펼다. 오정미.이영화.이해림.하현덕 어머니. 사교육비가 1인당 1억을 넘는다는 요즘 학원에 안 보내는 엄마들은 불안했고 그래서 더 외로웠다. 8일 저녁 서울 강남구 일원동 부근 한 카페에서 만나자마자 '동지애'를 느낀 이들은 금새 친해져 '나만의 교육법'을 공유했다. 8시 인터뷰에는 학원에 안 간 아이들이 모두 엄마와 같이 합석했다. 대화의 주제는 이내 철학을 잘 따라준 아이들에 대한 고마움으로 옮겨갔다.

#1. '자녀와의 교감' 이란 소신

이들에게 사교육은 우선순위에서 한참 밀린다. 대신 아이에게 정서적인 합일감을 주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이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모르면서 사교육을 시키고 성적이 오르기를 바라는 건 '우물 가서 숭늉찾는 식'이다.

^이해림=저는 학원강사를 했어요. 그래서 애들은 주말만 되면 맞벌이하는 부모 대신 외할아버지.외할머니랑 여행을 많이 다녔지요. 일상에 지쳤을 어느 순간 막상 내 자식을 직접 가르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적성을 알려면 부모의 관심이 가장 중요하단 판단이었어요. 학원을 보내줄까 해도 아들 민이는 "부모님이 말씀해 주시는 게 생활속이라 이해가 더 빨라요"라며 거절하던데요. '방과 후 학교'를 듣고 집에 온 아이와 늘 한시간씩은 신문을 읽고, 스크랩하며 정보를 챙겨요.

^하현덕=저는 예술고를 나오고 부모님의 바람대로 당연하게 피아노를 전공했어요. 대학을 졸업할 때쯤 내 적성은 그게 아니란 것을 알았죠. 지금은 상담일을 하며 정말 행복합니다. 진로를 선택할 때 엄마.아빠의 아쉬움은 잠깐이지만, 아이가 겪는 고통은 평생일 수 있어요. 큰 아이는 요즘 케이블 방송 '제이미 올리버'에 빠져서 요리사가 된대요. 엄마의 꿈도 같이 이루자고 외치면서 마루 탁자에 모여앉아 '열공(열심히 공부)'해요.

#2. 불안 극복하기.

그러나 언제까지 저녁시간에 엄마와 함께일 수 있을까. 고학년이 되어갈수록 "이러다 우리 아이만 뒤처지는 것은 아닌지" "학원을 안 다닌 부작용이 생길지도" 등 불안감이 든다. 그래서 이해림씨는 매일매일 해야할 일들을 체크리스트로 만든다.

^오정미=책을 보며 위안을 얻어요. 2 ̄3살 많은 학부형들이 "학원 아무 소용이 없더라"하면 위안을 얻죠. 너무 불안할 때는 학원 시험에서 레벨 테스트만 받고 돌아오기도 한다. 반드시 오답노트를 활용해 방학때는 문제집을 혼자 복습하도록 해요.

^이해림=특히 방학 같은 때는 본인이 생각하는 것 5가지, 엄마가 생각하는 것 5가지를 정해요. 그래야 균형이 생기거든요. 의무감을 느끼지 않을까 했는데 어느 순간 자기가 체크리스트 항목을 더 만들고 있을 때는 놀라죠. 학년 선행학습은 안 시켜요. 대신 같은 학습서라인에서 초급단계(포인트)에서 고급단계(경시 및 올림피아드)까지 한 패키지를 떼도록 하죠. 업드레이드 단계가 선행학습보다 수준이 높을 때가 많아요.

^하현덕=학교가 못미더워 학원을 많이 보냈는데 성적이 오르지 않아 죽도 밥도 안된다며 불평하는 부모가 있어요. 아이들이 정신이 산만해서 학원을 보내봤자 소용없다고 하소연하죠. 좋다는 학원은 다 쫒아보낸 엄마가 산만한 거라고 봐요. 부모가 중심을 잡아야 할 필요가 있어요. 지적 자극이 떨어질까봐 '대학 나들이'도 해요. 애가 좋아하는 저자 강연회가 있는 대학을 찾아 사인을 받고 반드시 메일을 보내게 해요.

#3. 느리게 키우기

^이영화=주변의 영향을 받기 싫어서 염곡동 산 속으로 이사갔어요. 가고 싶은 곳, 보고 싶은 곳 마음껏 누리며 살도록요. 개성을 강조하면 글로벌한 시각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요. 벌써부터 중고등 쪽집게 학원 입시 준비를 시키면 아이는 국내용 시험에만 강해지죠. 아이가 동의하지 않은 계획은 계획이 아니에요. 코칭은 결국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죠. 내가 먼저 아이와 고통을 함께 하며 걸림돌이 뭔지, 계획을 포기한 이유는 뭔지 문석해줘요.

^오정미=하 어머니는 설겆이를 잠시 미루고 같이 시간을 보낸다고 했는데, 저는 손으로 퀼트 같은 것을 짜면서 조급증을 식혀요(웃음)

#4. 정보공유는 어떻게

돈이 없어서가 아니다. 그러나 이들은 책값 15만원 정도와 주변 문화회관 수강료 5만원 정도가 교육비의 전부다. 무료 사이트의 이용은 아주 짭짤하다. 오래 이용하면 우수회원으로 추가 혜택도 많이 주어지는 게 이들 사이트의 장점이다. 이웃이라도 아이들 교육정보는 알려주지 않는다는 시대에 아이를 키우면서 느낀 진솔한 얘기를 엿볼 수 있는 커뮤니티도 만든다. 또래 엄마들이 품앗이 프로그램으로 전공별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도 재미있다. 지방 교육청에서도 좋은 프로그램이 많다. 서울시교육청에서는 과학 영재 학년 대표로 뽑아 교육시킨다. 오정미씨는 "학원 스케줄 때문에 포기하기 때문에 모를 뿐"이라고 말했다.

이원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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