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 28번만에 '安風'유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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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천1백억원대의 안기부(국가정보원의 전신) 예산을 여당 선거자금으로 썼다는 '안풍(安風)사건'이 당시 여당 사무총장(강삼재)과 안기부 차장(김기섭)의 실형 선고로 2년8개월 만에 처음 단죄됐다.

쟁점은 그 돈이 과연 국고였느냐 아니냐였다. 재판부는 검찰이 기소한 1천1백97억원에 대해 이날 "두 사람이 공모해 신한국당에 지원한 7백31억원, 金씨가 95년 민자당에 지원한 1백25억원은 안기부 예산으로 보인다"며 공소 사실 대부분을 유죄로 인정했다. 따라서 재판부는 姜의원에게는 7백31억원, 金씨에게는 1백25억원의 추징금을 징역형과 별도로 선고했다.

2심과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추징이 확정될 경우 개인 재산에 대한 강제 집행에 들어가게 된다. 姜의원의 경우 개인 자격이 아닌 당 사무총장 차원의 자금 조달이었다는 점에서 개인 재산 압류를 놓고 적지 않은 논란과 잡음이 예상된다.

사건은 2001년 1월 검찰이 경부고속철 차량 선정 로비 의혹을 수사하던 중 姜의원 차명계좌에 정체불명의 뭉칫돈이 입금됐음이 발견되면서 시작됐다.

검찰은 자금의 출처가 안기부라는 사실을 밝혀내고, 김기섭 전 안기부 운영차장을 구속했다. 그러나 姜의원에 대한 조사는 번번이 무산됐다. '정치 보복'임을 주장하는 한나라당의 반발, 그리고 '방탄국회' 때문이었다. 결국 姜의원에 대해선 소환 한번 못한 채 불구속 기소했다.

사건은 법원에 넘어간 뒤에도 지루한 곡절을 겪었다. 재판부가 세번이나 바뀌었고, 그동안 열린 재판만도 이날 선고 공판을 포함해 28차례다. 변호인단은 첫 재판부가 2001년 6월 심리를 끝내려 하자 "전직 국정원장들에 대한 증인 신문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둘째 재판부에 대해선 법관 기피신청을 냈다가 지난해 대법원에서 최종 기각됐다. 셋째인 현 재판부가 지난 1월 재판을 재개한 뒤에는 변호인의 연수를 이유로 법정에 나오지 않기도 했다.

한편 검찰은 당시 안기부 자금을 지원받은 정치인이 2백3명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한 사람당 1천만원에서 최고 17억5천만원까지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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