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여당의 '부동산 탈레반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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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정책을 조정하자는 열린우리당 일부 의원의 문제제기에 정부와 집권여당의 고위인사들이 연이어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기존정책을 흔들림없이 추진하겠다든가 시행하기도 전에 수정을 거론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등 이유도 여러 가지다.

추병직(秋秉直) 건설교통부 장관은 7일 열린우리당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부동산 세제 조정과 관련, "앞으로 조정할 생각도 없다"고 밝혔다고 연합뉴스는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추 장관은 이날 오전 청와대에서 개최된 국민경제자문회의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정책은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며, 그래서 시장이 여기까지 왔다"며 "(여기서 조정한다면) 무덤을 파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한 우리당의 종합부동산세 조정 움직임에 대해 "절대 건드릴 수 없다"며 "한번 부과도 안 했는데 그렇게 할 수 있느냐"고 말했다. 열린우리당 김한길 원내대표도 영등포 당사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주요 정책의 변화에는 매우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면서 "부동산 정책 기조에는 변화가 없다"고 강조했다

. 박병원 재정경제부 제1차관은 같은 날 KBS 1라디오 '안녕하십니까 이몽룡입니다' 프로그램에 출연해 "종합부동산세나 양도소득세를 경감하는 쪽으로 세제를 수정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양도세가 높아 집을 팔기 어렵다고 하는데 이런 한가지 측면만 보고 정책을 결정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이렇게 정부 고위당국자들이 부동산정책 수정 문제에 이구동성으로 쐐기를 박는 것은 시장의 혼란을 막기 위한 것으로 여겨진다. 정책 수정에 관한 논란이 장기화되면 그 부작용이 어떻게 번질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조기에 선을 분명히 긋자는 뜻으로 해석된다. 당연한 일이다. 시장은 불확실성을 가장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정부가 어찌 이렇게 천연덕스럽게 자신들의 입장만을 내세울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이제까지 정부가 해놓은 부동산 정책이란 것은 시장을 안정시키기보다 억누르는 것이었고, 국민을 편안하게 하기보다 불편하게 하는 것이었다. 또 장구한 생명력을 가졌다기 보다는 대증요법의 성격이 강했다.

그 부작용과 문제점이 드러나고, 이에 대한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데도 정부는 너무나 무심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정부가 최근 몇 년동안 마련한 부동산 정책 가운데는 오래도록 이어갈 만한 것도 있다.

이를테면 보유세를 강화하고 재건축 안전진단을 강화하는 등의 정책은 나름대로 보편성을 갖췄다고 생각된다. 안전진단을 강화하는 것은 지은지 30년도 안된 아파트들을 헐고 다시 짓는 등의 ‘무분별한’ 재건축을 억제한다는 측면에서 이해된다.

선진국에서는 100년도 넘는 아파트들이 즐비한 것과 비교할 때 우리나라는 너무 쉽게 짓고 쉽게 허무는 것이 사실이다. 이를 막아보자는 것이다. 재건축은 글자 그대로 안전성 등의 문제 때문에 더 이상 지탱하기 어려울 때 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런 점에서 재건축 안전진단을 강화하는 것은 실현되지 않은 개발이익에 부담금을 물리는 것보다는 사물의 자연스런 흐름에 부합한다고 생각된다. 보유세의 경우 선진국의 사례나 국내의 자동차세 같은 것을 함께 상고해 보아도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따라서 이를 조정할 필요성은 오래 전부터 제기돼 왔다.

그렇지만 그것을 시가에 근거해 매기는 종합부동산세 같은 것은 객관적이고 타당한 기준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요즘 같이 부동산 가격이 오를 때는 종부세 부과대상자가 늘어나지만, 떨어질 때는 대상자가 줄어든다.

때문에 종부세 대상이나 이를 통해 거두는 세금도 시장에 좌우되고 예측가능성이 저하된다. 정부가 부동산 가격을 하락시키겠다고 하면서도 사실은 상승을 은근히 바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든다.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 종부세 대상과 세수도 늘어날 것이 때문이다.

그런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보유세 강화라는 원칙 자체는 상당한 타당성이 인정된다고 할 수 있다. 부동산 실거래제를 강화해 투명성을 높이는 것도 역시 일리 있는 대책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보유세를 크게 올리는 대신 부동산 취득세 등록세를 대폭 인하하지 않고 거꾸로 양도세를 무겁게 매기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사물의 섭리에 맞는 일은 아니다.

다주택자에게 세금공세를 퍼부으면서 ‘퇴로’까지 막는 꼴이다. 퇴로까지 막고 공격하면 죽음 밖에 없다. 바로 이 때문에 요즘 부동산 시장은 ‘죽은 시장’이나 다름없다. 아울러 국내 경제의 활력 역시 꺼져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정부가 취득세 등록세 세율을 약간 내렸다고는 하지만, 실거래가 신고제도가 도입된 이후 세금이 도리어 크게 올랐다. 양도세도 마찬가지다.
【서울=데일리안/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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