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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되는 시간' … 3적(인종 차별 승부 조작 테러·폭력)과의 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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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2006 독일 월드컵이 9일 화려한 개막식을 시작으로 31일간의 열전에 돌입했다. 개막 행사에서 브라질의 축구 황제 펠레(左)와 독일 수퍼모델 클라우디아 시퍼가 우승국에 주어지는 피파(FIFA)컵 앞에서 손을 맞잡은 채 인사하고 있다. [뮌헨 AP=연합뉴스]

'친구가 되는 시간(A time to make friends)'.

9일 막을 올린 2006 독일 월드컵의 공식 슬로건이다. 여기에는 분명한 목적이 담겨 있다. 바로 ▶인종 차별▶승부 조작▶폭력이라는 '세 가지 적(敵)과의 전쟁'이다. 국제축구연맹(FIFA)과 독일월드컵조직위는 '월드컵=축제'라는 이름으로 용인됐던 악습을 떨쳐버리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 인종 차별과의 전쟁

"경기장으로 걸어가는 나에게 바나나가 날아왔다. '원숭이'라는 의미였다."

독일 최초의 흑인 축구국가대표로 2002년 월드컵에도 참가한 게랄트 아사모아(살케 04)의 말이다. 유럽에서 뛰는 흑인 선수들에게 인종차별 문제는 이미 익숙한 이야기다.

FIFA는 9일(한국시간) 뮌헨 총회에서 인종차별 언행에 대한 '감점 징계'를 명문화했다. 선수를 포함한 팀 관계자가 인종차별적인 말이나 행동을 할 경우 승점 3점을 깎고, 두 번째 적발시에는 6점, 세 번째는 퇴출한다는 것이다. '바나나' '원숭이'같은 말과 그림, 그리고 그런 디자인의 옷을 입는 것 등이 모두 해당된다. 유색 인종 부모를 모욕하는 말과 '너는 독일인이 아니다' '흰색은 유니폼만을 위한 색이 아니다'라는 등 우회적인 말이나 글도 안 된다.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 네덜란드의 흑인 공격수 패트릭 클루이베르트(FC 발렌시아)는 자신의 피부색을 빗대 비하하는 벨기에 선수를 밀쳐 넘어뜨려 퇴장당했다. 바뀐 규정대로라면 벨기에는 이날 무승부로 얻은 승점 1점을 박탈당하는 것은 물론 -2점을 기록하게 된다.

그러나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인종차별 언행을 어떻게 판별할 것인지 하는 것과 응원단이 인종 차별을 했을 때는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등 세부적인 문제는 남아 있다. 그래서 기자회견과 같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인종차별 언행을 했을 때 이 규정을 적용할 가능성이 크다.

◆ 승부 조작과의 전쟁

FIFA 홈페이지에는 '도박을 하지 않겠다'는 선언서 양식이 올라와 있다. 선수뿐 아니라 코칭스태프.심판까지 사인해야 한다. 승부 조작은 유럽과 남미 프로리그에 독버섯처럼 퍼져 있다. 올 시즌에도 이탈리아와 독일.네덜란드.벨기에.브라질에서 동시에 스캔들이 터져나왔다. 블래터 FIFA 회장은 "승부 조작 스캔들에서 FIFA가 할 수 있는 일은 심판들을 철저하게 관리하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 독립적인 윤리위원회가 설립될 것"이라고 말했다. 심판들은 호텔에 머무는 동안 외부에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을 수 없으며, 호텔 밖에서는 휴대전화 사용이 금지된다. 인터뷰는 경찰의 가이드라인 안에서 해야 한다.

◆ 폭력과의 전쟁

72 뮌헨 올림픽 당시 테러의 경험을 겪은 독일은 이번 월드컵을 통해 34년 전의 상처를 씻으려 한다. 독일 정부는 군병력을 포함해 7000여 명의 경비 요원을 경기장 주변에 배치할 계획이다. 경기장 상공에는 항공기의 비행이 금지되고 공중 정찰기가 뜬다. 폭발물 처리를 맡을 로봇 '오프로'까지 등장했다. 훌리건(축구장 폭도)을 막기 위해 6000여 명의 훌리건 명단을 확보했다. 유럽 각국은 300명이 넘는 경찰을 파견했다. 영국은 팬들 사이에 '잠복'해서 활동할 사복경찰도 포함시켰다. 한국도 국가정보원과 경찰청의 안전 요원을 파견했다.

강인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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