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격「춘 」강경대응 "수순"|공권력확립 차원서 극약 처방|재야와 연계투쟁 불씨 될지도|정부,「현대중」 강제진압 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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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노사 및 노노간 갈등이 복잡하게 얽혀 1백9일째 파업이 계속 돼 온 울산 현대중공업사태는 끝내 공권력 투입이라는 극약처방을 받았다.
공권력투입이 양약은 아님을 모두가 알면서도 여기에까지 이르게된 배경에는 노사양측의 단견과 대화회피, 노동부·울산시·상공부 등 관계당국의 중재 실패 등이 복합돼있다.
또한 경찰력을 투입하는 막바지 결정과정에서는 파고가 높아질 올 노사분규를 앞두고 노사문체에 있어 공권력의 존재를 확립시키려는 정부의 의지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여진다.
29일 오전 내무·노동·상공장관 및 치안본부장 등이 참석한 관계장관회의에서 진압작전의 어려움을 고려한 신중론도 제기됐으나 공권력확립차원에서도 더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강경론이 우세, 경찰투입을 최종 결정했다는 것이다.
현중사태는 여러 측면에서 올 봄 노사분규의 향방을 가름할 분수령으로 지목되어 왔다.
서울지하철과는 또 달리 민간사업장인데도 정부가 노사분규 사상최대의 경찰력을 동원해 강제해산에 나선 것도 그 같은 인식과 고려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공권력에 의한 분규 수습은 민주적 노사관계정립을 통한 산업평화의 구현이라는 우리사회의 기대와는 먼 나쁜 선례의 답습일 뿐 아니라 그렇지 않아도 이성적대화보다 물리적 힘 겨루기 양상으로 번지고 있는 노사분규에 악영향의 우려도 없지 않다.
일련의 정부방침을「노동탄압」으로 비난하고 있는 일부 노동계·재야·학생 등의 새로운 연대투쟁으로 긴장이 확산될 조짐도 있다.
현중사태는 파업농성의 강제해산으로 일단조업재개는 가능해졌으나 「정상화」는 아니며 문제를 푸는 것은 이제부터다.
강제진압이 빚어낸 적대감, 사전 대피한 파업지도부와 파업근로자들의 저항, 해고자구제 신청 등 법적 시비문제와 노사간 맞고소의 앙금, 자의반 타의반 조업반대근로자들에 대한 생계보장문제 등이 뒤얽혀 있다.
무엇보다 두 갈래로 갈라진 노조를 어떻게 하나로 묶어 회사측과 불신의 벽을 헐고 노사관계를 재정립하느냐가 문제다. 완결을 못 본 단체협상타결 등의 내부과제도 적잖은 진통이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현 노조의 서태수 집행부는 노조원에 대한 지도력을 거의 상실한 상태인데도 체면을 유지한 뒤 물러나겠다는 조짐으로 사태해결을 어렵게 했다. 서씨는 원래 이원건씨 등에 의해 추대된 위원장이지만 역량의 부족 탓인지 적대관계가 되고 결국 「어용」으로 몰렸다.
이원건씨 측은 또 자신들이「실세」이며 나름의 절차를 거쳐 집행부를 구성했다고 주장, 당국이 인정하는 방식의 집행부 재구성 노력을 뒷전으로 미룬 채 조급한 마음에서 폭력 충돌만 거듭, 「불법폭력세력」으로 매도당하는 사태를 자초했다.
회사측은 「법통」을 인정하는 서태수현 노조위원장 측을 통해서만 문제를 풀려다 서씨 측의 입지만 더 좁혀놓았고 한 솥 식구인 이원건씨 측을 외부와 연계된 「적」으로 간주한 채 포용하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았다.
이 같은 상황해결에 노동부·울산시 등 행정기관은 중재의 역할을 제대로 못했다. 파업지도부의 이원건씨와 현노조 서대수 위원장을 놓고 직선을 하거나 제3자를 지명권자로 지정해 임시총회를 열어 대화를 재개하는 길밖에 없었는데도 실패, 「한계」를 드러냈다.
결국 이번 사태는 노동·재야·학생 등의 연대투쟁과 정부의 파워게임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힘겨루기의 결말이 된 셈이다.
노사간 감정대립은 파업에 맞선 휴업으로 쌍방에 낭비와 갈등을 심화시킬 뿐이며 파업과 휴업·강제진압은 양날의 칼과 같아 오히려 양손을 베이고 마는 것을 보여준 결과도 됐다.

<탁양명·김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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