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재야 기죽지 마" 홍명보가 나섰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1면

7일 독일에서의 첫 훈련을 마친 뒤 선수들끼리 각오를 새로 다지는 미팅을 하는 동안 아드보카트 감독이 자리를 피해주고 있다. [레버쿠젠=연합뉴스]

홍명보(37). 독일 월드컵 한국 축구대표팀 코치다.

그러나 이제는 단순한 코치가 아니다. '투혼과 열정을 되살리는 전도사'다.

7일 새벽(한국시간) 독일 쾰른에 입성한 한국 대표팀의 분위기는 분명 착 가라앉아 있었다. 수많은 교민이 공항에 나와 열렬히 환영했지만 대표선수들은 미소를 보내는 여유조차 없었다. 4일 가나와의 마지막 평가전 패배(1-3)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매우 피곤한 모습이었다. 본선 첫 경기인 토고전(13일 오후 10시)이 일주일도 남지 않았는데….

"전술적인 부분보다 정신력 회복이 중요하다."

침묵하던 홍명보 코치가 일어섰다. 그리고 딕 아드보카트 감독에게 "분위기를 추스르기 위해 선수 면담을 하겠다"고 요청했다. 아드보카트 감독의 'OK' 사인이 떨어졌다.

홍 코치는 곧바로 주장인 이운재 선수를 만났다. "우리의 장점이 많다. 서로 협력해 좋은 결과를 내 보자. 월드컵 경험이 있는 선수가 많은 만큼 2002년보다 잘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홍 코치는 현지시간으로 자정까지 몇몇 선수를 더 만났다.

"선수단에 특별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가나전 이후 국내의 우려 목소리가 전해지면서 분위기가 침체됐다"는 게 홍 코치의 말이다. 가나전 이후 국내 분위기가 달라진 것은 사실이다. 한국의 16강 진출을 예상한 사람이 90% 가까이 됐으나 가나전 이후 22%까지 떨어졌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한국팀 분위기의 반전을 위해 홍 코치가 전면에 나섰다. 홍 코치는 여전히 대표팀의 '맏형'이자 '영원한 주장'이요, '카리스마'다.

2002년 월드컵 대표팀 주장으로서 4강 신화를 이끌었던 홍명보. 은퇴 후 축구행정가의 길을 걷고 있던 그를 대표팀 코치로 끌어들인 이유도 이 때문이다.

선수들은 "홍 코치님"보다 "명보 형"으로 부르기를 좋아한다. 무뚝뚝한 표정, 언뜻 날카로워 보이는 얼굴에서 사람을 멀리할 것 같은 이미지를 풍기지만 후배들은 누구보다 '명보 형'을 따른다. 그에게는 사람을 끄는 힘이 있다.

홍 코치는 "월드컵 경기를 앞두면 누구나 두려움을 갖는다. 긴장의 강도는 어느 때보다 높다"며 "이럴 때 팀 분위기를 잡지 않으면 걷잡을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 2002년 스페인과의 8강전. 마지막 승부차기에 성공한 뒤 '홍명보답지 않은 환한 웃음'을 지으며 달려가던 모습을 국민은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쾰른=정영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